주현절 후 네 번째 주일
사도행전 11:19-26, 행전강해(42)
설교: 안디옥 교회와 그리스도인(주승중 목사)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 예루살렘 교회는 폭발적으로 성장해
제자들의 수가 심히 많아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초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그것으로 만족하고
복음을 땅끝까지 나가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기에
결국 주님께서는 핍박이라는 방법으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으로 흩어지게 만드셨고,
이에 흩어진 성도들이 두루 다니면서 복음의 씨앗을 디아스페이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디아스페이로"는 흩뿌리다,는 뜻으로 복음의 씨앗을 흩뿌리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빌립 집사가 유대를 건너 사마리아 지역까지 나아가 복음을 전했고,
원수들의 핍박이 정치적인 상황에 의해 잠시 멈추었을 때에
베드로가 팔레스타인의 서부 해안 지역까지 나아가서 룻다와 욥바에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치유 사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의 손길에 이끌려서 가이사랴까지 올라가서
마침내 이방인 중에 이방이었던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에게
복음의 진수를 전함으로 이방 선교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습니다.
안디옥의 헬라인들이 이 무명의 복음 전도자들이 이적과 기사를 동반한
복음 전도사역에 열렬하게 반응하기 시작해 탄생한 교회가 안디옥 교회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는 이 복된 소식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 교회의 목회자로 파송했는데
그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기에
안디옥에 파송된 바나바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보고
"굳건한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면하고 그들을 목양하고
바나바의 목양에 힘입어 안디옥 교회는 더 크게 성장해
바나바는 자기 혼자 사역을 감당하기에 벅찬 것을 깨닫고
예루살렘 교회에서 환영받지 못한 채 고향인 다소에 내려가 있는
바울을 찾아가서 그를 동역자로 부르게 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1년 동안 함께 많은 회중들을 목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는데
마침내 사람들은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을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안디옥은 전 세계에서 몰려든 많은 종족들이 무려 7만 명이 넘는 유대인으로
다양한 국적과 혈통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일종의 국제도시로
안디옥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폴로신 아르테미스 여신을 섬기는 중심지로
다프네 숲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성행위를 바탕으로 하는 이교의 우상숭배로
자연스럽게 안디옥의 방탕과 성적인 문란을 가져와
그 당시의 안디옥은 화려하지만 부도덕한 도시로도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곳을 이방 선교의 전진기지로 삼기를 원하셨습니다.
안디옥은 로마서 5장 20절에 보면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라는 말씀이 적용된 곳으로
그래서 바로 이곳에 복음이 전해졌고 안디옥 교회는 이방 선교회의 전진기지가 되어
이제 안디옥 교회 교인들을 가리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 당시 가장 수치스러웠던 십자가형에 처해진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 명칭은
결코 영광스러운 명칭이 아니었는데,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이 명예롭지 못한 명칭을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명예롭고 보배로운 이름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크리스티아누스"라는 이 명칭 그대로 오직 예수님만 따르는 사람들, 예수의 사람들,
전적으로 예수님께만 속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바나바의 표현대로 그들은 오직 예수님과 함께 머물러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안디옥까지 올라간 초대 교회 성도들의 삶은 최우선 순위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 때문에 핍박을 피해서 머나먼 낯선 도시로 와서
담대하게 예수님이 주님이시라고 전파했습니다.
그들은 세상 어떤 부귀 명예도 다 버리고 예수님만을 따르고 예수로 살고 예수로 죽는 삶이었습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그만큼 세상과 구별되고 세상 사람들과도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에게도 안디옥 교회 성도들과 똑같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주어졌으니
우리 주안의 성도들도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인도의 유명한 지도자였던 [마하트마 간디]는 "그리스도는 인정하고 존경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인정할 수 없다" 그런 말을 했습니다.
간디가 그렇게 말한 것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조금도 닮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예수께 속한 사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
예수님 만을 높이고 예수님을 가장 소중하고 존귀한 분으로 여기며 사는 사람인지
그 정체성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한국의 초대교회는 국민의 1%에 지나지 않는 힘없고 작은 공동체였음에도
사회와 민족으로부터 신뢰받는 공동체였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인가 한국 교회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사람이, 목사가 주인 되기 시작했고
교회 안에서 예수님의 말씀보다 인간의 전통과 유전과 규정들이 더 중요시하게 되고,
맘모니즘의 우상숭배가 교회 안에 스며들어서 교회가 세상과 별로 다를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잃어버린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 높이고 예수님의 말씀만을 따라 순종하는 가운데 그분을 닮아가려고
무던히도 애쓰는 "크리스티아누스"예수쟁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안디옥 교회 성도들처럼, 한국 교회 초대 성도들처럼 삶의 어떤 상황 속에서도
"크리스티아누스", 예수의 사람들, 오직 예수님만을 높이고 그분만을 따르는 참된 그리스도인
진정한 예수쟁이들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의 숲'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앙인의 불신앙(2/16) (0) | 2025.02.16 |
---|---|
교회는 하나님께 기도하더라(2/9) (0) | 2025.02.09 |
베드로가 전한 복음(1/19) (0) | 2025.01.19 |
네가 속되다 하지말라(1/12) (0) | 2025.01.12 |
땅끝 사역의 시작과 백부장 고넬료(1/5) (0) | 2025.01.0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