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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향기

지리종주가 가져다준 또다른 작은 행복

by 풀꽃* 2010. 7. 20.

 

 매년 여름 휴가철이면 어김없이 진행되었던 지리산종주...

그간 발목이 안 좋아 2007년을 끝으로 아쉬움의 시간을 보내고 지리종주의 문을 닫았었다

아직도 오른쪽 발목이 조금 시큰거려 지리종주의 꿈은 접어둔채 보내고 있었건만

영원한 나의 산 파트너인 권사님께서 함께 가기로 했던 일행들이 모두 펑크를 냈다며 함께 떠나자고 바람을 넣는다.

 

여름앓이의 처방전을 가지고 어디로 떠나야 하냐고 묻는다면?..

열 번이든~ 스무번이든 지리로 떠나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직도 발목이 부실한데도 그 말에 군침이 도는 건 그만큼 지리종주의 그리움이 내 안에 가득하다는 것이 아닐까?..

세 번의 종주를 했었기에 이젠 예전과 같이 설레임도 없고 무덤덤하다

함께 동행하기로 한 친구님들은 종주형 배낭도 구입하고 이것~저것 준비하면서 설렘으로 가득한데 나는 이래도 된느건지 의문이 가기도 한다.

 

한 번이든~두 번이든~지리종주의 설레임은 물밀 듯이 밀려 왔었는데~ 이제는 덤덤한 것으로 보아 그만큼 지리의 모든 것이 내 안에 가득해서 인가보다.

함께한 일행들은 벌써 이틀전부터 준비물들을 챙기고~배낭에 짐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설렘으로 가득한데 나는 아직 배낭도 안 꺼내 놓고 여유롭게 보내고 있다.

 

장마철이라 일기예보에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고 눈과 귀를 기울여 그곳 지리산의 산악날씨에 맞춰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여느 때 같으면 영등포역에 지리산종주 하는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는데~장마철이고 휴가철이 일러선지 역전 안도 한가롭다

늦은 밤 10시58분 구례구역을 향한 무궁화열차에 몸을 실어 보지만~여느 때와는 달리 열차 안도 한가롭기는 마찬가지다.

산행을 한다고 해서 꼭 산에서 만이 행복한 건 아닌 듯 하다

자주 얼굴을 맞이하곤 하지만 이렇게 함께 열차를 타고 여행을 한다는 것이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의자를 돌려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고 기쁨으로 자리한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이기에~만나기만 하면 주님이야기~그리고 만나기면 하면 산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어나간다

어쩜 이 시간이 힘도 안 들고 즐거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원래 여행은 여행을 관람하는 것도 즐겁겠지만~ 준비하는 과정이 설렘으로 더 즐겁다는 말이 있다.

혼자라면 차를 타고 가고 있는 4시간의 시간이 지루하기도 하겠지만

여럿이다 보니 금새 도착지인 구례구역에 도착이다.

차창 밖으로는 비가 내리는 듯 하다

5mm~9mm의 비쯤이야 가볍게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이른 새벽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빗살을 뚫고 택시를 이용해 성삼재로 향한다

언제나 처럼 가다가 중간에 해장국 집에 들러 아침을 먹고 다시 성삼재로 향한다.

성삼재

조금전 내리는 비는 모두 그치고 아랫세상엔 자욱한 운해가 펼쳐진다.

비가 다시 내릴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그친 것도 감사한데 멋진 운해까지 선물로 받으니 그져 감사할 뿐이다.

 

시기가 좀 일러설까?

언제나 노고단으로 행하는 이 길에선 해드랜턴을 켜고 올랐었는데~

오늘은 해드랜턴의 도움을 안 받고도 주변이 다 드러난다

 

맑은 공기와 맑은 바람소리~~그리고 콸콸  쏟아져 내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지리의 산 자락으로 한 걸음~한 걸음 파고든다

공기가 맑으면 물빛도 맑은가 보다

흐르는 맑은 물빛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 결에 내 마음도 맑은 물빛에 물들어 맑은 마음이 된다.

 

그간 세 번의 종주길이 이제는 내 집 찾아가는 것처럼 익숙해져 있다.

바람에 부닥이는 나뭇잎소리가 초록의 풋풋한 향기를 전해준다.

내마음은 벌써 지리의 향기로 물들임하고 있다.

시원한 지리의 바람은 내 영혼을 피부 깊숙히 파고들어 지리의 한 자락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노고단대피소

안개로 자욱한 노고단대피소에는 오늘도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배낭을 내리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노고단으로 향한다

등로 양 옆으로는 들꽃들이 쪼르르 마중 나와 반가움의 인사를 건넨다.

 

여느 때 같으면 돌탑에서 기념촬영하기가 줄을 잇는데~오늘은 여기도 한적하다.

날씨만 따라주면 금상첨하인데 노고단 돌탑의 풍경은 안개가 자욱한 곳에 지리의 바람만이 마실을 다닌다.

이곳에선 돌탑이 주인이고~돌탑을 둘러 싼 노고단 정원에는 원추리와 까치수영이 바람에 일렁인다.

언제나 이곳에서 일출을 보아왔는데~너무나 아쉽다.

 

마음을 비우고 돼지평전을 행해 걷는다

등로 양 옆으로는 들꽃들이 쪼르르 마중나와 반가움의 눈인사를 건넨다.

계속되는 들꽃들의 향연은 걸음과 같이 계속 이어진다.

아마 오늘 같이 이런 날씨에 들꽃들까지 인색했더라면 무슨 재미로 이 길을 걸을까 싶다.

 

안개비가 오락가락 심술을 부린다.

더이상의 비만 안 오기를 바램하며 마음은 이미 지리의 한가운데로 풍덩이다.

이런 날이면 가슴 속 한켠에 새어나는 말이 생각난다

이런 날에 아마 시어머니가 무거운 짐을 지고 이 먼곳을 다녀오라면 아마 남편하고 안 산다고 그럴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웃음을 지어 본다.

산행을 하면서 가끔 힘들 때 내가 해보는 말중에 하나이다.ㅎㅎ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스스로가 좋아서 나선 길이기에 ~

어느 누구에게도 푸념을 할 수 없는 고생 아닌 고행길이다.

그래도 그 속에는 값진 보화들이 무수히 들어 있어 시간이 흐르고 나면 고생이 행복인 듯 다시 그 길을 걷고 있다.

 

나무마다 잎새들은 싱그러운 여름날을 노래하고~여름향연에 참가한 산새들은 한껏 목청 높혀 즐거움을 더하게 한다.

꽃보다 더 아름다운 초록의 이파리들을 보고 있노라니 어느 결에 내 마음은 초록의 향기로 물들어 번지고 있다.

바람에 파르르 떠는 가냘픈 비비추는 넘어질 듯 ~꺽어질 듯해 보이지만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임걸령샘터

지리산종주 길에서 가장 물맛이 좋다는 곳이다.

오래전 이곳에 왔을 땐 샘터 저 편 너머로 산딸기가 지천으로 달려있었는데 산딸기나무는 찾아볼 수도 없다

자연이 훼손되니까 모두 뽑아 버렸나 보다.

여느 때 갔으면 이곳에서도 아침 식사들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이곳도 한적하다.

이곳에서 삶은계란과 귤을 먹으며 잠시 휴식을 갖는다

 

 

얼마나 지리의 사랑이 가득하면...

이곳에 내리고 있는 빗방울 소리조차 여느 빗소리 같이 느껴지지가 않고 예쁘고 곱게 들린는건지....

적응한다는 것...그리고 익숙해지고 길들여진다는 것은 그것은 고통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는 것일게다.

긴 시간 비와 친구삼아 걷다 보니 이젠 자연스레 친한 친구처럼 다가온다.

 

밤을 낮삼아 배낭 둘러메고 나서야 했던 도깨비 장난은 이제는 없겠지 했건만~

또다시 그 길을 향해 달음질 치고 있다.

 

노루목

반야봉을 오르려면 거리상으로는 1km...

언제나 지리종주를 할 때면 이곳에다 배낭을 내려 놓고 디카 하나만을 가지고 반야봉을 오르던 곳이다.

그렇지만 오늘은 조망이 없어 그냥 지나친다.

노루목을 지나 어디쯤 가고 있을 때 반대쪽에서 등산객 한 분이 지나갔다.

지리종주를 역으로 하나보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게 아니라 벽소령에서 1박을 했는데 많은 양의 비가 예상된다며 전 구간을 모두 통제하고 대피소에도 입실을 안 받고 모두 하산하라는 정보를 건네 들었다.

 

각기 다른 시간속을 머물던 사람들이 모여 같은 길을 간다는 것이 같은 호흡을 하리라고는 기대를 한건 아니지만 모두는 같은 길을 가며 다른 생활속에 머물듯 오늘도 예외는 아닌 듯 싶다.

일행 중 권사님 부부는 오던 길을 되돌아 가고~나와 일행 둘은 계속 진행한다.

 

대피소에서 등산객을 안 받아 준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지금이야 충분히 시간이 돼서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지만~

시간이 늦고 걸어 내려 갈 시간이 없으면 예약자가 아니어도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받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 말에는 전해 듣고도 조금도 걱정이 안 됐다.

그리고 오던 길은 가까운 거리도 아니고 정말 되돌아 가기가 싫었다.

나는 그렇다 치고 함께한 일행들은 지리산종주가 처음인데 가뜩이나 안개에 갇혀 풍광도 제대로 못받는데 오던 길을 되돌아 간다는 것은 정말 화가 날만큼 싫었다.

연하천이 되든~ 아님 벽소령이 되든~ 비가 내려도 안 가 본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었다.

지리산종주의 꿈을 안고~ 며칠전부터 설렘으로 가득했었는데~그 만큼 와서 오던 길 되돌아 간다는 건 정말 가슴아픈 일이다.

탈출구는 두곳이나 있기에~ 그리고 같은 거리면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싶었기에 그 길을 선택한 것이다.

 삼도봉

전남과 경상남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종주 때면 이곳에 앉아 간식도 먹고 잠자리들의 유희를 보던 곳이기도 한데 비가 내려 괜시리 ~힘들게 기념사진 한 장만을 남긴다

 

정말 심술궂은 장맛비가 얄밉다.

나는 그렇다치고 함께한 벗님들에게 멋진 지리종주의 아름다움을 다 보여주고 싶었었는데~비가 야속하기 그지 없다.

삼도봉을 지나 551계단을 내림할 땐 지난날의 추억이 떠올라 살짝 여유를 부려가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화개재

언제나 종주를 할 때면 이곳에서 한참을 쉬어가던 곳인데.... 하며 사방을 둘러보며 그냥 걸음을 재촉한다.

이제까지는 큰 오름길은 없었지만 이제부터는 아주 높지는 않지만 오르락 내리락이 반복된다.

 토끼봉, 명선봉을 지나 총각샘터에 도착했다.

총각샘터

산삼을 캐던 심마니 노총각이 발견했다 하여 총각샘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표지석이 없는 이곳은 무심코 걷다보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등로에서 50m정도 내려서면 바위틈에서 나오는 물이 수량은 적지만 물맛은 무척 시원하다.

 

이제까지 걸어온 구간 중 가장 길게 느껴진다.

경사는 급하지 않지만 오름길이 길게 이어진다.

나무계단을 오르고 나면 연하천대피소가 나오는 줄 알았더니 한참 후에야 연하천대피소 내려가는 나무계단이 보인다.

등산화엔 이미 물이 들어가 질적이기 시작한다

배낭에 먹을 것이 잔뜩 있어도 비가오니 어찌할 수가 없다

5mm~9mm의 비소식 이었는데 기상청의 오보로 이렇게 많은 양의 비가 내리다니 참 기가 막히다.

연하천대피소에 도착하니 점심을 짓고있는 등산객들로 북적인다.

그런데 코펠은 있는데 버너는 되돌아 간 권사님 배낭에 있기에 불을 빌려 라면을 끓여 점심을 먹는다

배고픈 후에 먹는 라면이라서 이제까지 먹은 라면 중에 가장 맛있게 먹은 것 같다.

 

대피소 관리직원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일 오전까지 많은 비가 내리니까 안전을 위해 모두 하산을 하란다

이곳에서 조금 가다 보면 왼족으로 음정으로 가는 갈림길이 있으니 그곳으로 하산을 하라신다.

많은양의 비만 아니면 벽소령까지 가서 음정으로 하산하면 길도 좋고 한데~어쩔 수 없이 그 길로 접어 든다.

연하천에서 음정까지는 약3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비는 내리고~길은 험하고~아마 누가 시켰더라면 엉엉 울었을지도 모른다.

한참을 지나 임도길로 들어선다

이젠 희망이 보이는 듯 하다

음정길로 접어들어 음정마을에 민박을 잡고~

그 날에 흘린 땀과 무거운 짐을 벗어 놓으니 행복이 따로없다.

누구나 힘든 과정을 거쳐 봐야 일상이 행복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피곤 할법도 한데 우리들의 이야기는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 꽃을 피운다

아마 이곳에서 민박을 안 하고 그냥 그 길로 집으로 갔더라면 많이 서운하고~ 허무했을 것이다.

꼭 행복은 산행을 통해서만이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이번 지리종주가 이렇게 도중에 무산 되지가 않았더라면 언제 이렇게 함께 몸을 비비며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까?..

하룻밤이 가져다 준 우리들의 이야기는 두고~두고~아름다운 추억의 한페이지로 자리할게다.

 

음정마을
비가 잠시 주츰하면 산안개가 자욱하게 산자락을 덮어 산이 구름에 덮혀 마치 하늘그림을 그려 놓는다.

 

  

끝까지 함께 버팀목이 되어주고~ 그리고 즐거움으로~기쁨으로 함께해 준 벗님들이 있어 지리종주의 꿈은 못이뤘지만~그나마도 행복한 지리종주였다.

 

 

주님이 계셔서 행복하고 산이 있어 행복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2010년7월20일...................산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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