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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숲

가을의 문턱에서

by 풀꽃* 2012. 9. 11.

 

 

가을의 문턱에서..

 

올여름은 길게 자리한 무더위가 사람들을 지치게 했던 것 같다.

길게 자리했던 여름도 시간 속에 꼬리를 감추고

문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실바람이 홑이불을 끌어당기게 한다.

그래서일까? 가을향기가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갑다.

누렇게 물들어 가는 들녘이 마음을 넉넉하게 한다.

뒷산에는 벌써 밤송이가 입을 벌려 튼실한 알맹이를 자랑하고

담장 너머 주렁주렁 매달린 감들은 주홍색으로 가을을 알린다.

 

인생을 계절에 비유하자면 나의 위치가 가을에 다다른 것 같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뚜렷하게 이루어 놓은 것 없이 세월만 보낸 것 같아

공허한 느낌이 든다.

 

가을이 점점 더 짙게 물들고 있다.

 이 가을을 좀 더 오래 누리고 싶어  덮었던 이불을 박차고 새벽을 깨운다.

아침이 밝으려면 아직도 먼데 가을을 만나려는 사람들은 마치 잠 잃은 노인처럼

새벽 운동을 즐기고 있다.

 

지나가고 있는 여름에는 많은 사람이 더위 때문에 잠을 설쳐선지 이른 새벽에 나와 운동을 하곤 했었는데 요즘은 더위도 가시고 선선해진 아침인데도  깊은잠에 빠져선지 운동하는 사람들이 여름보다 많이 줄었다.

사람의 생각이 다 같을 수는 없지만, 오히려 요즘 같은 날씨가 운동하기에는 덥지도 않고 더 좋은데 여름 내내 잠을 설쳐선지 설친 잠을 보충하려고 가을 잠에 푹 빠져 있는 것 같다.

 

여름 내내 울어대던 매미들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짝짓기하느라 목청 높여 울어대더니

그 듣기 좋던 매미의 음률도 사라진 지도 모르게 자취를 감췄다.

 

가을 하면 한몫을 톡톡히 하던 풀숲의 풀벌레도 한 옥타브 높은 음률로 가을을 노래하더니 요즘은 그 음률마저도 쇠하여져 아득히 멀어진 느낌이다.

 

이른 새벽에 피부에 와 닿는 소슬바람은 걷어 올렸던 소매를 끓어내리 게 한다.

아침 저녁 일교차가 심한 요즘 이러다간 얼마 후면 김장한다는 얘기가 나올 것 같다.

 

어둠이 걷히고 코발트빛 하늘이 서서히 드러나면 노랗게 물들었던 별빛은 졸음 섞인 눈망울처럼 빛을 잃어가며 하얗게 사윈다.

밤새 별빛과 달빛이 노닐던 자리엔 태양은 기분 좋은 단잠이라도 잔 듯 맑은 가을햇살을 드리워 놓고 그 안에 잠자던 새들을 초대한다.

 

초록의 무성한 숲도 갈바람의 재롱에 더 짙게 영글어 가을로 가고 있다.

풀벌레의 집은 풀숲인데 지난 여름 장마와 가을장마로 풀이 웃자라 추석을 앞두고 풀을 베고 나니 풀벌레들이 갈 곳을 잃고 수효가 줄어 집 잃은 나그네가 되어 풀벌레의 울음소리조차도 노인의 목소리처럼 약해져 있다.

그렇게 안 해도 짧은 생을 살다 갈 가녀린 목숨인데 마음이 안스럽다.

 

피부에 와 닿는 가을바람이 지난 여름 길게 자라잡고 힘들게 했던 그 무더위마저도 잊게 할만치 달갑다.

까만밤 가로등과 별빛만이 회색빛 도시를 밝히던 공원..

그곳에서 가을을 만나고 돌아서는 걸음에 가을향이 실려 있어 가뿐하다.

집에 돌아와 가을의 향기를 더 짙게 느끼고 싶어 주전자에 물을 끓여 찻잔에 감국차를 타는 순간

폐부로 느껴지는 나의 몸과 마음은 감국차를 마시기도 전에 가을이 된다.

며칠 전 가을의 정취를 조금 더 느끼고 싶어 지난가을에 땅 위를 뒹구는 단풍잎 몇 개를 주워 책갈피에 끼워 놓았던 것을 꺼내 식탁 유리 밑에 끼워 놓았다.

그것도 예쁘게 나열할 수도 있었지만 자연스럽게 하려고 땅 위를 나뒹굴던 그 모습 그대로

아무렇게나 끼워 놓았다.

몇 잎 안 되는 단풍잎이지만 그렇게 하고 나니 한결 가을 분위기가 난다.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모짜르트의 교향곡을 들으며 아침을 준비한다.

아침식탁에 오른 도토리묵과  들깻잎에서도 가을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여름 내내 괄시를 받던 뚝배기의 구수한 향기는 미각을 자극해 먹기도 전에

살찌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가을의 문턱에 서서 점점 짙어지는 가을을 내다 보니 마음이 부자가 된 듯 풍요롭다.

올 가을에는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함초롬히 피어있는 들녘에 나가 가을길을 걸으며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가을을 맞이하고 싶다.

 

 

                            2012년 9월 11일     들꽃향기..

 

 

 

 

 

 

 

친구님들 그동안 평안하신지요? 

이제 무덥던 여름도 시간 속에 꼬리를 감추고

아름답고 풍요로운 계절 가을입니다.

 

친구님들 그동안 빈방에

고운 사랑 보내 주심을 감사합니다.

 

길게 자리했던 여름처럼

저 또한 블로그에 긴 공백의 시간이었습니다.

 

딸아이가 다음 주 초면 산후조리를 끝내고

다시 보금자리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다음 주 주중이면

친구님들을 만나 뵙게 될 것 같습니다.

 

친구님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

가을을 만나는 것처럼 설렘으로 가득합니다.

 

친구님들 이 가을엔

하나님께서 주신 만물을 더 많이 사랑하고

풍요로운 가을처럼 우리의 영혼도 더욱더 성숙한

계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를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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