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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향기

한라산 종주(첫째 날)

by 풀꽃* 2013. 7. 19.

언제:2013년 6월 14일(날씨:산행하기에 적절할 만큼의 비)

어디:한라산 백록담(남벽)

위치:제주도 서귀포시

코스:영실-선작지왓-윗세오름-한라산 남벽통제소-윗세오름-어리목(산행시간:유유자적 8시간)

누구와:교회(주안등산부 교우15명) 

 

예쁜 꼬까옷 껴안고 너무 좋아 설레였던 시절!

그 시절 같진 않아도 항공기 예약을 하고 한라산 종주 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렌다.

나이는 들어가도 마음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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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제주에 도착하자 잿빛 하늘과 바람은 비를 몰고와 우리를 반긴다.

2년 전에 갔을 때도 비를 맞으며 숙소로 향했는데 이번에도 그렇다.

2층으로 된 숙소는 우리 일행이 사용하기에는 훌륭하고 넉넉한 공간이다.

마치 수학여행 온 것처럼 늦은 시간임에도 아래층 윗층에서 오가는 이야기 소리는 그칠 줄 모른다.

요즘 자주 거론 되는 층간 소음까지 이야기 해가며 까르륵~까르르 거리다 시간이 늦어서야 고요해 졌다.

여행이든 산행이든 즐거움은 그 과정부터가 마치 수학여행 온 것처럼 너무 좋다고 한다.

우리들의 들뜬 마음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은 야물차게 비를 퍼붓는다. 

늦은 시간이 되서야 빗방울 행진곡을 자장가 삼아 모두 잠이 들었다.

 

잠 못드는 습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짧은 잠을 자고 알람 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눈을 뜨고

고요를 깨우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빗소리는 내 심장 박동 소리보다 더 크게 들려 온다.

여름 우중산행은 많은 비만 아니면 산행 하는데는 별 지장이 없기에 내리는 빗소리가 그다지 신경은 쓰이지 않는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8시에 숙소를 출발해 영실로 향한다.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데도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마음이 평온함은 세월이 가져다 준 성숙함인지도 모른다.

비로 인해 초록의 들녘은 푸르름이 더하다.

화산 돌로 쌓여진 야트막한 담장 너머엔 수박이며 참외 갖가지 채소들이 유월을 이야기 한다.

 

굵어지는 빗줄기에 조바심이 날 법도 한데, 비오는 게 마치 운명인 양 긍정적으로 받아 들여진다.

영실에 도착해 타닥타닥 빗방울 행진곡에 발을 맞춰 산행이 시작된다.

비가 오든 어찌됐던 영실탐방안내소로 이어지는 길은 우리 일행들 뿐이어서 호젓해서 좋다.

경이로운 대자연의 품에서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서는 거리 그 순례의 여정이 시작된다.

인간이 걸어 놓은 문패를 지나 보이지 않는 자연의 빗장을 열고 들어선다.

 

계곡의 노래 소리와 바람의 숨소리가 고요한 여름 숲속으로 스며든다.

때묻은 마음 내려 놓고 깊은 숲 비밀스런 영역으로 들어서니 숲은 푸른 숨을 내쉬고 있다.

초록의 나무들도, 그리고 그 밑을 받히고 있는 초록의 생명들도, 내가 산을 좋아하듯 내리는 비를 찬양한다.

싱그러운 초록 내음이 상쾌하기 그지없다.

발이 아닌 마음으로 걷다 보면 도시에서 찌든 구겨진 마음이 한 걸음 한 걸음 뗄때마다 조금씩 펴진다.

 

신록의 여름을 노래하며 푸르게 물들어 있는 산!

푸른산의 계절엔 신록의 내음과 그 곁을 맴도는 시원한 공기가 흐르고 계곡을 따라 관목과 고목들이 늘어서서 한 풍경을 이룬다.

아직은 특별한 풍광은 없지만 그냥 소박함 속에 정이 가고, 아랫 세상과는 바람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고 누군가의 고향처럼 편안해서 좋다.

야트막한 계곡엔 초여름 냉기를 실은 물줄기가 부지런히 계곡을 적시며 내려간다.

한층 짙어진 숲 향이 코끝에 전해지고, 스처가는 풍경이 벌써 그리워진다.

 

 

 

산은 물을 가르지 않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

전망대에 서자 감춰져 있던 풍경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깊은 산의 품속에서 그리운 사람들을 생각한다.

 

영주 십경의 하나로 영실기암과, 기암절벽 사이로 두 줄기의 폭포가 흘러내려 절경을 이룬다.

영실기암은 마치 병풍을 둘러 쳐 놓은 듯 한라산의 원시림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곳이다.

풍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름다운 비경에 누가 뭐라지 않아도 아름다움에 발이 절로 멈춰져 지나가는 길손들이 황홀경에 빠진다. 그 명성만큼이나 장엄하다.

 

 

 

짙은 내음과 화려한 자태보다 은은한 빛깔과 향기로 수놓아진 야생화들의 모습은 이 산의 그윽한 향취를 닯아 있다.

숲은 풍요롭고 신비로운 생명력으로 푸른 숨을 내쉬며 산 빛도, 야생화들도 비를 머금고 있어 더 푸르고 싱그럽다.

산의 아침에 비가 내리고, 구름커텐이 쳐지고 산 안개가 있는 재롱, 없는 재롱으로 유희를 즐긴다.

그 풍경속에서 나도 산의 한 점이 되어 풍경을 이루고 스스럼 없이 뛰어 논다.

그러다가 그 빛을 의지해 가야할 여정을 재촉하면 몇 걸음 못가서 또다른 풍경에 걸음은 절로 멈춰진다.

그러기를 수차례 반복하다 마음은 그곳에 두고 빈 몸둥이로 능선길을 따라 숲길로 접어든다.

멀리 두었던 시선을 거두어 지척으로 당긴다.

흐린 하늘 아래서도 야생화는 더 짙은 빛을 띠고, 산 안개가 하얗게 피어오른다.

살뜰히 올라선 걸음들이 저 아래있고, 그리고 가야할 길이 저 위에 놓여져 있다.

드디어 숲길이 끝나고 평원지대가 펼쳐진다.

 

 

선작지왓..

넓은 고원은 아주 많이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세상과 외따로 떨어져 수천년을 지내왔으니까..

자연의 모습 그대로 오롯이 간직한채 누군가를 기다려 왔을시간 하늘에 닿을 듯 붉게 물들어 넓은 수평선을 이루고 있다.

 

다양한 생명들의 삶터가 되어온 고원..

누구에게나 평등한 대자연은 가장 높은 자에게 그러했듯 가장 낮은 자들에게도 똑같이 그 소박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꼭 철쭉이 아니더라도 드넓은 평원에 마음이 확~트이는 게 하늘을 날을 듯하다.

듬성듬성 철쭉의 향연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모두의 얼굴엔 철쭉보다 더 고운 미소로 환하게 펴진다..

붉은 수평선이 끝없이 펼쳐진다.

수평선 너머 철쭉의 향연이 하늘과 맞닿아 경계를 무너뜨린다.

그 옛날 용암이 뜨거웠다 한들 이보다 붉었리는 없다.

어느날 문득 지친 걸음을 멈추고 싶다면, 낮게 피어있는 철쭉처럼 이곳에 그리 서있어도 좋으리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한라산 백록담 너머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펼쳐 놓으신 줄은 정말 몰랐다.

만일 이곳을 모르고 와 보지를 못했더라면 억울해서 어찌했을까?

드넓은 평원지대의 아름다운 풍광은 언제 봐도 설렘이고 환희의 기쁨이다.

마치 천상의 길을 걷고 있는 듯 착각이 들 만큼 환상의 길이다.

가릴 것 하나 없는 평원지대에 만일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뜨거운 햇볕에 철쭉보다 더 상기된 얼굴을 했을텐데 적절하게 비가 내려 아름다운 풍광에 안개의 춤사위가 운치까지 더하는 풍경이다.

어쩜 비가 내려서 싱그럽고 더 좋았는지도 모른다.

어찌하다 산이라는 친구를 만나 행복의 놀이터에서 이런 기쁨을 누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름다운 풍경앞에 서면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가 절로 나온다.

 

가도가도 끝없는 풍경이 이어지지만 발이 땅에 멈춰 떨어지지가 않는다.

함께 한 일행들이 다 가버리고 없어도 게의치 않고 넓디 넓은 평원에 홀로 남아 그 넓은 평원을 마음에 안아 본다.

동화 속에나 나올법한 드넓은 평원지대!

그냥 두고 가기엔 너무 강렬한 유혹이다.

서서 보는 풍광과 앉아서 보는 풍광이 다르다면서 앉아도 보고, 서서도 보고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모습이다.

같은 사진 자꾸 찍는다고 핀잔을 주지만 그건 절대 아니라고 우겨가며, 수 백장의 사진이 있더라도 내게는 모두 다른 사진인 것이다.

천장을 찍으면 내 감동도 그만큼 더 깊어질지 모르니까.

 

 

풍광에 젖어 일행들은 모두 떠나가고 혼자 남아 사진을 찍다 떨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윗세오름 대피소까지 종종걸음을 친다.

만일 대피소가 없었더라면 밥을 비에 말아 먹었을텐데 이래저래 감사하다.

정성들여 준비한 반찬이 맛이 있어서 일까? 여느 때보다 갑절의 밥이 먹힌다.

기회는 찬스라 했던가?

잠시 비가 소강상태를 보여 틈새를 이용해 윗세오름 표지석에서 모두가 모여 기념사진 찍는 기회도 갖았다. 

 

 

철쭉군락지는 윗세오름에서 한라산 남벽까지 이어진다.

2년 전 한라산 남벽을 다녀온 후로는 철쭉이 필 때쯤이면, 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 철쭉의 개화 시기를 맞혀 간다는 게 이번에는 시기가 좀 늦어 철쭉도 아름다운 풍광과 이별이 아쉬운지 빨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철쭉이 조금은 사위워 가고 있지만 그래도 활홀경에 빠져 산행 내내 감동의 시간이다.

2년 전 이 길을 걸으면서 너무 감동해 먹먹하기까지 했던 그 순간이 뇌리에 스쳐간다.

전에는 누가 우리나라 산 중에서 어느 산이 가장 아름다우냐고 물어오면, 딱히 어느 산이라고 말하기가 좀 그랬는데 이제는 자신 있게 "한라산 남벽, 윗세오름, 영실, 어리목"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라산 남벽 코스는 나에게는 그만큼 감동을 가져다줄 만큼 아름다운 풍광이다.

 

백록담 남벽 분기점까지 갔다가 가던 길로 되돌아 선다.

어느 산이든 갔던 길 되돌아 가면 지루하고 재미가 없는데 왔던 길이지만 워낙 풍광이 아름다워서 지루하지가 않다.

이런 길은 몇날 며칠을 걸어도 질리지 않고, 지치지도 않을 것 같다. 

같은 풍경이지만 갈 때 틀리고 올 때 틀린 것 같다.

길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다고는 하지만, 아름다운 풍광이 끝날까봐 한 발짝 떼는 것조차가 아깝다.

할 수만 있다면 이런 곳에 집 한 채 짓고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방아오름 약수터 부근에 야생 곰취가 소담스럽게 돋아나 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진한 향기가 느껴진다.

 

 

산은 그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 꿈이 되기도 한다.

개선장군이 승리의 깃발을 들고 돌아오 듯 마음 가득 뿌듯함을 안고 하산길로 들어선다.

녹음이 우거져 나무가 하늘을 찌를듯이 쭉쭉 뻗어있다.

키큰 나무들로 우거진 숲에선 가려져 있는 높은 하늘의 먼 경치보다 길섶의 소소한 풍경에 더 눈길이 간다.

이곳에선 먼길이어서 그런지 초록의 녹음도, 야생화도 이름모를 무명초도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

 

아무리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 산의 배고픔..

산을 채 내려서지도 않았는데 산이 그리워지니 그리움의 끝은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어쩌다가 산이라는 친구를 만나 오늘도 행복의 놀이터에서 원없이 즐기며 산이라는 행복의 기둥을 세우고 산을 내려 선다.    

이제는 해마다 유월이 되면 주체할 수 없는 탐욕에 가슴은 현무암보다 더 시커멓게 타들어 가게 될 것 같다.

  

  

세상에서 제아무리 맛있는 것을 먹은들 이같이 배부르고 뿌듯할까?

산행 한 걸음, 한 걸음이 그리움의 배를 채워 몇날 며칠은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것 같다.

오늘 밤 꿈속에서는 행복의 노래를 부를 것 같다.

 

주님이 계셔서 행복하고, 산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우리에게 내어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2013년 6월 14일...........산소녀. 

 

 

                                   

 

늦어진 산행기 올려봅니다.

친구님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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