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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향기

숲의 향기와 계곡의 노래(쉰움산, 두타산)

by 풀꽃* 2013. 6. 21.

언제:2013년 6월 8일(토요일) 날씨:맑음

어디:쉰움산,두타산(1357m)

위치:강원도 삼척

코스:천은사-쉰움산-두타삼거리--산성터-12폭포-무릉계곡(쌍폭포, 용추폭포)삼화사-주차장

(산행시간:7시간 30분)
누구와:교회 주안등산부 회원 37명

 

미지의 세계를 찾아 나선다는 것은 언제나 설렘이다.

쉰움산 들머리로 들어서자 산 전체가 안개로 가득하다.

사방이 희뿌연 사위!

가릴 것 하나 없이 몰려드는 안개를 고스란히 맞고 있는 숲!

바람이 흔들어도 안개가 숲을 가둬도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는 숲. 

푸른 가지 속으로 기분 좋은 숨결을 내뱉고 있다.

선물 중에 최고의 선물은 자연이 주는 풍광이다. 

초입부터 무성한 숲은 산의 깊이를 짐작하게 한다

그 속에서 들려오는 맑은소리와 나무의 빛 그리고 나무의 향이 일상의 경계를 무너트린다.

시간의 숲에 갇힌 태초의 풍경이 바로 이곳을 두고 말하는 것 같다.

숲에 쌓여있어 몰랐던 거리..

그리움으로 아련해진 시선이 그 풍경 속에 머물고 안개에 가려진 산은 더욱 운치 있고 몽환적이다.

 

경이로운 대자연의 품으로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서는 거리의 첫걸음은 쭉쭉 뻗은 아름드리 소나무와 함께 시작된다.
새소리와 안개가 내려앉은 풍경과 자연의 소리를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것이 느껴진다.
꿈속이라 해도, 그림 속이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풍경이 펼쳐지며, 세상과 단절된 깊은 산 중의 자리한 또 다른 세상이다.
그곳에서 내뿜는 푸른 기운이 숲을 더 빛나게 한다.
내가 숲을 걷다 보면 나도 그 숲처럼 물들 것이다.


구름과 바람이 쉬어가고, 햇살이 노닐던 자리에 오늘은 자리를 내어주며 쉬어가란다.

바위틈 사이로 바람만이 수없이 지나던 길을 잠시 빌려 걷는다.

똑같지 않아 더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감히 대자연만큼은 아니겠지만 우리들의 이야기는 인간의 마음 씀씀이로 빚어낼 수 있는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숲이 감춰둔 보석 같은 풍경들 하나하나에 눈길을 주다 보면 내 영혼은 숲의 일부가 되어 숲이 이끄는 대로 빠져든다.
울창하게 땅을 뒤덮고 있던 나무와 풀들이 조금씩 비좁은 오솔길을 내어주어 그 안에 바람도 불러들이고, 새들도 불러들여 걷는 이들을 즐겁게 해준다.
힐링이란 바로 이런 시간을 말하는 것이다.

두 발을 땅에 맞대고 걷는 트래킹의 행복은 문명의 편리와 쉽사리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자연의 경이로움과 신비를 배우는 일은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경험이다.
세상의 입지를 깨닫기 전에 자연의 섭리를 먼저 깨닫기 위한 마음이 이 길 위로 이끈 이유다.

 

쉰움산..

8년 전 여름 두타산, 청옥산을 다녀온 후 긴 기다림 끝에 그 길로 접어들었다.

두타산 산줄기에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이 자리하고 있는 쉰움산이 있다는 걸 진작 알았으면 더 일찍 찾았을 것을 모르고 지내온 것이 아쉽긴 하지만 어쩜 내겐 약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안 그랬으면 오고 싶어서 안달이나 병이 났을지도 모르니까.

그만큼 쉰움산은 내게 아름다운 풍광으로 들어온다.

 

시간의 숲에 키를 키워온 아름드리 소나무들은 동해의 푸른 물줄기가 내뿜는 기운을 받아선지 우후죽순 쭉쭉 뻗어 하늘을 찌를 듯하다.

세상에 명품 소나무들의 고향이 모두가 이곳이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면 참 오랜만에 산다운 산을 오른 것 같다.

쉰움산 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은 육산과 암릉의 교차 속에 입맛대로 먹으라고 거한 성찬을 펼쳐 놓는다.

바위능선을 오르는 재미가 있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암릉산행이 험하긴 하지만 기묘한 바위를 넘나드는 것은 짜릿한 전율이 있기에 그냥 외면한다는 것은 오랜 시간 그곳에 미련이 머물게 된다. 

 

인간에게 험하다는 것은 때로 자연은 제 모습대로 살기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암릉으로 이어진 능선길로 접어들어 그 길의 중턱에서 절경을 만났다.

바위 절경을 만날 때마다 욕심은 더 커진다.

하지만 자연이 놓은 묵직한 디딤돌을 따라가기에 인간의 한 걸음이 얼마나 소중하고 긴장해야 하는지

천 길 낭떠러지 앞에 부딪혔을 때는 가야 하나 다시 내려서야 하나 갈등이 커진다.

한 번 뽑은 칼은 웬만하면 도전해야지 접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릿지화를 신었으면 조금은 소홀할 텐데 투박한 등산화를 신고 그 위험구간을 기어오르고 점프를 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거나 다를 바 없다.

마지막 최후의 순간에서는 숨소리도 죽이고 정신을 집중해 오로지 한 곳만을 바라보며 아무 생각도 나질 않는다.

눈 깜빡할 새 해냈구나 하는 승리의 기쁨과 희열이 온몸을 감싼다.

긴장감 뒤에 오는 이 짜릿함을 맛보기 위해 숨도 죽이고, 정신을 몰두했던 그 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머리에선 식은땀이 흐른다. 

자연의 신비함이 이 길 위에 있다.

쉰움산 산정에 50개의 작은 움(우물)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커다란 암반 지대의 이 기이한 풍광만으로도 명산임이 틀림없거니와 아름드리 노송들이 암릉과 어우러져 뛰어난 산세를 지니고 있다. 

 

두타산은 올려다 만 보고 갈림길에서 산성터 방향으로 내려선다.

시간이 가져다주는 성숙함인가?

이제 산에 욕심을 내기보다는 즐기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는 것 같다.

 

조붓한 오솔길은 언제 걸어도 아기자기해서 좋다.

땀이 비오 듯 흘러도 기분 좋은 땀이기에 불쾌하지가 않다. 

 

산성터에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이 숨어 있을 줄이야..

그러고 보면 산행은 무조건 길다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거북바위에서 쉬면서 한참의 시간을 보내고 산성터로 내려선다.

 

기암절벽이 병풍을 둘러친 듯 눈에 들어오는 것마다 절경이다.

바위와 잘 어우러지는 소나무는 언제 봐도 기품을 잃지 않고 꿋꿋이 커가고 있다.

바위틈에 이제 막 세상 볕을 보기 시작한 돌양지꽃!

마치 초등학교에 입학한 새내기 학생처럼 세상 때가 하나도 안 묻은 청순한 모습이다.

노란 빛의 앙증맞은 모습이 깨물어 주고 싶을 만치 귀엽다.

 

 

무릉계곡의 빼놓을 수 없는 성찬 중의 하나가 용추폭포와 쌍폭포이다.

다리는 그만 가자고 조르지만, 그냥 가면 왠지 미련이 남을 것 같아서 다시 내려와야 할 길을 마다하고 눈 맞춤을 하고 돌아서니 학창시절 말끔히 해 놓은 숙제를 끝낸 듯하다.

오늘도 뜨거운 햇살 아래 더위를 피해 솔바람에 내 육신을 묻어 두고 숲을 나오니
세상에서 맛보지 못한 기쁨과 희열이 내 안에서 춤을 춘다

 

산의 길도, 마음의 길도 푸르름으로 짙어지는 6월..

그러니 더 자주 더불어 걷고 더불어 돌아볼 일이다.

산도 그 누군가도...  

 

주님이 계셔서 행복하고, 산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우리에게 내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2013년 6월 8일..............산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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