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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향기

철쭉의 향연이 그립거든(지리산 바래봉)

by 풀꽃* 2013. 6. 3.

언제:2013년 5월 11일(토요일)  날씨:맑음

어디:지리산 바래봉(1165m)

위치:전북 남원

코스:정령치-고리봉- 세걸산-세동치-부운치-팔랑치-바래봉-용산리주차장(총 12.8km 7시간 30분)

누구와:교회 주안등산부 회원(39명) 


높은 키보다는 너른 품을 가진 산..

그 깊은 속을 누가 다 알까?

누구나가 한 번쯤은 가 본 산이지만 누구도 다 보았다 할 수 없는 산이다.

넓은 지리산에 산그리메가 너울춤을 춘다.

그 중 바래봉은 스님의 밥그릇인 바리때를 엎어놓은 모습과 닮았다 하여 바래봉이라 붙여졌다고 한다.

지리산은 한국 8경의 하나이고 5대 명산 중 하나로 그 범위가 3개도, 5개군, 15개 면에 분포되어 있다.

규모가 그만큼 커서 인지 차를 타고 정령치로 올라가는 길은 굽이굽이 고갯길로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어질어질하다.

신록이 우거졌으리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5월 중순인데도 침엽수를 빼고는 산 빛이 무채색에 가깝다.

바래봉 하면 철쭉의 명산이지만, 철쭉보다는 신록의 산 빛을 보고 싶었는데, 무채색의 산 빛을 보니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힘이 빠진다.

이렇듯 해가 갈수록 계절이 늦어지는 것 같다.

말간 햇살을 보니 오늘도 산은 고운 경치를 나눠 줄 모양이다.

정령치 휴게소..

바래봉 철쭉을 보려고 전국에서 몰려든 등산객들이 철쭉보다 더 고운 색으로 수를 놓는다.

들머리에 들어서자 숲은 산의 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싱그러운 숲 속 바람이 간간이 산을 쓸어올리고, 길섶 작은 풀꽃들은 이슬조차 채 떨구지 못한 채 단잠을 깨운다.

 

나무 아래서 볕 드는 날만 기다렸을 개별꽃과 양지꽃은 긴 겨울을 이겨내고 제 빛을 내고 있다.

발아래 펼쳐진 야생화의 고운 모습에도 등산객들의 긴 행렬로 눈인사만 건네고 지나친다.

한발 한발 나무들이 비켜준 좁은 길을 걸으며 산의 깊은 품을 헤아려 본다.

눈길로 장엄한 산맥 구석구석을 어루만지며 세상에 티 끝 하나 묻지 않은 말간 바람을 맞아가며 산의 한 점이 되어 산길로 접어든다.

가야 할 길들이 머리 위로 길게 이어져 있다.

사방이 확 트인 능선길은 명성만큼이나 위용을 자랑하며 늘어서 있다.

고도의 탓일까? 무채색의 나무가 있는가 하면, 나뭇가지에 뾰족뾰족 파릇한 이파리들이 돋아나고 있다.

인제야 봄이 조금씩 깨어나는 것 같다.

전국에서 모여든 등산객들로 산이 들썩일 정도로 시끌벅적 되지만, 따뜻한 교감은 때론 인간과 자연의 관계도 무너트려 정겨움을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들머리를 벗어나면 정체된 길이 원활하게 소통이 되겠지 했는데 긴 행렬은 가도 가도 끊이질 않는다.

지 않은 거리에 한 발 한 발 걸어 갈수록 다가서는 풍경이 지리산이라 그런지 더 정겹다.

산에 오르면 자연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산객들의 소음이 끊이질 않는다.

날개가 있다면 훨훨 날아서 호젓한 산길을 걷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정체된 길에 짜증이 나다가도 선물 같은 풍경이 다가오면 기분 좋은 숨결을 내뱉게 된다.

그래서 자연이 좋은가 보다.

지금 이 시간이 즐겁고 감동 받게 되는 것은 산의 품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개성을 갖고 있듯이 산도 산만의 독특한 개성을 가진 것 같다.

 

누가 꽃에게 나약하다 말할 수 있을까?

길섶에 보랏빛 얼레지가 고운 자태로 유희를 즐기고, 자잘한 풀꽃들이 햇살에 기지개를 켠다.

지리산은 어디를 가나 확 트인 풍경이 너른 등 같아 좋다.

그동안 얼마나 비좁은 세상 속에서 아웅다웅하며 살아왔는지 무안히 펼쳐진 이 풍경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고 연약한 존재인지 거대한 자연의 품속을 걸으며 느낀다.

 그리움으로 아련해진 시선이 그 풍경 속에 머문다.

산도 가까이 들어가 함께 나눈 시간만큼 조금씩 속내가 들여다보이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너른 품의 산도, 비좁은 사람의 마음도 별반 다를 게 없으니 사람이 산을 닮은 걸까? 산이 사람을 닮은 걸까?

지리산 팔랑치 아래 패러글라이딩 이륙장이 있어선지 푸른 창공엔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며 하늘을 날고 있다. 위에서 산을 바라보는 느낌은 어떤 느낌일까? 할 수만 있으면 해보고 싶다.

 

누구는 산을 걷는 것이 외로움이라고 말하고 누구는 축복이라고 말했다.

산을 오르는 것은 같은 이름의 산이라도 다른 전율로 다가오기 때문에, 그런 나는 축복이라는 생각에 산을 오른다.

인간에게서 조금은 멀리 있어 그리운 산이다. 

바래봉으로 가는 길은 그저 야트막한 대지 위를 가벼운 걸음으로 걸으며 오래된 자연을 만나는 것 같다.

정체된 길에서 진리를 깨닫게 된다.

산은 우리에게 빨리 가는 법, 그리고 멀리 가는 법..길 위에 힘겨움을 참아내는 법과 휴식을 즐기는 방법까지도 가르쳐 준다. 그러니 산만한 스승이 또 있을까?

 


팔랑치..

햇살이 숲을 빗질한다.

철쭉이 조금은 이르지만 이제 막 피기 시작하는 그 숲 속에서 생전 꽃구경하지 못한 사람처럼 달 뜬 마음에 곁에 있던 사람마저 고운 물이 든다.

여기까지 오면서 긴 여정의 시간이었다.

아마 철쭉만을 보러 이곳에 왔더라면 아직은 덜 핀 철쭉에 힘이 빠졌겠지만, 그저 산이 좋고 숲이 좋아 온 것이기에 조금은 아쉽지만 후해는 없다.

 

짧기에 더욱 찬란한 오월..

오월은 하늘의 구름도 숲을 떠나지 않으며 하늘의 별도 밤을 기다릴 것이다.

푸른 초록 물 소태 진 오월의 숲에서 보물을 찾듯 두리번대는 마음도 이제는 그 마음 마저도 오월의 행복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안부를 지나 용산리 주차장으로 가는 길 양옆으로 철쭉을 보러온 사람들의 원을 풀어 주기라도 하듯, 철쭉이 원 없이 피어 붉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지리산의 품이 넓다 보니 철쭉의 개화시기도 고르지가 않다.

 

정상부위에 철쭉은 좀 이르지만, 하산하면서 등로 양옆으로는 눈에 붉은 꽃물이 들 만큼 철쭉이 원 없이 피었다.

 

이고 갈 만치 이고 가라고 베푸는 숲..

때론 춤이 되고 노래가 되고 그림이 되어 세상에서 맛보지 못한 기쁨과 희열은 내 마음이 아니라

산이 주는 선물이다.

숲에 들면 가난한 영혼도 부자가 되는 평등의 숲이 된다.

내가 숲을 노래하듯 숲은 고요한 명상으로 호흡하며, 오월의 숲은 내게 걸어와 말을 건다.

연분홍 철쭉이 곱게 피면 다시 오라고..

찬란한 오월의 이 소중한 하루도 철쭉 물이 붉게 들어 흐르고 있다.

 

주님이 계셔서 행복하고, 산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2013년 5월 11일.........산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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