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2013년 4월 20일(토요일) 날씨:비&눈
어디:비슬산(1083m)
위치:대구 달성
코스:유가사-도성암-비슬산(대견봉)-대견사지-유가사-주차장(6시간 산행)
누구와:교회 주안등산부 회원 38명
깨어나는 도시를 멀리서 조용히 굽어보고 있는 산!!
봄의 문을 여는 봄비가 잔잔하게 내리면서 산과 안개가 서로에게 기댄 채 산의 하루가 열린다.
구름이 쉬어 가고 햇살이 노닐던 자리에 밤새 머물던 구름이 비를 몰고 와 대지를 촉촉이 적시며 봄을 색칠한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산은 오르고 또 올라도 늘 고마운 존재다.
세상의 소음은 물론 마음속 찌꺼기도 내리는 봄비 소리에 모두 잦아 들어 말갛게 씻겨 내린다.
봄비를 머금은 나무는 아기 피부와도 같은 연하디연한 새순이 돋아나고, 군데군데 산 벚꽃이 수를 놓아 마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그 산빛을 보고 있노라면 연초록 편지를 누군가에게 띄어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메말랐던 마음도 산 빛을 따라 연하게 봄빛으로 물들고, 차분하게 내려앉은 자욱한 안개는 마치 배경음악을 깔아 놓은 듯 운치까지 더해 그 속에서 들려오는 맑은소리로 마음이 정화된다.
나무의 빛이, 나무의 향이 일상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시간이다.
그만큼 세상과의 거리가 멀어져 있다.
자연만큼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났다 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 길 따라서 걷다 보면 연하게 물든 숲에 영혼도 푸른 물이 들 것이고, 숲처럼 푸르게 빛날 것이다.
욕심만큼 자리를 비켜주지 않는 구름이 야속하지만, 그로 인해 한 줄기 빛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비의 양이 더 이상만 많아지지 않는다면 오늘 산행의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비에 젖은 산 빛이 더욱 싱그럽게 느껴진다.
매정하게 흐르는 시간이 아쉬웠을까?
고도가 높아질수록 비가 눈으로 바뀌어 하얀 풍경이 펼쳐진다.
푸른 산의 계절엔 아직 떠나지 못한 계절이 서성인다
눈꽃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는 하지만, 개화를 앞둔 참꽃이 미쳐 꽃도 피우기 전에 얼어 죽는 건 아닌지 걱정부터가 앞선다.
봄은 밀려오는데 4월의 한 복판에 아직 겨울이 머뭇거린다.
신록의 산내음과 그 곁을 맴도는 서늘한 공기속에서 맛닿아 있는 두 계절과 마주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뭇가지에 눈이 쌓여 아름다운 설경이 펼쳐진다.
갈수록 계절이 점점 늦어져 꽃들의 개화시기도 늦어지고, 계절의 탓인지, 공해 탓인지 참꽃의 개체수도 줄어드는 것 같다.
비슬산 참꽃 개화시기가 늦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다지 설렘도 없고 그렇다고 큰 실망도 없다.
그저 자연과 함께 한다는 것 만으로 기쁨이니까.
참꽃 산행에 나섰다가 참꽃은 아직 잠을 자고 뜻밖에 생각지도 않은 설경을 선물 받아 허전했던 마음이 조금은 채워진다
살포시 피어난 진달래꽃 위에 하얗게 눈이 쌓여 마치 분홍빛 드레스에 하얀 면사포를 쓰고 있는 듯하다.
하얀 눈을 이고 있는 진달래와 생강나무 꽃!!
포근해서 피고 보니 저만치 가던 겨울이 되돌아와 하얀 웃음 지으며 겨울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두 계절을 살아나기가 녹록지 않을 텐데 진달래도 생강나무 꽃도 여린잎 하나 떨구지 않고 고고하게 시린 계절을 맞고 있다. 4월의 크리스마스를 맞는 듯하다.
오름길의 진달래와 생강나무 꽃 위에 눈이 살포시 쌓여 생각지도 않은 선물을 받아들곤 마냥 행복해하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풍경 담기에 여념이 없다.창조주께서 먼 길 잠 못 자고 달려온 정성이 갸륵해서 참꽃 대신 설화를 보여주시는 것 같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4월에 이렇게 아름다운 눈꽃은 처음이다.
아침도 가볍게 먹은 데다 그동안 산행이 뜸해서 인지 오름길이 힘겹게 느껴진다.
거친 숨이 발아래 떨어진다.
정상을 향하여 갈수록 바람도 더 거세지고 어둑해지며 장갑을 끼었는데도 손이 시리다.
그런 가운데서도 살펴보지 않으면 놓치고 말 풍경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흐린 하늘 아래서도 야생화는 봄을 노래하며 제 빛을 띠고 있다.
애잔한 꽃 앞에서 때아닌 눈은 여린 줄기를 비켜가는 너그러움을 보여주고 있다.
대견봉 정상!!
궂은 날씨임에도 산객들의 열정은 대단하다.
바람이 몰아치는데도 정상석끼고 사진찍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참꽃이 피었으면 산이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었을텐데 무채색의 산빛이다.
능선을 따라 대견사지로 가는 길목에는 그래도 곱게 핀 참꽃이 눈길을 빼앗는다.
변화무쌍한 날씨임에도 마음이 비워지고 이토록 평온해지는 건 맑은 숲이기에 가능할 것이다.
밤사이 수없이 산을 오르내렸을 구름은 쉽게 시야를 내주지 않고, 안개에 휩싸여 시간 속에서 잠을 자고 있다.
참꽃군락지..
참꽃이 만개하면 등산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이 인산인해를 이룰 텐데 참꽃은 꽃봉오리만 맺힌 채 춘잠을 자고 넓은 평원이 썰렁하기까지 하다.
대견사지에도 오늘은 썰렁하리만큼 호젓한 풍경이다.
자연이 빚어낸 조각품!
철쭉군락지 능선을 따라가는 길엔 여기 툭, 저기 툭 교묘한 바위들이 터를 잡고 길 지나는 이들의 시선을 끌어들인다.
자연의 신비를 다시금 느끼게 된다.
데크를 내려서서 유가사로 가는 길은 비 온 뒤 눈이 내려 발 딛기가 어려울 정도로 질퍽하여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그래도 심심찮게 진달래의 향연이 이어져 눈과 마음이 호사를 누린다.
산 아래로 내려갈수록 신록이 물들어 물기 머금은 나무엔 새순들이 뾰족뾰족 움을 틔우고 봄을 노래한다.
비 온 뒤의 산 빛보다 싱그러움이 또 있을까?
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마저 촉촉이 푸르게 물든다.
봄을 노래하며 푸르게 물들고 있는 산!!.
비가 그친 산자락에 하얗게 산안개가 피어오르고,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와 산 새소리가 한 화음을 이뤄 봄을 예찬한다.
산은 언제나 둘러둘러 보며 오래 두고 걷고 싶은 에둘러 가는 길인 것 같다.
그 길 위에 삶이 있고 산이 있다.
비 온 뒤 세상에 티 끝 하나 묻지 않은 말간 바람이 내 안으로 스민다.
그리고 그 안에 산의 시간이 흐르고 푸른 산이 반짝인다.
2013년 4월 20일.................산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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