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을 내려서며 대원사 계곡 심원 속으로 접어든다.

아직 물줄기는 보이지 않지만, 계곡의 줄기가 시작되는 곳이다. 

얼기설기 그물망을 쳐 놓은 원시림 속으로 들어서는 듯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활엽수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고운 빛을 띠기 시작한다.

지난해보다 열흘 정도 빨라서인지 단풍이 아직은 설익은 밥 같지만, 앞으로 펼쳐질 풍광을 떠올리니

벌써 마음이 설렌다.

 

하늘을 찌를 듯한 나무와 울창한 숲에 마음이 동요되어 나 또한 숲의 일부가 된 느낌이다.

매일 이런 곳에서 살 수는 없을까.. 숲에 물들어 마음도 평화롭다.

자연은 인간과 멀리 있어야 그 아름다움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아름다운 풍광에 나도 모르게 걸음이 멈춰진다.

봄에는 봄빛, 여름에는 여름빛, 가을에는 오색 찬란함으로 보는 이의 마음까지도 오색 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아름다운 풍광에 시샘이 나서일까?

질펀하게 깔아 놓은 돌들이 자칫하다가는 넘어지기에 십상이다.

 

고요한 숲 속 푸른 등걸엔 버섯들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

버섯들의 어울림이 참 좋아 보인다.

 

 

계곡물에 잎을 떨군 단풍잎들이 목을 축이며 시린 가을을 맞고 있다.

더러는 가을빛도 채 들지 않은 나뭇잎이 짧은 생을 마치고 있다.

 

두런대는 가을 숲 사이로 신선의 그림자를 밟으며 그 길을 걷는다.

그 길을 걷는 나 또한 신선이 된 느낌이다.

 

대원사 계곡의 무제치기폭포는 장마가 끝난 뒤에 오면 나이아가라 폭포만큼 유명세를 치르는 곳인데 가을 가뭄 탓일까? 물이 겨우 바위벽을 타고 폭포의 체면만 유지하고 있다.

 

 

파장으로 치닫는 가을이 지리산에 오래도록 머무르면 얼마나 좋을까?

수려한 침묵이 흐르는 대원사 계곡의 가을 향기가 마음머저 훈훈하게 한다.

누군가가 그랬다. 지리산에 가면 얼마나 빨리 내려오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머물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신선이 유영하듯 청정계류에 오색 단풍잎들이 갈채를 보내며 지리산의 축제를 열어간다.

계곡 바위 틈새로 흘러내린 물줄기에 햇살이 내리니 바위의 이끼 빛이 단청 빛보다 더 아름답다.

 

 

 

 

나무마다 형형색색으로 가을 수채화를 그려나간다.

운명처럼 다가온 가을이 오색빛으로 너스레를 떤다.

 

물들어 가는 단풍만 보아오다 초록의 이파리를 보니 눈도 마음도 싱그럽다.

가을이란 계절은 이렇게 갖가지 풍경을 이루고 있어 대원사 계곡이 더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