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의 정취(용화산)

언제:2012년 11월 17일(토요일) 날씨:맑음

어디:용화산(878m)

위치:강원도 춘천과 화천의 경계
코스 : 큰고개-만장봉-용화산-고탄령-사여령-배후령(산행시간 5시간 30분)

누구와:교회 주안등산부 회원 28명

 

봄에는 봄빛, 여름에는 여름빛으로 푸르던 산도 이제는 겨울빛이다.

어젯밤 내린 눈으로 산도 설렘으로 뒤척인다.

그리고 늦가을을 밀어낸다.

퇴색되어 가는 가을 산

숲은 산객을 반기고, 산객은 숲을 반긴다.

다.

빛고운 풍경 대신 낙엽 위에 첫 雪이 내려 하얀 잠을 재운다.

아직은 가을을 노래하고 싶은데 산은 고드름 고드름 수정고드름 ♪♬~♪♬~하며 겨울 노래를 부른다.

 

겨울 노랫소리에도 아랑 곳 없이 푸른 노래를 부르는 것은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늘 푸른 소나무 뿐이다.

늘 푸른 소나무처럼 나 또한 오래오래 산길을 걸으며 푸른 노래를 부르고 싶은 마음이다.

오고 가는 계절을 느낄 여유조차 없이 숨 가쁘게 흘러가는 세월...

코끝으로 전해지는 갈잎 내음과 발끝에서 느껴지는 낙엽 밟는 소리에 그리움을 달랜다.

길 따라서 걷다 보면 길의 끝에 마법처럼 풍경은 다시 채색되고 거칠었을 시간과 계절의 흐름에

가을의 향기 제대로 품어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내려다본다.

산자락 멀리 시선이 닿는 곳에 가을의 잔해가 희미하게 고여있다.

가을이 떠나가는 자리엔 어제 매단 듯, 그제 매단 듯 산객들이 매달은 꼬리표들이 바람에 나폴거리며

오색 빛 유희를 즐긴다.

용화산 정상...

내가 산에 처음 입문해 이곳에 왔을 때는 작은 정상석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상석의 얼굴도 바꼈다.

 

누군가의 지나가 버린 추억처럼 낙엽이 잔뜩 내렸다.

그 위에 눈도 내렸다.

낙엽이 하얀 이불을 덮고 하얀 꿈을 꾸고 있다.

시간은 산의 모습을 바꿔 놓아 어디를 봐도 이젠 완연한 겨울빛이다.

계절의 흐름에도 변함없이 묵언의 침묵을 지키고 있는 고사목...

생기는 잃었어도 묵묵히 한 풍경을 이루며 용화산을 지키고 있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음으로 겨울잠을 자는 산의 적막을 깨워가며 행복의 노래로 세상을 저어갈 힘을 얻는다. 

용화산은 육산과 암릉이 함께 어우러진 산으로 산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산이다.

두 계절이 함께 공존하는 11월의 용화산.

계절이 숲에 빗질을 한 자리엔 낙엽이 내려 숨김없이 속내를 다 내보인다.

어김없이 겨울이란 계절이 스며들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그락사그락 낙엽 밟는 소리가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게 해주니 이만한

호사스런 산행도 없을 듯싶다.

 

그동안 사람 없는 산을 홀로 지키고 있었던 무거운 바람은 기다렸다는 듯 탈출을 시도하고

가벼운 몸짓으로 싫지 않은 낙엽의 향기를 실어 나르느라 분주하다.

아무렇지 않게 너울대는 그 속에서 늦가을의 서정과 겨울의 서정을 동시에 만난다.

하늘 끝에 닿을 듯 서성대는 두 계절을 만난다.

 

세상을 발 아래 두고 봉우리 위에 선다.

부딪혀오는 바람이 조금은 차갑지만 상쾌하다.

걸어도 걸어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낙엽이 쌓인 길은 용화산이 풀어놓은 선물이다.

메말라 있던 마음에 훈훈한 풍경이 스민다.

시간의 흐름에 들고 나는 사람들은 변했어도 길만은 그대로 다

여전히 투박한 그 길 위로 사람도, 풍경도 오간다.

아끼던 제 것을 내려 놓을 때 나무만큼 아름다운 존재가 또 있을까?

떨군 잎 갈색빛으로 물이든 산자락에 두 계절이 흐른다.

낙엽이 쌓이듯 그 계절 속에 또 하나의 추억을 쌓아간다.

따뜻한 바람은 더디오고 찬바람은 앞서오는 산의 계절..

심심치 않게 드러나는 암릉길은 겨울의 편에 선 바람이 날을 세워 긴장감마져 들게 한다.

바위가 혼자 있는게 싫어 더딘 걸음을 요구하는 듯 하다.

바람 따라 유유히 흘러가는 풍경 속을 걷다 보면 바람의 소리와 산의 소리를 듣는 일이기도 하지만

산객의 속으로 오가던 마음까지 꺼내 놓아  친 자매, 형제만큼 끈끈한 정이 오간다.

그래서 함께 걷는 이의 마음을 듣는 일이기도 하다.

산처럼 강처럼 누군가와 함께 물들고, 누군가와 함께 흐르며 산다는 것은 서로의 곁에서 더 아름다운 삶의 자리를 말해 줄 것이다.

 

오늘도 용화산에서 떠나가는 가을을 배웅하며 낙엽이 쌓인 길을 원없이 걸으며

두고두고 이야기 할 산 하나가 더 생겼다.

 

주님이 계셔서 행복하고 산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우리에게 내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2012년 11월 17일........... 산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