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숲의 향기

걸어도 걸어도 다시 걷고 싶은 산(기백산,금원산)

by 풀꽃* 2012. 8. 20.

 

 

여름의 절정 청명한 하늘 아래 새 하루가 열리고

조용히 깨어나는 산을 굽어보고 있는 산아래 전원 풍경은 평화롭기만 하다.

 

태양이 밤새 긴 잠에 단꿈을 꾸고 볕 좋은 아침

태양은 기분 좋은 단잠이라도 잔 듯 맑은 햇살을 드리워 놓는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들어서는 산길은 순박한 자연의 숨결이 느껴지며 평화로움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자연의 소리에서 마음의 소리를 듣고 그로 인해 삶을 위안받는 일.

선인의 뜻도 바로 그러했으리라 생각된다.

천 년도 넘는 시간 속에서 옛사람이 머물던 집은 다시 지어졌지만, 만년도 넘는 시간을 지켜온 자연은 그 모습 그대로다.

 

발치의 소소한 풍경에도 눈길을 줘가며 오르는 길엔 초입부터 나무가 키를 키워온 시간이 보인다

그 속에서 들려오는 맑은소리와 나무의 빛과 향에 심신이 평온해지고 맑은 그 향에 주름진 마음이 펴진다

태양조차도 드러나지 못하는 은밀한 공간에서 큰 숨을 들이마시며 도심에서 쌓인 묵은 찌꺼기를 내뱉는다.

깊은 심원 아름다운 자연이 그 길 위에 있다.

오래간만에 푸른 숲에 한여름 볕을 피해 가며 지친 심신을 뉘인다.

초록의 무성한 숲은 자연이 키우고 사람이 즐기기에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조심스러운 발길에 나무들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나무들과 풀들의 부닥거림이 가만히 귀 기울이면 숲의 속삭임이 들릴 것만 같다

 

숲은 세월을 거스른다.

사람의 손길과 원시의 손길이 공존하는 숲길은 숲의 품으로 다가갈수록 속속들이 푸르고 싱그럽다.

은은한 초록의 실바람이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긴다

자연의 향기가 달래주는 숲의 품은 아늑하고 평온하기만 하다.

그 숲 속을 거니니 마음도 자연처럼 넉넉해진다.

이런 마음이 주어지기에 산을 오르는 것 같다.

전형적인 육산이지만 등로는 흙길과 돌부리들이 교차하면서 정신을 집중시킨다.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칠 것 같은 돌부리는 아직도 할 말이 남았는지 시치미를 떼고 한참을 참견한다.

 

긴 오름의 끝은 푸른 하늘을 향한다

떠나온 곳이 아득하게 멀어져 가고 저만치 올려다보던 곳이 어느새 눈앞에 펼쳐진다.

능선에 오르자 마치 힘겹게 오른 이의 위로처럼 시원한 바람과 야생화가 자연스레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하늘을 닿을 듯한 능선인데도 매미의 울음소리가 고요를 깨운다.

능선으로 접어들자 길 사이사이 숨겨진 보물을 내어 놓는다

바람 따라 갸웃갸웃 고개를 흔드는 몸짓에 나도 모르게 눈을 맞춘다.

그 앞에 낯선 나와 낯선 풍경이 있다

능선에 서니 기백산 자락 풍경들이 시원하게 와 닿는다

때로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 가슴 속에 잔잔한 파문이 일렁이는 파도가 되어 가슴을 적신다

아름다운 풍경 앞에선 붙잡고 있던 시간도 살짝 놓아버리며 몸과 마음을 풍경 속에 뉘인다.

어쩜 살랑살랑 바람 따라 흔들려주는 꽃이 있어 산은 덜 외로웠는지 모른다.

부푼 마음은 산 높이만큼이나 치솟아 있다.

자연만큼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이 또 있을까?

막바지 여름을 보내고 있는 산은 오랜 친구만큼이나 정겹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묵언의 고요함 만으로도 만족하다. 

이번 산행은 오랜만에 오신 집사님이 뒤에 계시고 해서  마하나임 찬양대와 엘피스중창단 집사님들을 보필하며 뒤에서 여유 있는 산행을 하기로 하였다.

주님 안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만도 기쁨인데 아름다운 자연에서 이렇게 동행하니 이만한 즐거움이 또 있을까?

여정이 길어질수록 나누는 마음도 깊어진다.

아름다운 자연과 그 자연 속에서 호흡을 함께하며 나누는 정담이 아름다운 자연만큼이나 향기롭다.

 

입추와 말복이 지나고 여름을 배웅하며 가을을 맞이하러 간 산길엔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은 시원해도 습도가 높아서인지 아름다운 풍경만큼의 땀을 흘리게 한다.

 

아름다운 풍경 앞에선 떠나가는 바람도 잠시 여유를 부리며 쉬어가라고 발목을 잡는다.

능선길엔 육산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바위 덤이 마치 꽃길로 수놓은 밋밋한 육산에 초대받은 손님처럼 눈길을 끈다.

걸어온 길에 익숙해져서일까 보폭이 꽤 다정해진 것 같다

 

모난 데 없고 부드럽게 뻗어 나간 능선.

흰 구름이 늘어선 길을 따라 걸으면 초록의 무성한 숲은 맑은소리와 숲 향으로 일상의 소리를 무너트리고 산의 길이만큼 꽃길을 열어 놓고 새소리, 바람 소리, 나뭇잎 부닥거리는 소리

그리고 같이 길 걷는 사람들의 속살거리는 소리로 한 화음을 이뤄 자연에서 마음의 소리를 듣고 그곳에서 삶의 소리를 일궈내게 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산 위에 서면 늘 오르고 싶은 다른 산이 마음에 와 닿는다

우측으론 황석산, 거망산의 마루금이 길게 띠를 잇고 있다. 

길게 이어진 능선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렌다.

언젠가는 또 저 길을 걸을 날이 오겠지.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다가오면 걸음은 서둘러지고 그 풍경 앞에 서면 걸음이 절로 멈춰진다.

조붓한 꽃길 따라 걷는 걸음이 마치 신부가 부케를 들고 식장에 들어서는 느낌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꽃길인데도 발목이 잡혀 사랑놀음 하다 보면 앞서 가는 사람들은

아득히 멀어져 가고 앞서거니 뒤서가니 걷다 보면 너나 할 것 없이 흘러나오는 언어는

좋다, 좋아 참 좋다며 몇 걸음 가다 보면 또 반복되는 소리를 풀어놓는다.

그 길 따라가다 보면 산의 높이에 따라 마음이 높아지는 게 아니라 더 낮아지는 진리를 배우게 한다.

노란 원추리가 생의 마지막 열정을 꽃피우고 있다.

그러고 보면 사람도 꽃도 아름다움은 한순간임을 알 수 있다.

 

 

능선길을 걸으며 지천으로 피어있는 들꽃들과 눈인사 건네며 사랑의 교감을 나눈다

진분홍 물감을 짜놓은 듯한 며느리밥풀꽃.

능선이 다 가도록 꽃길을 열어준 며느리밥풀꽃에는 우리 여성사의 슬프디 슬픈전설이 숨어 있다.

아들을 장가보낸 홀어머니가 며느리한테 자식을 빼앗긴 마음이 분해 아들을 멀리 일을 보내고 며느리에게는 종일 일을 시키고 구박을 하며 밥까지 굶겼다고 한다.

죽으라 하고 일만 하며 그래도 일부종사, 삼종지도를 따르느라 참고 참으며 시집살이하던 며느리가 하루는 저녁밥을 짓다가 뜸이 잘 들었나 하여 솥뚜껑을 열고 몇 알 떠서 맛을 보다가 그만 시어머니에게 들키고 말았다.

이에 화가 난 시어머니는 어른이 맛도 보기 전에 먼저 밥을 퍼먹는다고 며느리를 부지깽이로 때려죽였다고 한다.

이렇게 죽은 며느리가 묻힌 무덤에서 피어난 꽃이 바로 며느리밥풀꽃이란다.

전설을 생각하며 꽃을 감상하면 절로 마음이 애잔해진다.

 

산은 세상이 네모상자 안에 있지 않고 넓은 세상임을 보여주고 있다.

발길 닿는 풍경마다 눈길 마주하는 곳마다 선물 같은 풍경이 이어진다.

산에서만큼 즐겁고 평화로운 시간이 또 있을까?

자연과 함께하니 고요함 속에 평화롭다.

나에겐 세상에 견줄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포근함으로 다가오는 산이다.

자연도 사람도 그러고 보면 모두 다 창조주의 작품이라서 그런가 보다.

기백산 정상.

띠를 잇듯 이어진 능선길에 들꽃들과 눈인사 건너다보니 돌탑과 잘생긴 기백산의 정상 석이 눈앞에 펼쳐진다.

돌탑과 정상 석이 세워진 대지는 정상의 이름값을 하듯 조금 너른 대지 위로 파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다.

세상에서 물든 욕심 산에 올라 들여다보면 티끌 같아 보이는 게 보잘게 없어 높은 곳에 올라와 풍경 속으로 던져 버린다.

기백산 정상 숲 그늘에 점심상을 펼친다.

준비해 온 한 두 가지 음식을 한 자리에 모으니 잔칫상이 부럽지 않을 만큼 화려하다.

산행에서 먹는 즐거움이야말로 또 다른 즐거움이기도 하다.

 지난번 대야산 산행에선 안개비가 내려 식사 후 쉴 틈도 없이 바로 일어섰는데 오늘은 여유로운 식사시간이 주어진다.

그래도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숙제처럼 남아 있기에 마음의 휴식만 치하곤 자리를 일어선다.

기백산의 정상 석을 그냥 떠나보내기다 왠지 허전해 인증샷을 남긴다.

 

능선이 긴 만큼 꽃길도 길게 이어진다.

꽃길이 길게 이어지니까 마치 지리산 종주길을 걷는 느낌이다.

여린 실바람에 꽃잎들이 흔들리고 꽃잎 물에 보는 이의 마음도 흔들린다

꽃들이 길손을 막고 주변의 풍경들이 시선을 끈다.

화원의 꽃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어쩜 소박함이 묻어 있어서 더 좋았는지도 모른다.

 

내 인생에 반을 훌쩍 넘어온 길이 어느새 인생의 가을 문턱을 넘고 있다.

반쯤 살아온 길로 되돌릴 수만 있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마음은 늘 동심이니 이제는 나이를 생각지 말고 마음의 나이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내 인생을 보다 아름답게 채색할 것 같다.

 

수려한 자태의 한 그루의 소나무가 길가는 이의 눈길과 발목을 잡는다.

굳이 치장하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길 지나는 사람들의 마음이 와 닿는 곳이다.

잠깐의 시간을 빌려 마음과 몸을 내려놓으며 인증샷을 하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다시 가던 길로 들어서지만 한참의 시간이 그곳에 머물게 된다.

그만큼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오르락내리락 조붓한 꽃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음은 꽃물이 들어 꽃보다 더 고운 마음이 된다. 그래서 우리에겐 환경이 중요한가 보다.

웬 산속에 염소가 나타났다.

그것도 천 미터가 넘는 능선길에 염소가 나타나다니 반갑기보다는 염려가 된다.

이제까지 많은 산에 발을 디뎠지만 보기 드문 풍경이다.

아마 보나 마나 십중팔구 숫염소와 암염소가 눈이 맞아 주인 눈을 피해 가출을 한 것 같다.

그래도 그렇지 지금은 기온이 따뜻해서 괜찮지만, 폭설이라도 내리는 겨울이 오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걱정이 앞선다.

 

앞에 가는 일행들은 벌써 금원산 정상을 향하고 있다.

늘 이럴 때 드는 생각은 날개가 있으면 날아가고 싶은 생각이다.

능선길에 흔치 않은 정자가 세워져 있다.

다들 쉬고 있는데 나는 주변의 꽃에 마음이 가 그곳은 안중에도 없다.

 

산길에서 보기 드문 잉크 빛 붓꽃이 마음을 빼앗는다.

산길을 걷는 사람들의 마음이 다 같을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옆에 두고 마음이 가지 않는다는 것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곧 이어지는 오름길의 풍경이 마음에 와 닿는다.

오름길이긴 해도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참 평화로워 보인다.

산의 토질도 이제까지 오던 길과는 달리 마사토로 되어있다.

오름길의 끝은 파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다.

그곳이 금원산 정상인 줄 알았더니 금원산 정상은 촤측으로 약 200m쯤에 있고

둥그러니 돌탑만이 정상인 것처럼 자릴하고 있다.

산행 중 가장 싫은 것이 있다면 가던길로 되돌아오는 것인데 이번 금원산 정상이 바로 그런 격이다.

 

그래도 안 가면 왠지 손해보는 느낌이 들어 발품을 팔어 인증샷을 남긴다.

이제 돌탑부터는 내림길로 하산길이다.

전형적인 육산의 길로 조금은 어둑한 느낌이다.

지난번 대야산 하산길이 험했었기에 발을 내딛으면서도 설마 그러기야 할까? 란 생각이 스치면서 안도감이 든다.

하산길의 길이는 그리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적당한 길이로 유안청계곡을 끼고 있다.

올 여름 장마가 짧아선지 물의 수량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여름의 막바지 더위를 식히는 상충객들이 자리를 하고 있다.

 

오늘도 회색빛 도시를 탈출해 아름다운 자연에서 자연이 만들어낸 풋풋한 선물을 한아름 안고

새벽 달빛의 환송을 받으며 나섰던 그 자리로 들어서는 걸음이 가쁜하다.

한동안 기백산,금원산에서 담아온 풍경을 삶으로 내려 놓고 그 풍경으로 인해 내 삶이 조금은 풍요롭고 행복해 지겠지.

 

 

주님이 계셔서 행복하고 산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2012년 8월11일 .............산소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