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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향기

숲의 향기와 계곡의 노래(가리왕산)

by 풀꽃* 2012. 10. 26.

언제:2012년 9월 15일(토요일)  날씨:산 아래는 맑고 산속은 안개로 자욱했던 날

어디:가리왕산(1561m)

위치:강원도 정선

코스:장구목이-임도-삼거리-정상-삼거리-중봉-숙암분교(3코스출발~4코스도착)

산행시간:8시간

누구와:교회 주안등산부 회원 23명

 

 

 숲의 향기와 계곡의 노래

 

식지 않을 것 같은 여름의 열기도 어느새 사그라지고 아침 저녁으로는 소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초가을 가을바람 따라 풍경이 아름다운 고장 강원도 정선으로 산행에 나섰다.
가리왕산은 수목이 울창한 탓에 고산의 준봉답게 규모가 대단하다.
주목과 활엽수가 수풀 림을 이뤄 그냥 걷기만 해도 저절로 산림욕이 되는 빽빽한 숲이다.

 

산의 품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은 산을 닮아가는 걸까?

산에 들면 자연과 하나되는 느낌이다.

숲길에 들어서자 싱그러운 바람이 산의 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싱그러운 소슬바람이 가만히 산을 쓸어올린다.

간밤에 이슬조차 채 떨구지 못한 단잠을 깨운다.

창공으로 가지를 펼친 나무들의 기세에 햇빛마져 숨어든 가리왕산의 어스름한 숲은

고요하고 아득하다.

나무들이 비켜준 좁은 길을 한 발 한 발 걸으며 산의 깊은 품속으로 접어든다.

세상에 티 끝 하나 묻지 않은 말간 바람이 분다.

계곡이 열리고 중간 중간 만나는 이끼계곡의 자연미가 일품으로 숲의 그림자가 짙다

장구목이 도로 건너편에 푸른빛의 울창한 적송이 기분을 좋게 한다.

언제부터인지 적송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3년전 가리왕산을 찾았을 때는 이곳에 물레방아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물레방아는 간 곳 없고  긴 물줄기만이 내리 흐르고 있다.

계곡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들어서자 세상의 소음은 물론 마음 속의 묵은 때까지 우렁찬 계곡물 소리에 모두 잦아들고 깨끗하게 씻겨 내려나가는 것 같다.

 

갓깨난 산이 싱그러운 얼굴로 푸르게 일렁인다.

등산로에 들어서자 함초롬히 피어있는 들꽃에게 그만 걸음이 붙들린다.

이렇게 곱고 예쁜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오르고 올라도 늘 그리운 산이다.

그리고 언제든 달려올 수 있는 산이 있기에 행복하다.

그런 봉우리 하나 품고 사는 삶은 얼마나 설레는 것인지 가리왕산의 품에서 다시금 깨닫는다.

무성한 숲이 드리운 그늘은 한낯인데도 저물녘처럼 어슴프레하다.

나무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조각 하늘이 왠지 더 푸르게 느껴진다.

위를 봐도 나무, 옆을 봐도 나무, 사방이 나무로 숲을 이룬다

여기서만 만날 수 있는 숲과 여기서만 마실 수 있는 공기기에 더 소중하게 느껴져

큰 숨을 들이킨다.

이곳을 떠나는 순간부터 금새 그리워질테니까.. 

가리왕산에는 유난히도 투구꽃이 많이 피어있다.

잉크빛 투구꽃은 투구를 닮았다 하여 이름이 지어졌다 한다.

어제인 듯 그제인 듯 매달린 산행의 길라잡이 꼬리표가 바람에 나폴댄다.

계곡이 깊어질수록 시원한 물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숲을 파고든 안개는 피부로 스며 시원함을 더해주고 물길따라 오르다 보니 더위는 커녕 살짝 한기까지 찾아든다.

 

 

계곡물은 지역에 식수로 이용될 만큼 맑다.

자연과 시간은 길이 품은 상처를 덮어주고 이제는 이 길 위를 걷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가만히 어루만저 준다

그져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비워진다.

이토록 평온해 지는 건 맑은 숲이기에 가능할 것이다.

은밀한 공간에서 자연은 몸을 불리고 빛을 발하고 있다.

인적 없는 한적한 숲을 채우는 건 청아한 새소리와 희뿌연 안개 뿐이다.

이런 곳에선 숨소리, 발소리조차도 내기가 부담스러울만치 고요하다.

숲은 드러내지 않을 때 더 신비롭듯이 한없이 평화롭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산다는 주목의 그 웅장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한다.

앞에서 볼 때는 이렇게 멀쩡하게 보이는데 주목나무 반대 쪽은 속이 텅 비어있다.

주목나무는 그만큼 생명력이 강하므로 오랜 세월을 보내는 것 같다.

 

오름길이 어떤 이에겐 죽을 만치 힘든 길이었을 테고, 어떤 이에겐 참 포근한 길이었을 것이다.

이골저골 숲길로 오르다 보면 고요한 정적에 마치 꿈길을 더듬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시간이 멈춰 버린 비밀의 장소 장구목이 이끼계곡..

아~정말 시간이 멈춰 버린 공간이다.

태고의 신비가 지금도 살아서 존재하고 있는 숲 속 세상은 나무와 안개가 어우러져 어스름하다.

무성한 숲과 습도가 만나 이렇게 비단결 같은 초록의 이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인간의 힘으로는 흉내낼래야 흉내낼 수 없는 자연의 힘이다.

그러고 보면 햇빛도,구름도, 안개도, 바람도 없어서는 안 될 모두가 소중한 것이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고도가 높아 수목도 낮아지고 바람도 거세진다.

순간순간 변화하는 구름 능선과 어우러진 자연의 풍광과 태고의 신비가 가득함은

보는 이의 마음을 무아지경으로 만든다.

발아래로 펼쳐진 운해가 남해의 다도해를 바라보는 것 같다.

구름 사이로 올라온 봉우리 하나하나가 수반 위에 올린 수석처럼 보인다.

 

나무에도 이끼가 서식해 초록의 비단옷을 입고 돌에도 초록의 비단옷을 입었다.

그만큼 숲이 깊고 모든 조건이 어우러져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을 이루고 있다.

 

산 위에서 바라보면 산그리메 사이로 하얗게 피어오르는 춤추는 구름과 초록의 향이 묻어나는 듯 아름다운 숲과 태고의 신비처럼 느껴지는 자연의 모습들이 가슴 속에 자리하여 심신을 평온케 한다.

 

누구는 산을 걷는 것이 외로움이라고 말하고 누구는 축복이라고 말했다.

그런 나는 축복이라는 생각에 산을 오르고 있다.

산을 오르는 것은 같은 이름의 산이라도 다른 전율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인간에게서 조금은 멀리 있어 그리운 산이다. 

 

8부 능선쯤 오르자 막혀있던 조망이 트이기 시작하지만 안개가 시샘이 나는지 훼방을 논다.

풍광을 핑계 삼아 잠시 머물며 숨을 고른다.

작은 것 하나에도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이고 또 마음을 건네며 자연과 하나가 된다.

그 풍경 속에 지금 내가 이렇게 있다고 생각하니까 힘듬도 잊고 지쳤던 마음이

금새 다시 부풀어 오른다.

자연이든 사람이든 인연을 맺는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낀다.

 

먼저 올라온 일행들은 벌써 정상을 다녀온 후 점심상을 펼쳤다.

고도가 높다 보니 기온이 차서  먼저 서두른 것 같다.

 

우리는 다른 한켠에 또 하나의 점심상을 펼친다.

먹기에도 아까울 정도의 산상에서의 호화로운 성찬이다.

따사로운 가을 햇살 아래서 여유로운 시간을 갖으면서 점심을 먹고 싶었는데

기온이 차니까 마음이 급해진다.

산악날씨는 이렇듯이 변화무쌍한 것 같다.

산 아래는 가을 햇살이 내려 쬘텐데 산 위는 이렇게 한기를 느낄만큼 차갑다.

 

 

가리왕산 정상.

 

거친 바람이 먼저 와닿는 곳 가리왕산 정상이다.

산 위에는 외로운 바람을 이겨냈을 고산식물이 낮은키로 강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지금도 매순간 나고, 자라고 있는 생명체가 여려 보이지만 강한 그 호흡을 함께 하기에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버티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푸른 빛 속에 감춘 수만년의 그 시간을 함께 공감해 본다.

 

1561m 가리왕산 정상에 서니 세상이 내발아래 있다.

안개로 뿌옇게 덮힌 발아래 세상을 내려다 보며 잠시 쉼을 갖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상이란 두 글자가 이렇게 감격스런 것이구나 하며 이시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안타까운 게 있다면 초원지대인 정상에서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햇살 속에 불어오는

소슬바람도 만나고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가을 들꽃을 만끽하고 싶었는데 짙은 안개와 찬기운이 등을 밀어낸다.

 

언제나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란 늘 불가능한 법이다.

정상에서 맑은 가을 햇살을 원했지만 안개가 드리워진 숲속과 이끼계곡이 어쩜 그래서

더 운치 있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숲속과 이끼계곡은 그래야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가을장마 탓일까?

습도가 많다 보니 나무에 서식하는 버섯이 길게 띠를 있듯이 즐비하다.

그래서 볼거리가 늘어나 행복의 가지 수도 하나 더 늘어났다.

그러고 보면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아름다운 풍광은 무궁무진하다.

 

인적이 뜸한 하산길..

인적이 뜸해 가끔 마주치는 산객들이 더 반갑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마음을 품어서인지 산객들과 나누는 인사는 참 정겹다.

이만큼 호사스러운게 또 있을까?

발아래로 절경이 흘러간다.

길섶에는 많지는 않지만 둥근이질풀을 비롯해서 야생화들이 고운 얼굴을 내민채 설렘을 갖게 한다.

 동자꽃은 겨울철 산속 암자에서 동자승이 스님을 기다리다 추위와 배고품에 떨다가 얼어죽어 그 자리에서 피어났다는 슬픈 전설을 지니고 있다.

동자꽃은 한여름에 피어나는데 무슨 사연이 있길래 아직도 가을의 문턱에서 홀로 쓸쓸히 가을을 맞고 있을까?

 

하산길은 특별히 힘든 곳 없이 순하고 부드러운 편이다.

바삐 움직이는 건 능선을 넘나드는 안개구름 때문에 걸음도 마음도 짙푸르게 펼쳐진 풍경속에 멈춰버린다.

그 풍경 속에 붙박여 살아가는 생명들도 그리고 산객들도 잠시 머물렀다 간다.

 

 

인고의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고목들이 진풍경을 이루고 있다.

그런 풍광 속에 갇혀 한 걸음 내딛으면 다시 발목이 잡혀 연실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게 된다.

사람들은 같은 산을 올랐지만 서로 다른 방법으로 이 순간과 풍광을 담는다.

능선을 타고 흐르는 구름 바다만이 이 마음을 알까?

 

고도가 높은만큼 하산길의 숲도 깊다.

빽빽하게 하늘을 덮은 나무들 사이로 안개가 근근히 파고드는 숲..

시시각각 변해버리는 산의 표정들이 시간속에서 빛나고 있다.

산을 감싼 구름사이로 시간이 흐른다.

희미하게 가려져 더 아름다운 산의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지난번 태풍 때 뽑혔는지 오랜 시간 자라온 여인의 살결같은 흰자작나무가 뿌리채 뽑혀

몸을 뉘었다.

저만큼 자랄라면 숱한 세월을 보냈을텐데 참 안타깝다.

바라보는 나도 안타까운데 산 속 은밀한 숲에서 친구처럼 함께 지내온 이웃한 나무들은 얼마나 허전하고 안타까워 했을까..

 

 

    가리왕산 중봉..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가리왕산 중봉에 활강경기장을 건설하기로 했던 논란이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기로 하고 예정대로 세워지기로 됐다.

 

세상과 단절된 깊은 숲 속

이곳이야 말로  경사도 없고 해서 활경기장이 들어서면 안성맞춤 같다.

말 그대로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여 아름다운 자연이 잘 보존 되었으면 좋겠다.

 

세월이 지날수록 나의 산행 패턴도 바뀌고 있다.

여럿이 하는 산행도 좋지만 이제는 여럿이 하는 산행보다는 혼자서 자연과 벗하며

조급함이 없이 여유로운 마음으로 산길을 걷고 싶다.

곧게 쭉쭉뻗은 나무를 보면 곧은 인격을 생각케 하고, 아름드리 나무를 보면 오래전

제부께서 한 말이 생각난다.(장로님 감이라고..)

 

울창한 숲길은 걸어도 걸어도 하늘이 열리지 않는다.

한낮인데도 숲에 하늘이 가려 해질녘 같이 어슴프레 하지만

하루종일 어둑한 곳을 걸어도 마음은 밝고 맑은 기운으로 가득하다.

산은 그래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 같다.

 

산길을 걸으면서 산행 내내 감사한 마음이 떠나지 않는다.

그동안 지내오면서 이런저런 잦은 사고로 발목과 무릎에 무리가 와서 다시는

산행을 하지 못할 것만 같았었는데 이렇게 다시 그토록 좋아하는 산길을 걷고 있으니

마음이 벅찰만치 감동이 인다.

산 아래로 내려 갈수록 나무의 키가 하늘을 찌른다.

세월을 어느만큼 보내야 저만큼 자랄 수가 있을까?

누가 가꾸지 않아도 하늘이 내려주는 햇빛과 바람. 그리고 이슬과 비를 맞아가며 키를

키워온 걸 보면 모든 생물은 하늘의 도움으로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하늘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 같다.

하산을 하면서 임도길을 두 번을 건넨다.

길섶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개미취가 가을의 정취를 안겨 준다.

가을의 정취를 조금 더 느끼고 싶어 그 물결 속으로 뛰어든다.

어느덧 나이는 인생의 가을을 향해 달려가지만 이런 걸 보면 마음은 늘 꿈많던 동심이다.

 

쭉쭉뻗은 나무 사이로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이제 조금만 가면 끝나는 하산의 기쁨과, 산을 떠나보낸다는 아쉬움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이런 마음이 드는 건 산행 때마다 반복된다.

산을 내려와 마을로 내려선다.

들녘엔 그리 곱지는 않지만 가을 들꽃과 억새로 가을이 무르 익고 있다.

잘 다듬어지지 않은 들녘이지만 그 속에서 자연의 순수함과 평온함이 느껴진다.

굳이 치장하지 않아도 포근해 보이고 넉넉해 보이는 전원 풍경이다.

하늘을 나는 고추잠자리와 코스모스에서도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시골풍이 묻어나는 이런 길을 걷고 있음도 참 좋다.

 

두 얼굴을 가진 날씨였다.

산 아래 펼쳐진 바깥세상은 가을 햇살이 따사로운 전형적인 가을 날씨인데

산 속은 짙은 안개가 춤을 추는 새에덴동산의 하루였다.

 

비밀의 숲 가리왕산..

오늘도 하나님께서 펼쳐 놓으신 가리왕산에서 숲의 향기와 계곡의 노래소리를 들으며

자연과 벗 삼아 교감을 나누며 행복한 시간이 가슴 속에 고스란히 묻혀 있다.

 

가리왕산은 역시 안개 속에 묻혀 있을 때가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주님이 계셔서 행복하고 산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2012년 9월 15일...........산소녀

 

 

                    산행한 지가 한 달 하고도 열흘정도가 늦은 지각쟁이 후기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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