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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향기

2012 지리산 종주 (첫째 날)

by 풀꽃* 2012. 12. 26.

언제:2012년 10월 4일,5일 6일(3일 밤 22시 53분 무궁화열차로 출발 ) 날씨:맑음

어디:지리산(1915m)

위치:전남 구례,전북 남원,경남 함양,산청,하동(3개 도, 5개 군)

코스:성삼재-노고단-돼지평전-임걸령-노루목-반야봉-삼도봉-화개재-토끼봉-명선봉-총각샘터-연하천대피소-벽소령대피소(1박)

총거리:성삼재~벽소령대피소(11.5km) 유유자적 즐기면서 12시간

 

 

<들어가기 전>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된 지리산은 그 범위가 3개 도, 5개 군,15개 면에 걸쳐있으며 4백 84㎢ (1억3천만 평)으로 광대하게 펼쳐져 있다

이러한 지리산의 등뼈를 이루고 있는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활처럼 굽은 25.5㎞의 주능선은

노고단, 반야봉, 토끼봉, 칠선봉, 촛대봉, 천왕봉 등 1천5백m 이상의 봉우리만도 16개나 이어진다.   

이 주능선 산행을 지리산 종주라 한다.

등정, 하산거리까지 합치면 보통 50km ~ 60km가 넘으며 2박 3일에 20-~25시간 이상 걸어야 한다

지리산종주는 아마추어 등산인들에게는 "진짜 산꾼"의 경지에 올라서는 관문 같은 코스이다.

 

지난해 가을 지리산 종주를 하고 배낭의 무게에 눌러 무릎에 무리가 와서 다시는 산행을 못할 것만 같았는데 이렇게 또다시 산행할 수 있음이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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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동안의 일용할 양식..(이동식 슈퍼마켓)

배낭의 크기 50리터(무게 12.5kg)

 

지리산 종주..

그 여정의 시작은 영등포역에서 설렘과 그리움을 무궁화 열차에 싣고 시작되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꿈꾸는 게 지리산 종주다.

 

어머니 품같이 포근하다 하는 지리산!

지난해 가을 지리산 종주를 하고 그 그리움에 다시 지리산 종주 길에 나섰다.

지난해 지리산 종주를 했을 땐 시기가 좀 늦어 단풍이 다 지고 삼도봉 아래와 대원사계곡에만

가을빛이 남았었기에 이번에는 일찍 서둘렀다.

 

싱그럽던 이파리도, 하늘도, 땅도, 사람의 마음도 붉게 물들어가는 가을..

아름답고 아련하다 못해 아쉬움을 남기는 계절..

지리산을 어느 만큼 올라야 그 그리움이 가실까?

걸으면 걸을수록 그 길이만큼이나 그리움이 더 깊어지는 게 지라산인 것 같다.

2박 3일을 걷고도 그리움은 더 깊어져 아예 그곳에 머물러 있고 싶은 심정이다.

내 삶에 있어 지리산은 늘 그런 곳이다.

산을 떠나기도 전에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사람의 마음을 끌어들인다.

 

가을은 그 계절만큼이나 즐길만한 것이 많이 있지만 트레커들에겐 산행만큼 즐거운 게 또 있을까?

물들어가는 가을 산에 곱게 피어 있을 구절초와 가을꽃들이 다 사위어지는 건 아닌지 동동걸음이 쳐지기도 한다.

 

인생에는 수많은 갈피가 있지만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많아지면서부터 그 세월 속에

얼마나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았으며 그리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살았는지

인식하게 되는 요즘이다.

파릇한 젊은 시절의 꿈을 좇아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어느새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진다.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즈음이면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고 매일매일 아름답게 살 수는 없지만, 계절의 분기별로라도 아름다운 추억 하나쯤은 남기고 싶다.

그 안에 나보고 손꼽으라고 하면 "가을 지리산 종주"와 "봄 지리산 종주"를 꼭 넣고 싶다.

지리산 종주는 그만큼 나에게 그리움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산이라고 부를 만큼 포근하고 품 넓은 지리산이다.

그 깊은 속을 누가 다 알까?

지금까지 수많은 산을 올랐어도 마르지 않는 산을 향한 그리움!

지리산 종주는 가고 싶을 때마다 갈 수 없었기에 더 간절한 마음으로 다가온다.

목마른 뒤에 마시는 물이 더 달듯이 마음껏 그리워한 뒤에 만나는 산은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매번 지리산 종주를 할 때면 다 차려 놓은 밥상에서 밥을 먹듯이 편하게 따라만 다녔는데

이번에는 일행들을 인솔하려니까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리더로서 많은 신경이 쓰인다.

 

영등포역에서 밤차를 타고 구례구역에 03시 15분에 도착했다.

매번 지리산 종주를 할 때면 성삼재 오름길에 있는 해장국집에서 아침을 먹곤 했는데

오늘은 구례구역 앞 식당에 들어가 올갱이해장국으로 이른 아침을 먹고 택시로 성삼재까지 이동했다.

단잠을 자는 지리산!

까만 밤 달빛과 별빛 그리고 새벽바람만이 그 문을 지키고 있다.

이른 새벽 피부에 와닿는 바람이 쌀쌀하지만, 지리산 그 넉넉한 품에 안긴다고 하니까 마음만은 따뜻하다.

노고단으로 향하는 길은 불빛이 없어도 될 만큼 보름을 조금 지난 달빛과 별빛만으로도 길의 흐름을 가늠할 수가 있다.

그 풍경 속에 바람 소리,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 실개천 흐르는 소리, 그리고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 소리가 하모니를 이뤄 잠자고 있는 지리산을 깨운다.

 

노고단대피소..

노고단 대피소는 이른 시간임에도 아침을 준비하는 산객들로 북적인다.

이번 지리산 종주는 여느 때와 달리 산에서 2박을 하기에 여유로운 산행이 될 것 같다.

이번에는 시간이  일러 노고단 돌탑에 도착했는데도 어둡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어림잡아 인증사진을 남긴다.

그러는 동안 어슴푸레 여명이 밝아온다.

천왕봉에서 보는 일출만은 못하지만, 매번 지리산 종주를 할 때면 늘 이곳에서 일출을 맞이하곤 했었다.

노고단 정상은 탐방예약제 도입으로 인터넷 예약 및 현장접수를 통하여 여름 성수기에는

하루 오전에 3회 오후에 3회 1회 185명 1일 1.120명만 제한적 출입을 허용하기에

지리산 종주를 수없이 여러 번 했어도 노고단 정상은 늘 바라보고만 지나치게 된다.

 

노고단을 내려서는 걸음이 경쾌하다.

지난해 왔을 때와 불과 열흘 정도 차이인데 이렇게 차이가 날까.

지난해에는 나무들이 잎을 떨구고 가지만 앙상했는데 올해는 나뭇잎이 곱게 물들어 마음까지 훈훈하다.

 

지리의 품 속으로 들어서니 마음 또한 지리산을 닮아가는 걸까?

마음이 지리산 만큼이나 넓어지는 것 같다.

동행하는 이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리더로서 풍경 하나하나를  일일히 설명해 주며 그들의 마음에 지리산을 심어준다.

 

 

길 양옆으로 들꽃들이 흐르러지게 피고 철쭉나무가 담을 쌓듯 언제 걸어도 정겨운 길이다.

내년 봄에는 쩔쭉이 곱게 핀 길을 걷고 싶다.

 

 

멀리 왕시루봉 아래 운해의 바다가 하얗게 펼쳐진다.

매번 지리산 종주를 할 때면 펼쳐지던 풍경이다.

마치 산이 바다 위에 떠있는 듯 그 풍경 앞에서 마음이 황홀할 만치 순백의 평화를 이룬다.

창조주 하나님만이 연출할 수 있는 풍경이다.

임걸령 샘터.

지리산에서 물맛이 가장 좋기로 소문난 임걸령 샘터!

물의 수량도 풍부하여 등산객들이 이곳에서 쉬며 아침을 해결하는 곳이기도 하다.

펼쳐 놓은 그 넉넉한 품 안에서 생명은 불어나 숲을 이루고 봉우리들은 솟아나 능선을 이루었다.

추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는 조붓한 등로 위로 앞장선 걸음에 뒤에 선 이들의 걸음이 포개지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 흥겨운 노래가 되어 더 짙은 가을 속으로 접어든다.

같은 곳을 향해 걸으며 같은 풍경을 본다.

 

봄꽃은 땅에서 피어 산을 타고 오르고 가을 단풍은 산마루에서 붉어져 아래로 번져간다.

비슷해 보여도 하나같이 같은 색이 없다.

아직 푸른 기운 전부 떨치지 못했지만 숲은 이미 온갖 색으로  가을을 열어가고 있다.

이어지는 길에 꽃길이 열리니 마음에도 꽃물이 든다.

자연과 시간은 아름다움으로 상처를 덮어 주고 이제는 그 길 위를 걷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어루만져 준다.

그저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비워지고 평온해지는 건 맑은 숲이기에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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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봉..

파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는 반야봉!

반야봉은 반야 낙조라 할 만큼 낙조가 아름다운 곳이다.

지리산과 노닐던 햇살이 내릴 때쯤 반야봉 낙조는 황홀할 만치 아름다운 곳이다.

떨쳐낼 수 없는 외로움의 표상처럼 반야를 가르고 서 있는 표지석이 황홀만치 아름다운 낙조를

기다리고 있다.

 

노루목 삼거리에서 반야봉까지는 왕복 1시간 거리지만 오름길이라 종주를 하는 사람들은 무거운 배낭 때문에 그냥 지나치거나 그렇지 않으면 조금 오르다가 배낭을 숲 속에 내려놓고 오르곤 한다.

우리 역시 일행 둘은 노루목 삼거리에서 쉬고 있기에 배낭을 내려놓고 가볍게 올랐다.

반야봉에서 바라보니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이 겹겹이 멀어 보이지만 그 안에 갇혀 있는 풍경들을 생각하면 힘듦보다는 기쁨이 더 앞선다.

삼도봉..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지난해에는 삼도봉 아래 단풍이 아침 햇살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을 이뤘는데 올해는 좀 이른 듯하다.

 

 

삼도봉을 지나 화개재로 내려서는 길은 550개의 나무계단으로 이루어져 반대 방향에서 오르는 사람에겐 죽음의 계단일 것이다.

긴 계단이긴 하지만 이곳을 지날 땐 풍광이 아름다워 한참을 쉬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화개재..

화개재는 너른 평지로 되어 있다.

이곳은 장터목과 함께 지리산 능선의 옛 장터로 소금과 해산물, 삼베 등을 지고 1360m 화개재까지 올라와 장이 서던 곳이다.

지난해 이곳을 지날 땐 단풍이 곱게 들었었는데 아직은 초록의 향기로 어슴푸레하다.

너른 평지엔 쑥부쟁이와 구절초가 피어나 한낮 가을 햇살을 받으며 길 지나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며 그들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등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단풍 물이 든 숲은 연지곤지 찍은 새색시의 얼굴처럼 곱디고운 빛을 띠고 있다.

마치 갓 시집 온 새악시처럼 수줍은 모습으로 등을 돌리고 있다.

조용한 숲길에 다람쥐 대신 폴짝대는 건 마음만 파릇한 지천명을 넘긴 우리들이다. 

 

지리산 너른 품에 참 살뜰히도 구석구석 가을빛을 숨겨 놓았다.

하나씩 찾아보는 재미가 가을만 한 게 또 있을까?

봄에는 봄빛, 여름에는 여름빛으로 푸르던 산도 이젠 가을빛이다.

바람이 실어 나르는 그 계절에 산이 뒤척이며 어머니 품만큼이나 넓은 가을을 맞는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가을빛이 곱게 물들고 있다.

지리산은 규모가 커 단풍의 시기도 한쪽이 물들면 다른 한쪽은 푸른빛이다.

지금 이 정도의 단풍이면 지리산 단풍은 주능선을 타고 너울춤을 출 것 같다.

지리산 종주 중 오름길이 가장 길게 이어지는 곳이 총각샘터를 지나 연하천 대피소를 향하는 길이다.

배낭의 무게를 줄인다고 했어도 지난해와 별 차이가 없다. 

오름길이 길지만 한 발, 한 발 포개어 걷다 보면 하얀 구름을 이고 있는 연하천 언덕마루에 오르게 된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아무 말 없이 따라오는 일행들이 참 대견스럽고 고맙기 그지없다.

 

 

연하천 대피소..

종주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곳이다.

식수도 풍부하고 식수장이 바로 곁에 있어서 참 편리하다.

이번 지리산 종주는 짐을 줄인다고 밥은 두 끼 분량만 준비하고 모두 행동식으로 준비했다.

 

지리산 종주를 계속 여름에만 하다 지난해부터 가을에 하니까 힘든 것도 반으로 줄고

그런데다 이번에는 산에서 2박을 하게 되어 마음 또한 여유로워서 참 좋다.

 

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빨리 가는 법, 그리고 멀리 가는 법,길 위에 힘겨움을 참아내는 법과 휴식을 즐기는 방법까지도

산만치 가르쳐 주는 스승이 또 있을까?

 

산이 붉은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며 마치 두 계절 앞에 서 있는 것 같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저 소나무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곳을 지날 때면 마치 중국의 황산을 연상케 한다.

웅장한 바위 속에 오가는 이들의 이야기 소리로 가득할 것 같다.

 

이제 이곳을 지나면 오늘의 종착지인 벽소령 대피소가 멀지 않았다.  

함께 걸으며 이야기 주고 받은 시간이 그리 깊지 않은데 정겨운 마음뿐이다.   

 

산은 늘 나에게 크기를 묻는다.

그것은 걸음의 크기일 수도 있고 마음의 크기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크기를 키워내는 것이 내가 아니라 우리라는 것이다.

 

늘어선 봉우리들을 하나씩 꼽아 가며 지리산의 다양한 풍경을 살펴본 여정도 이제 끝나가고 있다.

이른 새벽 성삼재에서 시작된 산행은 5시가 조금 넘어서야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했다.

지리산의 하루도, 일행들의 여정도 저물어 간다.

대피소 너른 테이블에 앉아 있으니 나란히 놓인 시선과 마음 너머로 하루가 뉘였거린다.

산 아래는 어스름 저녁이 내리고 산의 풍경이 그동안의 수고를 보듬는다

새벽녘 벽소령 달빛

 

벽소령의 명월은 천추의 한을 머금은 듯 차갑도록 시리고 푸르기로 명성이 뛰어나기에

정적과 고요함 속에 그 비경을 꼭 보고 싶었는데 초저녁 벽소령 달빛과 별빛은 야속하게도 침묵에 들어갔다.

지리산의 가을 한나절이 아름다운 수채화를 그린 것처럼 또 하나의 추억이 되어 벽소령의 밤은 깊어간다.

 

주님이 계셔서 행복하고 산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우리에게 내어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2012년 10월 4일........산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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