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봄을 보내면서 / 들꽃향기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바람이 상쾌하게 느껴지는 걸 보니 봄이 깊어지고 있다. 산의 혈관인 계곡은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며 겨우네 땅속 깊이 저장해 놨던 물을 하류로 실어 나르고 동면했던 나목들은 수액이 오르면서 연둣빛 기운을 조금씩 드러내며 겨울의 칙칙한 자리를 채워가며 봄소식을 전하느라 분주하다.
봄을 찾는 사람들도 봄빛에 물들어 무거운 겨울옷을 벗는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지며 가슴에 가득한 설렘을 내보이지 않아도 얼굴에 그 빛이 고스란히 그려져 있다.
올해는 이상기온으로 봄꽃들이 한꺼번에 피어나 어둡던 대지를 찬란하게 빛내고 있다. 꽃도 현실에 물들어서일까? 질서를 모르고 서로 앞다투어 피어나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봄꽃들이 한꺼번에 피어나 어느 꽃에 눈길을 둬야 할지 모르겠다. 순서대로 한다면 울타리에 노란 개나리가 담장을 치고 나면 뒤를 이어 연분홍 진달래가 수줍은 듯 피어나 진달래 화전을 부치며 봄 이야기로 꽃을 피울 때 담장 너머로 청초하게 하얀 미소를 내보이는 목련꽃이 부활절 즈음 부활의 꽃으로 피어나는데 말이다.
봄꽃들이 한꺼번에 피었다 지고 나면 다시 칙칙해지는 건 아닌지 불현듯 그런 생각이 스친다. 바램인즉 모두의 마음이 이 봄날만 같았으면 좋겠다. 아마 그럼 그 순간만은 구겨진 마음도 봄꽃처럼 환하게 물들 수 있으니까.
매번 맞는 봄이건만 한해, 한해 맞는 봄이 다르게 느껴지는 건 나이테를 말해주는 것 같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이 봄을 몇 번이나 맞을 수가 있을까? 이제는 봄을 맞을 때마다 세월의 무게가 전해지고 그래서 지금 맞고 있는 이 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인생의 봄이 바로 옆에 있는 듯한데 어느덧 세월의 강을 타고 가을의 문턱에 와 있으니 허무하기 그지없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듯이 내가 있다가 간 자리엔 어떤 언어들이 하늘을 날고 있을까? 훌륭한 업적은 아니어도 내가 떠나간 자리에 향기 가득한 말들로 수놓아졌으면 좋겠다. 봄꽃들을 보면 사람들의 마음이 활짝 펴지는 것처럼 봄꽃이 지고 나면 나로 인해 모두의 마음이 그랬으면 좋겠다.
-2014년 4월 4일 찬란한 봄을 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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