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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숲

鄕 愁(향수)

by 풀꽃* 2014. 12. 19.

 

 

鄕 愁(향수)

 

따뜻한 온기가 그리운 날 어린 시절 화롯불이 생각나고 장작불이 그립다.

그때는 그런 걸 못 느끼고 살았는데 공해 많은 요즘 생각하니 불을 때면

원적외선도 나오고 그것만 한 난방법도 없는 듯하다.

 

겨울이면 아버지는 아침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불씨를 화로에 담아

방으로 들였는데 그건 늘 아버지의 몫이었다.

그 시절에는 난방이 지금처럼 보일러가 아니고 온돌방이어서

아랫목은 시커멓게 탈만치 뜨거워도 윗목에선 걸레가 얼만치 

화롯불을 방에 들이지 않으면 코가 시릴 만치 방에 위풍이 셌다. 

 

겨울이면 화롯가에 도란도란 둘러앉아 불을 쫴가며 이야기꽃도 피우고

고구마와 밤도 구워가며 석쇠를 올려놓고 떡도 구워 먹곤 했었다.

그리고 엄마는 겨울이면 늘 화롯가에서 인두를 화롯불에 묻어가며 바느질을 하시곤 했다.

시골에선 겨울이면 특별함이 없이 그날이 그날 같은 날들이 이어졌는데

아버지는 아침을 그렇게 여시고 맛이 깊이 배어있는 아침상에 둘러앉아 아침을 드시고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으로 지게를 지고 관악산 자락으로 나무를 하러 가셨다. 

가랑잎을 갈퀴로 긁어 모아 거짓말 조금 보태 관악산 크기만큼의 나뭇짐을 하셨는데

가랑잎인데도 숙련된 기법으로 가랑잎 하나 떨어지지 않게 나뭇짐을 엮으셔서

지게에 짊어지고 집으로 오시곤 하였다.

아버지의 나뭇짐은 마치 기계로 엮은 것처럼 정교하였다.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어김없이 점심시간이었는데

엄마는 바느질하시다가 아버지가 집에 오시는 시간에 맞춰

점심상을 차리곤 하셨는데 점심상 역시 특별함이 없이 장롱 안 

이불 속이나 아랫목에 묻어 놓았던 밥을 꺼내 무쇠솥에 밥과 물을 붓고

불을 때어 끓여서 먹곤 하였다,

그렇게 하면 두세 그릇의 밥을 갖고도 온 식구가 다 먹을 수 있었으니까.

 

점심을 먹고 날쯤엔 화롯불의 불씨도 점점 사위어져 방안의 온기도 차츰 식어가   

아버지는 저녁밥 짓기 전 다시 아궁이에 군불을 집히셨다.

이때 무쇠솥에는 물을 데우기도 하고 고구마를 찌기도 한다.

이렇게 불을 때면 방도 더워질 뿐 아니라 또 한 번의 화롯불을 방에 들일 수가 있다.   

 

겨울엔 해가 짧아 시골에선 저녁을 해가 지기 전에 먹는데

이렇게 저녁을 일찍 먹고 나면 긴 겨울밤이 더 길게 느껴져 

밤이면 출출해져 간식으로 김장김치 송송 썰어 넣고 도토리묵을 무쳐 먹기도 하고

군불 땔 때 쪄 놓은 고구마를 먹곤 했는데 그 시절엔 그런 것들이 최고의 간식이었다.

그리고 그것마저 없을 때는 캄캄한 밤에 텃밭에 나가 

땅속 깊이 묻어 놓은 무와 배추 꼬랑지를 꺼내다 깎아 먹는 게 유일한 간식이었다.  

그 시절 시골에선 그것 외에는 특별한 간식이 없었다. 

 

나는 세월에 주렁주렁 매달린 추억을 떠올리며 향수를 느끼며 

지난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다.

겨울엔 뭐니뭐니해도 따뜻한 게 가장 행복한 것 같다.

자신의 몸을 태워 온기를 전하는 장작처럼 이 겨울 힘들고 굶주린 이웃들과

사랑을 나눠 모두에게 따뜻한 겨울이었으면 좋겠다.

 

제 고향이 서울 동작구 사당동인데 저 자랄 때만 해도 사당동이 시골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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