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서 보면 봄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마음은 벌써 담을 넘어 서성인 지 오래다.
풍년화와 복수초는 시린 겨울을 뚫고 피었지만
중부의 매화 소식은 아직 잠잠하다.
아직도 찬 기운이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바람이 닿는 느낌이 다르니
봄은 멀지 않은 곳에 와 있는 듯하다.
겨울 끝자락 봄꽃은 찾을 길 없고
흉한 몰골을 들어내고 있는 해 묵은 들꽃이 추위에 떨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자연도 시간이 지나면 하나둘 사라지는 모습이 사람의 모습처럼 추하다.
자연도, 인간도 그래서 슬프다.
자살한 헤밍웨이의 삶처럼 인생의 끝은 허무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나무도 한 둥치 겨울옷을 벗을 때마다 고갱이는 굵어지고 껍질은 단단해지듯
자연도 사람도 겨울은 성숙의 과정 같다.
나도 이제 누구의 엄마로 불리지 않고 당당히 나 자신의 이름을 갖고 있는 요즘
나이 들어 누군가가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꽃이 되는 것처럼
이미 내 마음에 그들의 이름도 꽃 같은 그림으로 기억되어 있을 것이다.
되돌릴 수 없는 삶!
세월이 더디 온다 할 때가 엊그제 같고
웃음이 그치지 않아 배꼽 지고 웃던 때가 있었던가 하면
세월이 급물살을 타고, 웃음 또한 줄어들 걸 보면
이게 바로 나이 들어가는 현상인 것 같다.
하지만 봄을 기다리는 마음만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햇살이 간질이는 오후 햇살 따라 어디론가 마냥 걷고 싶었다.
나무도 풀도 봄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는 들녘이면 더 좋지 않을까?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봄이건만 봄이 오기를 왜 그렇게 기다렸는지 모른다.
매년 맞이하는 봄이건만 봄을 맞는 느낌은 해마다 다르다
나이 들어갈수록 한 계절, 한 계절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번 봄엔 나만의 색깔이 들어간 피스텔톤 수채화로 봄을 노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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