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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향기

그가 주는 행복의 가치...지리산

by 풀꽃* 2008. 6. 19.

언제:2008년6월14일(토요일) 날씨:맑은후 안개
어디:지리산
위치:경상남도 산청
코스:백무둥-한신계곡-세석대피소-연하봉-장터목대피소-제석봉-천왕봉-중산리(산행시간:7시간10분)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 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 노을을 품으려거든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불일 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려면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 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시라

최후의 처녀림 칠선 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시라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 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이원규님의 시****


맑은 햇살을 들여 놓은 지리산 백무동.....
언제나 그랬듯이 지리로 향하는 마음은 설렌다. 초록빛 바람이 실어다 준 초록빛 향기가 진하게 전해진다.
B코스로 가려고 했던 산행이 어느 한 순간 A코스로 접어들어 몸짓이 바빠진다.
지리에 수없이 발을 딛었건만 종주산행을 빼고 계곡산행은 처음이다.
요즘 산악인들의 입모음으로 떠들썩하는 칠선계곡이 흠모의 대상이지만 입시 경쟁률보다 더 높은 자리다툼이 번거로워 언젠가는 갈 날이 있겠지.....하며 느긋하게 끈을 늦춘다.

계곡으로 접어드니 초록빛 바람이 실어다 주는 풀향기와 계곡의 물소리에 내 자신도 모르게 지리의 물들임은 가슴을 채우고 환희의 기쁨으로 다가온다.
이제 자연의 섭리대로 봄은 슬며시 과거로 저물어 가고 여름을 던져 놓는다.
이렇게 계절의 순환이 반복되는 사이 우리는 또 다른 세월을 맞이하면서 그만큼 성숙해 가는지 모른다.
초록이 물든 나무들은 새옷을 입은 아이처럼 마냥 가벼워 보인다.
마치 초록으로 부활하는 푸르름이 시작되는 향연에 초대받은 우리들 같다.

이 여름날 내 마음에 빈틈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바람도 쉬어가고 햇빛도 통하게 하고 여유로운 생각도 쌓아 놓고 다른 사람의 마음도 담아 놓고 삶의 지혜와 슬기로움도 담아 놓을 수 있는 마음의 창을 갖고 싶다.
무엇이 그토록 지리로 향하게 하는지.....그 명괘한 답은 얻지도 못한채 다시 또 지리의 길을 걷고 있다.
계곡을 흐르는 청아한 물소리...짙은 녹음으로 우거진 골짜기...그리고 잉크처럼 번지는 숲의 향과 지리의 너그러움 모두가 기다렸던 그리움들이다.
아름다운 풍광이 연이어 질때마다 이리 오길 잘했다며 가슴 뿌듯한 작은 행복감마저 감돈다.
오르면 오를수록 흘린 땀을 보상이라도 하듯 고운 그림을 펼쳐 놓는다.
때론 휴식도 스스로에게 예의가 될법도 한데.....오르기에만 급급해 그 아름다운 풍광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떠나보내며 산길을 오른다.
초록빛 숲에 갇혀버려 가끔은 바깥세상에 대한 궁금증도 스쳐가고 때론 멈추고 싶을때도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이름모를 새들의 지저귐도 반가웠고 계곡의 물소리도 반가웠고 한층 푸르름을 더해가는 나뭇잎들도 반가웠고 새하얀 산함박꽃나무도 반가웠다.
몸도 마음도 초록빛으로 물들어가는 숲살 촘촘한 유월의 지리길은 간간이 드러나는 하늘빛 여백과의 눈맞춤 속에 여름날은 깊이를 더해간다.
바람도 길들여진듯 ~ ~걸음도 젖어버린듯 ~ ~긴 오름길은 바늘이 되고 실이 되어 한땀한땀 꿰어가니 어느덧 하늘 마주하는 세석평원이 눈 앞에 펼쳐진다.

두 시간 만에 도착한 세석평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남이 이러할까?
그곳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찬란하게 아름다웠다. 편한 사람 자주 만났던 정겨움으로 다가온다.
어머니 품 같은 넉넉함이 가득하다. 세상의 아름다운 색깔들의 집결채인 색채미가 그대로 살아있다.
지나간 시간에 구석구석 남겨놓은 나의 발자취가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시간이 허럭되고 마음이 허락된다면 며칠쯤 묵어 가고 싶은 심정이다.

세석을 떠나보내며.....
몸은 가는데 마음이 남아 두발 가지런히 저 산자락에 남아 몸도 마음도 빈 껍데기로 가고 있다.
세번의 종주길에 걷던 길이지만 한낮 너그러움 속에 걷는 길은 새로운 느낌이다.
한층 푸루름을 더해가는 나뭇잎들은 긴몸 늘어뜨려 숲그늘 만들어 놓고 오고가는 이에게 아늑한 산책길 만들어 준다.
촛대봉 아래 작은 바위위에서 잠시 간식을 펼친다.처음 같는 휴식도 잠시.....그다지 늦은 걸음도 아니니 여유롭게 경개에 취해도 괜찮을 듯한데 발길들이 바쁘다.
아늑한 등로는 초록의 숲길로 걷는 이들의 마음도 초록으로 물들인다.
이 아름다운 풍광을 종주때에는 어둠속에 가두었으니 얼마나 아쉬운지.....

삼신봉 정상.....
종주를 할때마다 이곳에서 일출도 보고 40여분을 쉬었다 가는 곳이다.
풍광도 아름답고 바람도 시원하다.
연하봉이 올려다 보이고 뒤로는 촛대봉까지 조망이 들어온다.
변화무쌍한 지리의 날씨는 희뿌옇게 가라앉은 가스층이 가야 할 능선에 대한 가늠도 먹먹하게 하고 살아 움직이는 파노라마가 되어 가슴으로 밀려오고 또다시 연하봉으로 밀려온다.
혹시 옅어질까....막연히 기대 하였건만 도통 그 몸짓들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않는다.

이런 곳에선 항상 길들여진 나의 습관처럼 일행들을 모두 떠나보낸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울음이 터져 나올것만 같았다.
내집 앞 정원같이 느껴졌던 연하평전!! 이곳을 오기까지 잔뜩 설렘과 기대로 가득찼었다.
종주길에 만났던 원추리,노오란 마타리,주홍빛 동자꽃,분홍빛 둥근이질풀,보라빛 모싯대들은 아직 하늘바람에 철들어 가고 잔풀만 무성하게 평지를 가득 메우고 꽃이 피면 다시 오라고 나에게 숙제를 안긴다.
이곳에서 나는 풀들이 자라는 소리까지 들으려고 숨도 죽이고 귀도 귀울이고 그들과 함께 사귀며 대화도 나눈다.

하늘은 온통 그늘빛 커튼을 드리운듯 칙칙하다. 하늘이 그려내는 한폭의 그림이 마치 수묵화를 연출하듯 그들의 춤사위가 운치는 있어 보이지만 그보다는 아쉬움이 더 크게 자릴한다.

장터목 대피소.....
언제나 그렇듯이 사람들의 몸짓이 바쁘다.
잠시 쉬어가는 사람들과 취사를 하는 사람들로 풍경을 이룬다.
오랜 시간후 반가운 만남.....
B코스로 오른 님들의 모습이 보인다. 한참만에 합류하게된 기쁨속에 이곳에서 휴식도 취하고 사진도 담고 한참의 시간을 보낸다.

아름다운 동행이라 할까? 아름다운 산행이라 할까?
산에서 만나는 부부산행의 동행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는지....
나이를 먹을수록 취미생활이 같아야 된다는 것을 알지만 모든 여권이 허럭치 않기에 각기 좋아하는 것을 따라 나서고 있다.

벌써 3년전이다. 그 날도 지리의 날씨는 오늘 같았다.
바람과 가스층이 온 산하를 뒤덮고 아무것도 보여주질 않더니 오늘도 무거운 산그림자는 희미함 속에 묻혀서 나올 생각을 않는다.

천왕봉 오름길.....
된비알길도 느긋하게 천천히 오르니 편안한 길이된듯 산책길 같다.
제석봉의 고사목지대도 예전만 못한 것 같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고사목들도 하나 둘 드러 �떠� 쓸쓸하기 그지없다.
수많은 야생화들의 모습도 시기가 일러선지 아직 잠자고 있고 뿌연 가스층과 바람만이 넘실된다.
그래도 좋음은 지리의 사랑이 그만큼 커서일까?......
오르면 오를수록 그들의 몸장난은 심술을 부리듯 더 거세진다.
능선의 마루금 조차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기세를 부린다.
그 와중에도 종주길에 만났던 들꽃들을 찾느라 두리번 두리번 거려보지만 그들의 모습은 아직 꿈적거릴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가스층에 가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웅성웅성 시끌벅적거리는 것으로 보아 천왕봉이 가까이 왔음을 알 수 있다.

천왕봉 정상석 앞에서면 항상 연출되는 풍경들이다.
정상석끼고 사진담느라 몸싸움 입싸움이 오간다.
그래도 거처야 할 과정이기에 한치의 양보도 없이 당당하게 제몫을 챙긴다.

깍아지른 중산리 내림길.....
잔인하게 늘어 놓은 너덜길은 오르는 사람은 오르기에 힘들고 내려가는 사람은 내려가기에 힘든 구간이다.
지리하게 긴 내림길이 가기도 전에 질려버릴 것 같다.
차라리 길을 모르면 속아서라도 간다지만 훤하게 알고 있는 내림길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두 날개를 달고 훨~ ~ 훨~ ~날아가고 싶은 심정이다.
마음을 가볍게 하지만 물먹은 솜 처럼 지쳐버린 발걸음은 무거운 침묵만을 삼킨채 마법에 걸린듯 걷고 또 걷는다.
긴 내림길을 걷고 있음이 어려운 역경을 하나하나 헤쳐나가는 논리와 닮은 듯 하다.
힘든 와중에도 신록 우거진 길을 따라 걸으며 지나간 시간에 남겨 놓은 나의 발자취가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한발한발 딛으면 언젠가는 가겠지란....본연의 철학을 가지고 함께한 일행들과 담소도 나누고 이야기속에서 삶을 건지고 지혜를 건지고 세상을 건져나간다.....그 순간 만큼은 모두는 친구였고 동료였고 선배이었다.
오늘도 나는 안개속 소녀가되어 소박한 행복을 누리며 두 세상을 하루에 거닐었던 지리의 길이 그져 행복하기만 하다.....
올 여름 지리종주를 꿈꾸며.....

주님이 계셔서 행복하고 산이있어서 행복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주신 그 분께 감사드립니다.~ ~


..........2008년6월18일 들꽃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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