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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향기

폭염 특보가 내려진 날의 구병산

by 풀꽃* 2008. 8. 12.

언제:2008년8월9일 토요일 날씨:맑음/비 그리고 찜통더위
언디:구병산
위치:충청북도 보은
코스:적암휴계소-적암마을-절터-주능선-853봉-구병산정상-서원리
산행시간:선두:8시간 후미:9시간



긴 장마.....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비!!
이젠 안오면 기다려질 것만 같은 비였다.
그로 인해 6월 정기산행이 밀리고 밀려 두 달이 지난 이제서야 갖게 되었다.
절대 그치지 않을 것 같은 장맛비를 멈추게 한 것은 무더위였다.
폭염 특보가 내려진 더운 여름 날.....사랑하는 집사님들과 권사님들 하고 산행을 하게 되어 너무도 기쁘다.
산행을 추진 할 때 그 힘듬도.....집사님,권사님들의 얼굴을 대하니 언제 그랬냐듯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산행도 하기전에 기쁨이 솟는다.

적암리에 들어서니 아홉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사열되어 있는 구병산의 모습을 보는 순간 마음이 설렌다.
들머리 적암마을로 들어서니 도심에서는 보기 힘든 호도나무,고염나무가 나의 마음을 빼앗아 간다.
세멘트 길로 된 시골 풍경이 조금은 아쉬운 감이 있지만 그래도 정겹게 느껴진다.
한 낮 뜨거운 햇살을 드려놓은 마을을 벗어나 구병산 그늘로 들어서니 숲 속의 시원함은 간데 없고 열기로 가득하다.
더워도 산 속은 시원한데 오늘은 산 그늘도 예외가 아니다.
올라도 ~ ~ 올라도 ~ ~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오름길은 지리함을 깔아 놓는다.
짧지나 않으려면 고르기라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바람이라도 불면 좋으련만 악조건이 건네준 산행길이 그래도 즐겁다.

거의 한 달 동안 다리가 불편해 산행을 못하고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속에서 찾아오는 지루함 속에는 때론 작은 절망과 좌절의 생각들로 가득 �O었고 삶의 무례함도 수없이 느꼈었다.
날씨가 덥든 어쨋든 이렇게 산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쁨이고 행복인가.....
사람의 마음은 늘 그런가보다. 다리가 불편해 아침운동도...산행도 못하게 되니 욕심이 한 단계 낮아져 산행은 못해도 운동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O었는데 이렇게 산행을 하게되니 다시 고개를 드는 나의 욕심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머릿속에서는 벌써 산의 사열들이 주르르 줄을 잇는다.
산행이 주는 여유는 삶의 속도를 늦추는 낭비가 절대 아닌 것 같다.
삶을 여유롭고 풍요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를 키워 주는 것 같다.
산행이라는 실루엣도 힘들고 고생스럽지만 의미있는 시간이라는 이름으로 머릿속에 자리 잡아 그리움을 만들고 있다.
긴 오름길이 힘들긴 해도 어찌 생각하면 더 편하게 느껴진다.
날이 갈수록 더 힘들게 느껴지는 내림길이 이제 생각만 해도 공포의 길로 다가온다.
하늘과 가까워 질수록 경사는 고개를 들고 반면 바람은 살랑인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듯이 자연도 호락호락 아름다움을 보여주질 않는 것 같다.
하늘 마주하는 능선에 서니 흘린 땀을 보상이라도 하듯 아름다운 풍광을 펼쳐 놓는다.

수려하게 소나무가 어우러진 능선길엔 우리들의 놀이터.....
오름길의 그 힘듬도 눈 녹듯이 사라지고 언제 그랬냐듯이 모두의 얼굴에선 기쁨이 가득하다.

이런 맛에 산에 오는 것이 아닐까?.....
산세가 조금은 험하긴 해도 아기자기한 몸짓들의 재롱이 너무도 사랑스럽다.
암릉산행이란 이름에 험하다는 이유로 우회길도 마련되어 있고 그로 인해 겁부터 먹은 권사님들은 암릉에 도전도 안 해보고 아예 우회길로 접어든다.
우측으로 속리산의 천황봉이 우뚝 솟아 있고 파도가 밀려오듯 산군들의 파노라마가 선명하게 드러나고.....굽이굽이 산너울은 막힘없이 흘러간다.

신선대를 시작으로 크고 작은 암봉들의 사열이 줄을 잇고 오르락 내리락 산행의 묘미를 즐기느라 더위도 잇고 ~ ~ 배고픔도 잇고 ~ ~ 산의 일부가 되어 한 풍경을 이룬다.
그다지 위험한 구간도 아닌데 우회길로 접어든 일행들을 생각하니 너무도 안타깝다. 그곳에는 풍광도 ~ ~ 바람도 ~ ~ 차단되어 그져 걷는 연습에 불과할텐데.....ㅉ ㅉ
부모의 마음이 이러할까?..
이젠 나를 위해 산에 가기보다 상대를 위해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하다.


두 번째 안부 너른 터에서 점심을 먹기위해 뒤에 오는 일행들 한테 전화를 하니 벌써 그곳에선 점심상이 펼쳐진 상황이었다.
4개의 도시락 중 밥은 모두 그곳에 가 있고 반찬은 이곳에 있는 것이다.
밥과 반찬이 이산가족이 되었다.
순리대로 하자면 뒤에오는 일행들이 앞으로 와야 되지만 식사도중엔 절대 움직이지 못한다는 이유로 우리가 후진 할 수밖에....
산행을 하면서 제일 재미없는 것이 오던 길 되돌아 가는 것인데....이건 가는 것도 아니고 갔다가 다시 올 생각을 하니 발걸음이 무겁다.
내가 앞장서고 내 뒤로 주르르 줄을 섰건만 다들 힘이든지 높은 봉우리 앞에선 다들 포기하고 다시 그만 주져앉는다.
그 시간이 30분이 소요됐으니 왕복 1시간은 더 걸은 셈이다.
힘은 들었어도 되돌아 온 것이 얼마나 잘 한 일인지.....
아직 구병산 정상을 가려면 까마득 한데 ......시행착오가 생겨 여기서 하산로를 이용해 내려가려고 했던 것이었다.
여기까지 올 때는 비록 힘은 들었지만 상황이 그런 걸 알고나니 온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지.....

암릉길이라 로프의 행렬들이 계속 이어진다.
직벽의 코스에 가느다란 로프가 걸려있는 난이도가 높은 직벽코스에서는 곽집사님의 엄격한 심사하에 통과가 진행된다.
몇몇 사람만 통과하고 나머지는 우회길로 다시 발길을 돌린다.
발길 닿는 곳 마다 ~ ~ 숨길이 머무는 곳마다 ~ ~ 기암괴석과 전망 좋은 바위들이 쫘악 사열 되고.....주변의 산들의 파노라마가 다 조망된다.

바위틈에 돌양지는 이미 꽃을 다 지우고 하늘을 향한 노오란 원추리 만이 우릴 반긴다.
짙은 녹음과 한층 높아진 파란 하늘이 벌써 청명한 가을 하늘의 느낌이다.


그날이 그날 같은 시간 속에서도 생각해 보면 그 안에는 나의 소중한 잔상들이 꽤 들어 있었던 것 같다.
그 중 하나 떠올리면 산행이란 두 글자가 선뜻 생각나는 건 왠지?..... 그 만큼 산의 대한 나의 사랑이 크기 때문일께다.
자연을 통해 배우고 내 자신이 조금씩 산을 닮아가는 자연인 같은 모습이 조금은 보인다고 할까?...
그 만큼 성숙되어 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자연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사람이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자연 앞에선 비교가 되질 않는다.

능선의 진수를 엿볼수 있는 구병산!!
산군들의 향연도 ~ ~ 파란 하늘에 떠 있는 구름도 ~ ~ 그들과 함께 마법에 걸린 발길이 힘들긴 해도 이렇게 걸을 수 있음이 얼마나 행복인가.....감사함인가.....

햇살이 따가와 땀이 비오듯 하지만 정상에 올랐을 때의 상쾌함과 뿌듯함은 모두의 얼굴에 비쳐져 있다.
앞으로 길게 이어진 능선길이 아름답기는 하나 얼마나 긴지 보기만 해도 질려버릴 것 같다.
일행 중 일부는 이곳에서 하산을 하고 그 외에는 능선을 끝까지 타고 서원리로 하산키로 한다.
처음에는 나도 여기서 하산을 하려고 몇 발자국 발을 딛다가 아름다운 능선길을 그냥 지나치면 왠지 두고두고 후회가 될 것 같아 다시 방향을 바꾼다.
이미 모든 여건은 느긋함이 아닌 빡빡함에 맞추어지고 몸도 마음도 덩달아 날을 세운다.
한편으로는 긴 능선길이 부담도 되고 걸으면서도 갈등의 연속은 이어지지만 10명이라는 숫자에 안도감이 놓여진다.

여기까지 오던 능선길 과는 달리 산세도 부드럽고 거의가 숲 그늘로 되어있다.
앞으로 길에 늘어 놓은 크고 작은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아름답기는 하나 그 보다는 가야 할 걱정이 더 앞선다.
숲 그늘로 들어서니 바람도 없고 짙은 녹음 속에 갇혀 지리함을 깔아 놓는다.

가끔씩 보여주는 파란 하늘과 하얀 솜털구름에 위안삼으며 격려 차 나온 노오란 원추리의 인사 받아가며 걷는 걸음이 조금은 즐겁다.

비가 올거란 일기예보가 있었다.이럴땐 시원한 비라도 내리면 좋겠다고 서로가 마음을 모았다.
폭염 특보가 내린 날...바람도 휴가를 떠나고 ~ ~ 새들도 휴가를 떠나고 ~ ~ 산속의 주인인 나무와 들꽃들만이 더운 여름을 보내며 손님을 맞는다.
오늘 이곳의 주연은 "더위"가 아닌가 싶다.

멀리서 큰 소리음은 아니지만 천둥소리와 함께 어둔 커튼을 드리운 듯 날이 어두워 진다.
장마때 매번 비가 비껴 가기만을 고대했건만 오늘 만큼은 일기예보에 이름 값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우리의 맘을 알았는지 빗방울이 떨어진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비 맞고 기뻐해 본 적은 오늘이 처음이다.
산 길에서 은혜의 단비를 맞은 것이다.
나뭇잎에 물기가 있으므로 인해 건조함이 덜 하다. 갈증도 조금은 해소가 되는 듯 하다.
얼마나 더웠으면 상상속의 풍경화를 그렸었다.
얼마전 구봉산 산행에서의 국지성 폭우를 만났던 생각을 하며 산길을 걷는다.
빗방울이 실어다준 초록빛 향기가 풋풋하게 느껴진다.
가면 갈 수록 들꽃들의 행렬도 자주 눈에 뜨이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낮은 자릴 권한다.
직벽으로 올라서니 칼바위 능선이 주욱 ~ ~ 사열되어 있고 조금은 위험했어도 그곳에서 머물렀던 시간들이 스릴도 있었고 바위들의 몸짓이 아기자기 하며 사랑스러웠다.
빗방울의 행렬도 잠시 소강상태가 되니 더위는 또 다시 친한 척 고개를 든다.

주영철집사님이 비 좀 다시 왔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니....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비가 내린다.(집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너무 더워서 걸으시면서 하나님께 비 좀 내리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셨다고 한다.)
이렇게 쉬운 기도를 우린 왜 일상속에서 잘 안하고 있는지....
목사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에 따라 즉시 들어주시는 기도와 그렇지 않은 기도가 있다고 말씀하시더니 정말 그렇다.

등로 옆 왼쪽으로 산 도라지꽃이 하나,둘 보이더니 조금 후에는 무리를 지어 피어있다.
그들의 이야기 소리가 도란도란 들려오는 듯 하다. 그들만의 밀어를 속삭이는 듯 하다.
바람에 일렁이는 몸짓 하나하나에는 무한한 언어의 속삭임이 있을 것이지만 우리는 그 소리를 알아채지 못한다.
이곳까지 오면서 능선에서 바라보는 산군들은 변함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고 파란 하늘에 흰 구름들의 춤사위는 지친 몸 쉬었다 가라한다.

가을은 맑고 청명한 하늘에서 부터 오나보다.
하늘은 가을인데 아랫세상은 깊은 여름 속 풍경이다.
비가 지나간 자리에는 아름다운 운해가 피어오르고 저녁노을도 아름답게 물들인다.

그 노을을 보고 있노라면 애국가의 곡조가 흘러 나올 것만 같다.
우린 이 아름다운 풍광을 잠시 음미하고 가지만 신비롭게 보이는 운해와 저녁노을 그리고 파란 하늘에 떠 있는 하얀 구름들은 내 안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정말로 먼 거리다.....잠 못자고 찾아온 지극함이 갸륵했던지 예기치않은 환상적인 일몰도 볼 수 있었고... 쾌청한 하늘가를 맴도는 하얀 구름도 볼 수 있었고...설악산,지리산 운해보다는 못할지라도 산 자락에서 아름답게 피어오르는 운해도 볼 수 있었음이 그져 감사하고 행복하기만 하다.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구병산!! 그 속에서의 긴 여정의 하루가 힘은 들었지만 뿌듯함이 크게 자릴한다.

주님이 계셔서 행복하고 산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주신 그 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2008년8월11일 들꽃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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