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로 빨간글씨 통통했던 추석연휴...
추석연휴 동안 꼼짝 못하게 했던 연휴가 물러가고 또다시 시작된 일상속에 산으로 가고푼 그리움이 파고든다.
늘 이맘때 쯤이면 설악의 한자락이 그리움으로 다가서게 된다.
추석연휴의 피곤함도 채 가시기도 전 짐을 꾸린다
당분간은 무리한 운동은 하지말라는 의사의 권유도 애써 못들은채 외면하면서 부득부득 등산화를 신으며 내심 걱정스럽지 않은건 아니었지만...
그냥 지나쳐 버리기엔 아쉬움이 많은 설악이다
돌이켜 보면 나에게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아픔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해 이맘때(10월5일) 서북릉 산행을 하다 다리의 부상으로 인해 많은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다시는 산에 발을 딛을 수 없을건만 같았었는데....
이렇게 또 다시 산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죽음의 계곡에서 다시 희망의 언덕에 선 듯하다.
아직은 다친 후유증의 흔적이 남아 있어 두려움이 언습해 오지만 산으로 떠나고 싶은 욕망만은 어찌할 수가 없다.
내 인생의 삶을 살아가면서 어제를 후회하거나 내일을 염려하기 보다는 주어진 오늘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삶은 하나의 기회이며 아름다움이고 놀이이다
그것을 붙잡고 감상하고 누리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그동안 배가 고프 듯 산이 고팠다
지금의 내가 그곳으로 산행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새로운 기쁨으로 뿌듯함으로 자릴한다
지난 가을날이 펼쳤던 아름다움이 머릿속에서 수없이 스쳐간다.
잔뜩 기대와 설레임을 안고 설악으로 향하는 마음이 마치 어린시절 소풍이라도 가는 듯 하다
지금 설악에는 아름다운 연주가 펼쳐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쁨이 가득하다.
맑은 공기와 숲의 바람소리,물소리와 새소리등...
오늘이라는 하루 속에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마음은 벌써 행복을 노래한다
수많은 평범한 날들을 기쁨과 감동이 가득한 축제의 나날로 만들어 가는 것은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달린 것이다.
설악의 열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오늘도 밤잠 설쳐가며 새벽을 가른다.
조용히 새벽을 타고 온 안개가 오늘도 화창한 날씨를 던져 놓는다.
막연하게 어딘가 있을 것 같은 보물을 찾아 떠나는 아이들 처럼 들뜬 설레임과 즐거움이 함께한다.
그동안 산행지로 가기 위한 차량 이동시간 조차도 마치 산행시간의 연장선 처럼 인내와 참을성을 요구하던 것들에 길들여졌음일까?.. 그 시간 마져도 즐겁다.
가슴으로 달려드는 한계령의 바람소리도 기꺼이 포옹하면서 계단을 오른다.
그냥 멀리서 바라볼 땐 여느 산과 다름이 없었지만 설악이라 생각하니 감회가 다르다.
수 차례 이곳에 발을 딛었건만 어느 한 번 설레이지 않을 때가 없었다.
파아란 가을 하늘빛이 얼마나 고운지 그곳을 바라보고 있는 나무들이 행복해 보였고 그 길을 걷고 있는 나 자신도 행복한 마음이다
언제나 처럼 굽이굽이 한계령 오름길의 차도가 멀미를 가져다 주었다
차에서 내리면 가라앉을까 했는데 산행길을 따라나선다
출발이 늦어지면 힘들어질까봐 몸을 서둔다.
이미 정답이 나와있는 산행시간이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바쁘다.
걸음을 옮기면서 더 어지럽고 토할 것만 같고 다리는 휘청휘청 힘이빠진다
이러다가 산을 못 오르는 것은 아닌지?...염려도 되고 뒤처지는 것은 아닌지?..걱정스러움이 부채질을 한다.
언제나 이곳을 오를 땐 한계령삼거리까지는 쉼없이 올랐었는데 오늘은 아무래도 쉬어야 될 듯 하다.
한 켠으로는 나이탓도 해본다.
어쩜 가을빛을 잃은 나무잎에서 오는 허망함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모른다
한계령 오름길의 풍경이 아직 여물지 않은 가을날의 풍경인지?.. 아님 가을을 저만치 떠내보내는 풍경인지 잘 구분이 되질 않는다
옷을 벗은 앙상한 가지로 봐서는 이미 단풍을 떨군 것 같고...산 전체를 놓고 봐서는 아직 단풍이 이른 것 같고....
산을 오르면서도 내 머릿속은 혼돈의 아수라장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컨디션도 제자리를 찾는다
왜 산을 오르냐고.....이렇게 힘든데 왜?..산을 오르냐고 묻는다면 모양이 있어 보여줄수도 ...느낌이 있어 설명해 줄수는 없지만 스스로의 가슴속 아름다운 보물 하나씩 주워들고 행복해 하는 우리들을 그는 이해할 수 있을까?..
아직 한참을 더가야 삼거리가 나올 줄 알았는데 웅성웅성 이야기 소리와 함께 삼거리 이정표가 눈 앞에 들어온다
중청과 귀떼기청봉의 갈림길이다.
공룡능선과 용아장성 그리고 멀리 중청까지 한눈에 펼쳐진다. 이쪽 저쪽 광활한 산수화를 연출한 듯한 산세가 웅장하다
가을 가뭄으로 중심을 잃어도 한참 잃은 서북릉의 모습이다. 마치 두 얼굴을 가진 요술방망이 같다
지난해의 그 화려한 모습은 어디에다 던져 놓고 겸허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사방을 온통 둘러봐도 다른 곳에 와 있는 느낌이다.
가지 끝마다 매달린 잎은 성의 없는 인사를 하듯 이리저리 일렁인다.
단 얼마간의 사랑을 위해 긴날을 건너온 나뭇잎들이 툭!! 힘없이 떨어져 산길을 뒹굴다 아쉬움이 남았는지 바람따라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멍든 몸을 돌아눕는다.
왜 산에만 서면 궁금증이 많은건지?.. 고도가 높은 곳엔 매미도 없고,산새들도 없고, 그리고 이 길은 누구의 의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그 궁금증은 시간이 지나도 풀리질 않는다.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려면 비도 적당하게 와야 하고 그에 따라 적당하게 기온도 떨어져야 하고 햇빛도 좋아야 하고 그래야지만 제 빛을 드러내는 단풍이다.
하늘 높고 바람 좋은 날...
능선길을 걸으며 가을편지를 읽는다.
아마도 날씨 탓인지 예쁘게 물들기도 전에 말라 떨어져 나 뒹구는 낙엽을 보니 왠지 쓸쓸한 기분마져 든다. 마치 우리네 인생과도 같이....
단풍이 들기도 전에 이파리들이 마르고 또한 그 끝이 말리고 타들어 속절없이 이쁜 색도 만들지 못하고 낙엽이 되어버리는 허망함을 느끼며 화려하진 않지만 은은한 가을색이 전해주는 추색을 자랑한다.
바람이 떨구어낸 갈잎들은 제 몸 떨구고 오고가는 이들에게 짓밟혀 사그라들고 앙상한 가지들은 바람에 일렁인다.
귀데기청봉을 앞두고 큰 집채만한 너덜길의 몸짓은 언제나 설설기게 만들며 우릴 긴장시킨다.
그곳에서의 조망은 너무도 아름답다 설악의 모든 조망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이기도 하다
설악의 수 많은 연봉들...
장엄하고 신비하고 태고적 신비함을 그대로 간직한 모습들이다.
산등성 가득 빨래널 듯 은은하게 펼쳐진 오색단풍....그들의 모습은 마치 수줍은 새악시의 모습 같다.
오랜 세월을 함께 견뎌온 자연스런 풍경들은 서성이는 바람에 몸을 맞긴채 오색물들이기에 바쁘다
하늘은 파랗게 저 멀리 올라가 있고 아직 여물지 않은 가을을 마음으로 담아본다
간간히 눈에 띄는 한 두 그루의 다름다운 단풍은 우리의 갈증을 풀어주 듯 생명수와도 같다.
지난해 이곳을 거닐면서 나무 뿌리에 발이 걸려 심한 부상을 입었기에 더 각별히 신경이 쓰인다.
그래도 이 시간이 행복한건 자연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외설악의 단풍이 수줍은 미소를 띄우듯 은은한 가을옷으로 갈아입고 미소를 짓는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찬란하게 아름다웠다.
숲을 떠돌던 바람도 찬란한 오색빛 유희를 즐긴다.
한낮의 뜨거운 햇살 지고 오른 귀떼기청봉에 오르니 오색바람이 실어다준 설악의 향기가 폴~~폴~~난다
속살까지 드러난 능선이 고운 자태를 드러내고 첫날밤 맞는 새악시의 마지막 속곳처럼 희끗희끗하다
설악의 자존심을 세우려는지 어지러운 세상과의 작은소통도 원하지 않는가보다. 전화가 되질 않는다.
수많은 연봉들이 구름 흘러가 듯 너울된다.
점점 다가서는 하늘과 점점 멀어지는 아랫세상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며 까탈스런 험로에 주의가 필요하고 머리 위에 걸린 햇살은 실핏줄 처럼 이어진 단풍을 물들인다.
능선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서북릉선...그곳에선 산군들의 행렬도 하나의 풍경이 된다.
자고나면 이만치 달려오고 달아나 버리는 단풍의 물결...그들은 기다리다 지쳐 공룡길을 달리고 있는 듯 하다
이젠 눈감고도 훤하게 그려지는 서북릉선!!
까무라치도록 아름다운 단풍은 볼 수 없지만 설악의 모든 풍광이 다 들어오기에 그곳에서 바라보는 산하는 그 어떤 언어적 유희로도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되고 환희가 되는 시간들이다.
그 기쁨과 감동을 밟고 지나가는 발길이 그져 감사할 뿐이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온전한 기쁨을 누리며 자연이 보여주는 소박한 아름다움과 말없이 지나는 가을의 정취에 흠뻑 젖었다.
풀기없는 마른 덤불 속에서 천연덕스럽게 고개 내민 보라빛 쑥부쟁이가 무심히 걷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모두가 메마른 땅속 그 어디에 저토록 아름다운씨앗을 잉태하고 있었을가?.. 스스로 가슴에 새긴 짧은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은 아니었을까?..
대승령에 오르자 허전한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아름다운 운해가 펼쳐진다.
산길에서 운해를 만나는 것은 큰 행운이다. 키나바루에서 만난 장엄한 운해는 아닐지라도 덤으로 얻은 보물이기에 기쁨이고 설악이 나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다.
분재의 이끼에서 느끼는 생명력, 또한 허름한 고목의 틈바구니에서 잘 자란 초록의 생명력이 느껴진다.
높아만 가는 파란 하늘이 예뻤던 하루....
장수대 내림길의 빛고운 단풍이 우리를 격려라도 하듯 기쁨을 가져다준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은 날마다 새롭다는 것이다.
해는 어제와 같이 떠오르지만 햇빛은 어제의 햇빛이 아니고 꽃은 한 나무에서 피지만 날마다 다른 모습으로 피어난다.
지난해 보다는 못 할지라도 단풍의 빛이 곱다.
아마 이곳에서도 아름다운 단풍을 보지 못했더라면 두 다리 뻗고 엉엉 울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길을 더디더디 내려가려 한다.
이곳에 있는 단풍들을 모두 내 가슴에 담으며 그들과 사랑을 나누고 싶다.
우리나라 3대폭포 중의 하나인 대승폭포....
가을 가뭄으로 그 요란하던 폭포음은 간데 없고 벽을 타고 눈물만을 흘리 듯 고요하다.
전망대에 서니 가슴 깊은곳에서 부터 치밀어 오르는 감동과 환희로 스스로를 대견스로워 한다.
산에만 서면 그냥 주고 싶고~~ 서슴없이 표현하고 싶고~~작은 것에도 감동하고~~
자연은 이렇듯 사람들의 마음을 여유롭게~~풍요롭게....사랑스럽게 하나보다.
아마도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아님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였다면 더 많이 힘들고 고통스러웠겠지만.......
스스로가 선택했기에 힘겨움도 즐기며 덜 힘들지 않았을까?...
우리들은 무엇을 원할 때 "원없이"란 말을 쓴다.
원없이 걷고,원없이 즐긴 설악의 가을 풍경화....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 갇힌 우리들의 거친 숨과 짜디짠 땀에 묻어난 일상의 어지러움 가슴 넓은 설악에 다 벗어놓고 한결 차분하고 한결 넉넉한 마음으로 가르는 귀가길이 사뿐하다.
주님이 계셔서 행복하고 산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또 함께 산길을 걸을 수 있는 벗님들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주신 그분께 감사드립니다.
..들꽃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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