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2013년 10월 16일 날씨:맑음
어디:지리산(1915m)
위치:전남 구례,전북 남원,경남 함양,산청,하동(3개 도, 5개 군, 15개 면)
코스:벽소령대피소-선비샘-영신봉-세석대피소-연하봉-장터목대피소(둘째 날)
누구와:들꽃향기 외 두 명
지리산 종주 (둘째 날)
벽소령 대피소에서 최상의 서비스를 받고도 잠 못 드는 습관은
어쩜 나의 못된 습관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전혀 피곤치 않음은 지리산이 주는 맑은 기운일 것이다.
그 어떤 볼멘소리도 조용히 들어주는 지리산!!
지리산의 풍경은 산객들의 고뇌까지도 어루만져 준다.
벽소령 대피소를 갓 출발해 마치 무릉도원의 안갯속을 걷는 듯한
몽환적인 길을 걸으면서 느끼는 그 경이로움..
벽소령 대피소가 그리워서일까?
조붓한 오솔길에 발이 묶여 걸음을 뗄 수 없을 만치 아름답다.
매번 지리산 종주를 할 때마다 발이 묶이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해 왔을 때는 구절초와 쑥부쟁이에 마음을 빼앗겨 아예 그곳에 주저앉아 있던 곳인데
이번에는 시기가 좀 늦어 꽃들이 사위어가고 있다.
골짜기 풍경이 아름다워도 가장 아름다운 건 지금 눈앞의 풍경이다.
하염없이 걷게 하고 수도 없이 서게 만드는 길..
얼마나 더 머물러야 이 길의 아름다움을 다 마음에 담을 수 있을까?
저 멀리 하얗게 피어오른 운해는 오늘 산행의 덤인 듯하다.
변하지 않는 자연!!
말이 없는 산에서 느리게 사는 법을, 먼 길을 가는 법을 배운다.
저너머 아직 닿지 못한 풍경, 걷지 못한 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풍경도 아름다운데, 지나는 풍경을 놓지 못하는 것은
지나는 풍경이 그만큼 아름다워서일 것이다.
코끝을 간지럽히는 갈잎 내음, 흙 내음이 풍기고,
싱그러운 공기가 가슴속까지 촉촉하게 적셔준다.
부드러운 햇살에 곱게 물든 가을빛을 바라보며
지리산 산천경계의 돌 하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가 서로 동화되어 빛을 발하는
지리산의 그 아름다운 모습을 이렇게 보고 느끼고 있다는 것은
무한한 감동이고 고마움이며 행복함이다
걷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그곳 지리산!
먼거리이지만 숲을 이루고 있는 오르막과 평지가 시시각각 풍경을 바꿔주니
지루하지 않고 그 이름에 걸맞게 풍경의 향연을 이루고 있다.
그것을 마음에 품고, 삶을 길러내고 사람들을 넉넉히 채워줄만한 풍요다.
오랜 세월 변함없는 모습인 것 같아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사시사철 매일매일이 다른 산!!
그렇기에 잘 안다고 말할순 있어도 결코 다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게 산이다.
걸을수록 짙어지는 풍경처럼 그 깊이를 더해간다
걸을 때는 그저 길기만 하더니 멈춰서니 이토록 너른품이다.
골골이 놓여 있는 숲길에도, 바윗길에도 온통
익숙한 풍경이 흐르고 친근한 추억이 어려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느린 걸음으로 그 길을 걸었다.
따스하면서도 한적하고 평온함이 깃드는 선비샘!!
매번 지리산 종주를 할 때마다 이곳에서 아침을 해결하는 곳이다.
누룽지를 끓여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세석으로 향한다.
누구는 지리산 종주에서 이 구간이 가장 지루하다고 말하지만
한 발, 한 발 걸으면서 풍경에 시선을 주다보면
어느 결에 세석대피소가 눈 앞에 들어온다.
세석을 가기 전 드넓은 전망이 펼쳐진다.
대부분의 등산객이 이곳에서 한참을 쉬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뒤에 오는 일행을 기다리면서 이곳에서 한참동안 풍경을 즐기다
일행을 만나 세석으로 향한다.
일행이 한 시간 여 늦게 도착해 많은 걱정을 하다 일행을 만나니 반갑기도 했지만
한 켠으론 노심초사 했던 시간에 상대의 마음이 불편할 정도의 언성도 높였다.
리더로서 조금만 참으면 될 것을 상대를 불편하게 해 놓고는 내 자신을 채찍질 하며
산만큼 큰 마음이 되려면 어느 만큼 산을 더 올라야 산을 닮아갈까? 란 생각을 하게 된다.
세석대피소에서 우리는 지리산의 맑은 공기와 함께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성찬을 즐기고 촛대봉으로 향한다.
처음 지리산 종주를 시작했을 땐 새벽 4시에 세석을 출발해
어둠 속에 가둬 놓았던 촛대봉을 요 근래에는 밝은 대낮에 볼 수 있어서
사방의 풍광을 한 눈에 보면서 한참의 시간의 즐긴다.
세석에서 장터목 대피소가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배낭의 무게가 무거워 질릴법도 한데
앞으로 남아있는 거리가 짧게 느껴짐은 능선의 단풍은 다 떨어져
휑한 가지가 조금은 썰렁해 보여도 그만큼 풍경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해질녘 연하봉에서 보는 일몰이 찬란할텐데 아쉬움을 남기고
장터목을 향하여 걸음을 내려선다.
그렇게 느린 걸음으로 지리 능선을 걸었건만
5시가 채 못되는 이른 시간에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해
여장을 풀고 하루를 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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