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공룡능선(둘째 날)
언제:2013년 10월 5일(토요일) 날씨:맑고 쾌청한 전형적인 가을날씨
어디:설악산(1708m)
위치:강원도 인제. 양양
코스:중청 대피소-희운각 대피소-무너미고개-신선대-1275봉-마등령-금강굴-비선대-설악동 소공원(둘째 날)
♤설악에서의 둘째 날.
집만 나오면 잠 못 드는 습관은 이번에도 이어져 밤새도록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새벽을 맞이했다. 대청봉 일출 시각이 아침 6시 25분인데, 대피소 안은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4시부터 부산을 떤다. 올해는 이상기온으로 10월의 설악산 기온이 아랫세상과 별 차이 없이 포근해 대청봉 일출을 보는 데 어려움이 없을뿐더러 운해까지 보는 큰 행운을 얻었다. 산등성을 타고 스며든 햇살이 바위산을 붉게 물들이는 아침!! 인적 드문 산의 품에서 태곳적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해 온 생명도 하나둘 깨어나는 아침이다. 설악의 최고봉 대청봉에 오르니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어제 대청봉에 오른 시간이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참 다행인 듯싶다. 안 그랬으면 이 아침 많은 사람으로 대청봉 표지석 앞에서 사진도 못 찍었을 텐데. 스며드는 여명이 생의 처음인 것처럼 서로 다른 마음들이 모여 단 하나의 빛을 고대하며 기대하는 시간 속에 저편 건너에서 붉은빛의 태양이 일어서며 산객들의 가슴을 뛰게 한다. 단 몇 초의 순간을 잡으려고 시린 바람과 맞서며 기다린 보람이 있는 것 같다. 일출이 건네준 뿌듯함과 대청봉의 기운을 한 몸에 싣고 대청봉을 내려선다. 대청봉의 해돋이도 아름답지만, 반대편의 펼쳐진 운해 또한 아름답다. 욕심 같아선 공룡능선의 너울춤을 추는 운해의 춤사위를 꼭 한번 보고 싶었는데 내 생을 다 하는 날까지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설악의 단풍을 즐기려고 희운각으로 내려서는 길은 전국에서 모여든 등산객들이 줄을 잇는다. 능선길에 푸릇한 빛보다 등산객들이 수놓는 빛이 더 곱다. 공룡능선으로 치닫는 걸음들이 설악의 길을 메우고 인산인해를 이룬다. 능선의 단풍은 풋풋하지만 희운각으로 내려서면서 단풍이 제 빛을 띤다. 볼그레 물든 빛이 수줍은 새색시 얼굴 같다.
희운각 근처에서 부상자가 발생했는지 헬기가 뜬다. 사고는 눈 깜짝할 사이 일어나기에 산행에서 한순간도 방심하면 안 된다. 저런 광경을 볼 때마다 경각심을 갖게 한다. 곱게 물든 풍경에 시선을 주다 보니 길게 이어진 내리막길이 지루한 줄도 모르고 희운각 대피소에 다다랐다. 희운각 대피소에서 등산객들은 천불동 계곡과 공룡능선으로 각자의 방향을 택해 여정을 이어간다. 예전에는 흙길이었던 것이 많은 등산객이 몰려 등산로의 훼손을 막기 위해 질펀하게 돌을 깔아 놨다. 등산객들에겐 무릎의 충격으로 극약과도 같지만, 안전을 위함이니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공룡능선!! 하늘을 찌를 듯 뾰족한 바위봉우리들이 공룡의 등뼈처럼 용솟음치며 장엄한 설악의 숨결을 토해낸다. 잠에서 깨어난 공룡이 그 장엄한 등줄기를 일으켜 세우며 뾰족한 등뼈도 날을 세우며 솟구친다. 공룡능선을 타보지 않고 설악산을 안다고 하지 말라는 말처럼 산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코스다. 하지만 초입부터 거대한 바위가 걸음을 막아서며 험난한 여정을 예고한다. 억겁의 세월 속에 빚어 놓은 설악의 풍경은 제아무리 모진 세파도 감히 헝클어 놓지 못한 풍경이다. 무거운 고요였을까? 설악을 흔드는 바람이었을까? 설악의 보석 같은 품속으로 빠져든다. 서서히 일어서는 바위봉우리들이 무엇하나 보탤 것도 뺄 것도 없이 꽉 찬 풍경이다. 숨죽여 멈춘 것 같아 보여도 오랜 세월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호흡해 온 치열한 생명력이다. 서북능선의 단풍이 좀 이른 감이 있어 공룡능선 단풍도 아직 이려니 했는데 공룡으로 접어드니 단풍이 절정에 이르러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으로 유희를 즐기고 있다. 단풍의 춤사위에 감동하여 내 영혼은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울긋불긋 자연이 내린 선물 속 절경에 푹 빠져 일행들도 잃고 끼니도 거른 채 공룡의 등을 넘나들며 자연이 주는 성찬만으로 내 영혼을 채우며 설악의 품에서 나는 가장 행복한 걸음으로 공룡의 등줄기를 타고 행복을 노래했다. 이 세상에서 그 어떤 풍경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아마 이보다 아름다움을 더 추구한다면 그건 사치일 것이다. 늘 마음속 한 구석을 서성대는 그 한 조각을 찾아내니 이 순간만은 가진 것 없어도 배부르고 먹은 것 없어도 배부를 만치 영혼이 풍성하다. 가파른 돌길을 하염없이 걸어 올라오면 눈앞에 가야 할 길이 막힘 없이 펼쳐진다. 등산로는 보이지 않고 공룡의 귀궤한 등뼈를 닮은 바위봉우리들만 하늘길 위를 거침없이 매달린다. 올라온 것에 우쭐했던 마음도 잠시, 오른 만큼 다시 내려가야 하기에 공룡의 머리에 도착하려면 오르고 내려서야 하는 것은 수도 반복된다. 그것이 공룡능선이다.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는 건 우리네 인생도 매한가지 아닐까? 시선 닿는 곳마다 웅장한 조각품을 세워 놓았다. 하늘로 솟구친 돌기둥들이 곳곳에서 바위 숲을 이루고 그야말로 수석 전시장이 따로 없다. 경이로운 풍경에 몇 걸음 가다간 발길이 다시 세워진다. 만약 아담과 이브가 이 풍경을 봤다면 바로 여기가 에덴동산이 됐을 것이다. 돌들의 교향곡이라 할만큼 파이프오르간을 연상시키는 돌기둥들이 머리 위에서 웅장한 연주를 펼친다. 세월이 빚어낸 풍경마다 오랜 시간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이따금 만나는 오색 리본은 단풍만큼이나 고운 빛으로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숨결이 켜켜이 쌓여있다. 그곳에서 풍경도 사람도 세월과 함께 깊어간다. 무르익은 것에 아름다움은 오래된 연인처럼 정겹게 느껴진다. 아득히 솟구친 능선과 하늘이 맞닿아 만들어낸 광활한 풍경 앞에 잠깐 쉬는 순간에도 눈은 그 풍경에서 떼지를 못한다. 그 풍경 앞에 어떤 언어로 마음을 표현할까? 산은 그런 나를 응시라도 한 듯 멀리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다. 세상의 근심이 있다면 이곳 설악에 슬쩍 내려놓고 가도 좋을 듯싶다. 떠나야 할 때를 알면서도 아직 떠나지 못하고 있는 산오이풀!! 마치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반가운 시선을 준다. 발아래 놓치고 지난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앞만 보고 달렸던 지난날엔 미처 몰랐다. 경쾌한 노래만큼 부푼 마음으로 발치의 작은 풍경 하나하나에 마음을 주다 보면 걸음은 점점 게을러 진다. 저들에겐 그저 평범한 일터겠지만, 이방인의 눈엔 동화 속처럼 애틋하고 아름다운 이곳의 풍경!! 바람도 설악의 단풍이 그리운지 설악의 바위봉우리 위를 넘나들며 기분 좋은 숨결을 내뱉는다. 이곳에서 찾으려는 것이 무엇일까? 일상의 시계를 풀어두고 홀연히 떠나온 지금 이곳에 서니 두고 온 삶은 찰나의 불과하다. 저 너머 닿지 못한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어제 지나온 풍경이 저만치 멀어져 올려다보인다. 하염없이 걷게 하고 수도 없이 서게 만드는 길은 얼마나 더 머물러야 이 길의 아름다움을 다 담을 수 있을까? 산은 모든 피로를 한 번에 재워 준다. 옆에서 나란히 걷는 친구도 좋지만, 산은 내게 가장 고마운 친구다. 그 소중함을 알기에 언제나 깨끗하게 지켜주고 싶다. 1.275봉!! 해발 고도 1.275m라 특별한 이름 없이 1.275봉이라 불리는 봉우리다. 공룡의 용트림이 절정에 달하는 곳이자 이제 능선의 중반부에 이르렀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몸을 꼿꼿이 세운 1.275봉은 다가서는 것부터가 큰 고비다. 그저 앞사람의 발만 쳐다보며 가파른 경사면을 오르다 보면 등 뒤로 와 닿는 뒷사람의 거친 호흡이 몸을 떠밀며 걸음을 재촉한다. 1.275봉 앞에 서니 직선으로 오르내려야 할 바위 비탈이 험하지만 막연하게 체감하는 그 거친 삶을 생각하면 지금 내딛는 이 길은 호사나 다름없다. 공룡능선은 예닐곱 번 이상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 쉴 새 없이 굽이치는 바윗길을 오르내리다 보면 몸은 고달프지만,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맑다. 좁은 바위틈 사이로 길을 찾고 앞뒤 사람과 호흡을 맞추는 데 집중하다 보면 온갖 잡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난코스로 유명한 나한봉의 수직 로프구간인 나한봉이 공룡의 마지막 기승을 떨친다. 사방으로 막힘없이 펼쳐지는 바위봉우리의 파노라마. 긴 잠에서 깨어난 듯 공룡의 등줄기를 빠져나와 마등령 삼거리에 다다랐다. 매번 공룡능선 산행에서 가장 지루한 곳이 있다면 바로 이곳 마등령 능선이다. 까다로운 길은 아니지만 여기까지 오면서 지친 몸이기에 긴 능선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구간이다. 하지만 육체가 무거워질수록 마음속에 깃드는 이 평온함은 산이라서 그럴 것이다. 긴 거리 지루한 코스지만 한 걸음 한 걸음 풍경에 시선을 두다 보면 지루함도 잊고 지나온 풍경이 금세 그리워진다. 그래서 산을 오르는 것 같다. 어느새 공룡능선의 끝점인 마등령이 앞으로 우뚝 다가와 섰다. 넘고 넘어도 버티어 서 있는 바위 때문에 기를 쓰고 오르다 보면 체력 소모도 만만치 않은 공룡능선!! 하지만 여기서만 누리는 풍경이 있기에 사계절 많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 막바지로 치닫는 공룡능선은 마지막 지점인 마등령을 향해 솟구친다. 그간의 흘린 땀에 보답이라도 하듯 설악이 품은 모든 비경을 아낌없이 내보이는 마등령!! 오늘따라 금강굴이 시선 앞에 그려짐은 그만큼 몸보다 마음이 앞서는 것 같다.
수천 년 세월 바람에 깎이면서도 당당히 키를 세운 바위봉우리는 그저 올려다보는 것만도 아찔한데 그 위로 점점이 매달린 사람들은 그 까마득한 높이를 오르고 있다.
이곳은 거역 등반을 꿈꾸는 등반가들에게 최적의 훈련장소다.
그 긴 시간 산과 함께 하면서 돌이켜 본 산은 작은 걸음을 큰 깨달음으로 바꿔주는 지혜로운 스승이다.
산에서 배운 삶은 일상을 살아가는데 나침판의 역할을 해 준다.
멀리서 바라본 회색빛 암벽이 거대하지만 저들이 모습은 깨알처럼 작기만 하다.
잠시라도 이 풍경에 한 조각이 되고 싶은 건 오르는 맛을 아는 이들이라면 당연한 바람일 터다.
바위 위로 하늘의 구름은 태연한 척 마치 수제비처럼 제각기 퍼져있다.
산의 하루도 바위벽 뒤로 그늘이 드리우고 뉘엿뉘엿 저물어 간다.
간간이 피어있던 들꽃들도 자취를 감춰버린 10월의 설악!!
들꽃 대신 오색빛깔 단풍이 설악의 구석구석을 수놓고 내 영혼까지 들어와 볼그레 단풍 물이 들었다.
이 풍경을 어떻게 다 담을 수가 있을까? 두고 간들 잊어버릴 수나 있을까?
이틀 동안 설악에서 보낸 아름다운 시간.
쉽지 않은 도전이었기에 더욱 가치 있는 시간이었고 함께 한 걸음이기에보다 값진 추억을 새길 수 있었다.
그 푸르디푸른 젊음의 마음으로 되돌려 주는 산!!
마음이 가라앉을 때면 더 높은 바위에 올라 나를 돌아볼 일이다.
이틀 동안의 긴 여정의 시간이 육신은 좀 피곤하지만, 마음은 설악의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난다.
그 여정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난 설악을 꿈꾸며 설악을 찬양한다.
-2013년 10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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