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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향기

2013 지리산 종주 (세째 날)

by 풀꽃* 2014. 2. 12.

♤지리산 종주(세째 날)

언제:2013년 10월 17일 수요일   날씨:맑음

어디:지리산(1915m)

위치:전남 구례,전북 남원,경남 함양,산청,하동(3개 도, 5개 군, 15개 면)

코스:장터목대피소-제석봉-천왕봉-중봉-써리봉-치밭목대피소-유평리(셋째 날)

누구와:산소녀 외 두 명

 

태양도 아직 산마루에 오르지 못한 짙은 어둠의 시간!!

장터목 대피소는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 마음 급한 산객들이 산보다 먼저 하루를 연다.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천왕봉 일출을 가장 가까이서 보려는 산객들이 어둠도 아랑곳없이 정상으로 향한다.

 

마음 같아서는 일행들에게 제석봉 풍경도 보여 주고 싶은데 제석봉 풍경을 보려면 천왕봉 일출을 놓치기에 천왕봉 일출을 택한 것이다.

 

어스름 새벽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은 날씨가 포근해 어려움 없이 상쾌한 기분이다.

내가 그렇듯이 이곳을 오르는 모든 이의 삶도 천왕봉을 오르는 열정처럼 그런 삶일 것이다.

세상에서의 삶도 모든 이들이 산에서만 같이 넉넉한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우선 나부터가 그런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별처럼 반짝이는 도시를 뒤로하고 더 큰 빛을 찾아 검은 능선에 오른 사람들로 천왕봉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높은 곳에 서서 바라보니 어제 지나온 풍경이 저만치 멀어져 내려다보이고,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숨결이 켜켜이 쌓여 풍경도 사람도 세월과 함께 깊어간다.

 

마치 지금의 어둠이 마지막인 것처럼, 스며드는 여명이 생의 처음인 것처럼, 그렇게 서로 다른 마음들이 모여 단 하나의 빛을 고대하며 기대하는 시간 속에 저편 건너에서 붉은빛의 태양이 일어선다.

단 몇 초의 순간을 잡으려고 시린 바람과 맞서며 기다린 보람이 있는 것 같다.

그 빛에 반사되어 깊은 능선 주름 사이를 타고 신선한 지리산 공기와 가을 햇살이 파고든다.

기지개를 켜며 깨어나는 맑은 숲과 푸른 바위가 산객들의 가슴을 뛰게 한다.

어디쯤인지는 모르지만, 천왕봉 표지석 왼쪽으로 하얗게 내려앉은 운해로 오늘도 지난번 설악산에서처럼 기분 좋은 하루를 연다.  

나에게 높은 산마루를 꿈꾸게 했고 너른 세상을 내다보게 해준 지리산!!

그곳 능선에 자리한 나무들은 높아진 고도에 순응한 채 가을빛으로 물들어 거센 바람에 몸을 맞긴 채 잎을 떨구고, 이리저리 꺾이고 구부러지고도 그저 허허롭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산 거리가 천왕봉에서 중산리는 5.4km이지만 대원사 계곡은 11.7km인데, 대부분 등산객들은 거리가 짧은 중산리로 하산하고 있다.

천왕봉을 내려서 세월이 조각한 풍경 속 전설을 품은 대원사 계곡 그 속으로 들어선다.

시작부터 고요하고 풍요로운 풍경이 펼쳐지며 곱게 물든 가을빛이 웅장한 연주를 펼친다.

그러기에 거리가 조금은 멀어도 그 코스를 택하게 된다.

세월이 빚어낸 풍경마다 오랜 시간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중봉을 오르기 전 평평한 곳에 아침 식탁을 펼치고 간단한 행동식으로 아침 요기를 했다.

이제 앞으로 한 끼의 식사만 하면 되는데, 배낭에 남아있는 식량은 지리산 종주를 한 번 더해도 될만한 식량이다.

부족함보다는 넉넉함이 좋긴 하지만, 일용할 양식을 너무 과하게 준비를 한 것 같다.

지리산 종주를 할 때마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막상 준비에 들어가면 그 버릇은 다시 고개를 들어 매번 되풀이되곤 한다.

천왕봉을 올려다보고 있는 중봉!!

이 시간쯤 중봉은 따스한 아침 햇볕이 내려앉아 풍경을 보며 한없이 앉아 즐기고 싶은 곳이다.

저 멀리 구름의 오케스트라의 향연도 지리에 한 조각이 되어 아름다운 빛으로 지리를 수놓고 그곳의 풍경을 행복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내가 서 있다.

시계를 붙들어 맬 수만 있다면 이곳에서 하루 더 유하고 싶은 마음이다.

 

하염없이 걷게 하고 수도 없이 서게 만드는 지리의 길!!

수없이 서다 걷다 한 길을 아름답고 장엄한 풍경이 다시 서게 한다.

지리산은 어딜 가나 천상의 정원사가 가꿔 놓은 풍경이다.

시간이 흐른 지금 돌이켜 본 산과 자연은 작은 걸음을 큰 깨달음으로 바꿔주는 지혜로운 스승이다.

 

 

 

아득히 솟구친 능선이 하늘과 맞닿아 만들어낸 광활한 풍경 앞에 산은 멀리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세월이 그려 놓은 그 길을 걷고 있다.

 

 

경쾌한 노래만큼 부푼 마음으로 산길을 걸으며 발치의 작은 풍경 하나하나에 마음과 눈길을 주다 보면 걸음은 점점 게을러 진다

 

지리산 종주를 하는 여정 속에 쉬어가는 곳은 언제나 정해져 있다.

써리봉을 가기 전 바위봉우리에 서면 천왕봉이 저만치 올려다보이고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단풍의 행렬이 정말 장관이다.

종주할 때마다 이곳에서 한참을 쉬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넘나드는 바람은 그저 평범한 일터겠지만, 이방인의 눈엔 동화 속처럼 애틋하고 아름다운 이곳의 풍경!!

육체가 무거워질수록 마음속에 깃드는 평온은 지리산이기 때문일 것이다.

길어지는 여정에 몸이 지칠만하면 지리산의 행복한 기운이 내게 걸어와 다시 말을 건다.

지난해 왔을 때는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지리산의 가을을 찬양했는데...

올해는 좀 늦게 왔더니 구절초도 기다리다 지쳐 진액이 마르기 시작한다.

고운 자태는 아니지만 사위어가는 모습이라도 볼 수 있어 그리움이 조금은 가신 듯하다.

견우와 직녀의 만남 같이 가을 야생화 시기에 맞춰 오면 단풍은 못 보고 단풍 시기에 맞춰오면 꽃은 져 버린다.  

 

써리봉!!

써리봉에서 올라다 보는 천왕봉의 모습이 하늘을 치솟을 듯 높은 게 아득하다.

지리의 풍광에 눈을 두고 한 발 한 발 딛은 걸음이 어느새 여기까지 발을 옮겼다.

멀리서 올려다보니 웅장한 천왕봉의 바위 봉이 마치 키나바루 바위 지대를 보는 듯하다.  

 

자신의 두 발로 산을 오르지 않고서야 결국 가질 수 없는 이 충만함!!

지리산 종주의 횟수가 거듭될수록 지루하게 긴 유평리 코스가 짧게 느껴짐은 그만큼 익숙해졌고 친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세월이 만들어낸 이 고운 자태!!

그냥 지나치면 쓸모없는 풀에 불과하겠지만 나에게는 보석과도 같이 보인다.

이심전심으로 내가 그런 것처럼 그도 내가 보석과도 같은 존재로 보일까?

화려하진 않지만, 자연이 만들어 낸 화초가 그 어떤 꽃보다 고귀하게 느껴진다.

치밭목 대피소를 가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저 멀리 단풍 속으로 치밭목 대피소가 몸을 드러낸다.

오늘 있다가 내일 없어질 진정 자연에 몸 맞기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소박한 들꽃처럼 내 인생도 하늘 양식 받아먹으며 몸을 맞기는 그런 삶이 되고 싶다. 

오랜 세월이 만들어 낸 보석!!

살아 호흡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절대 추하지도 않다.

세월의 때가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더 깊은 맛이 난다.

나이 들어내 모습도 그윽한 자태로 깊은 자태가 그대로 배어있었으면 좋겠다.

어울림의 법칙!!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서로가 어깨를 맞대고 옹기종기 둘러앉아 있는 모습이 정겹다.

자연에서 어울림의 법칙을 배운다.

산은 그러고 보면 나에게 큰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다. 

그 먼 거리건만 질릴 법도 한데 어느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은 그만큼 풍경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산행은 함께하는 것도 좋지만, 오롯이 산과 하나 되어 걷는 것도 참 좋은 것 같다.

그래서 가끔은 일행들과 뚝 떨어져 걷기도 한다.

역으로 반대 방향에서 오르면 배가 힘들 텐데 가끔 반대 방향에서 오르는 이들을 만나면 참 대단한 생각이 든다.

 

 

 

 

 

 

즐기면서 걸었건만, 마지막 대피소인 치밭목 대피소에 도착해 시간을 보니 11시다.

우린 지리산 맑은 물을 끓여 누룽지와 라면 묵은지를 넣고 퓨전 음식과도 같은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점심을 먹고 대피소 산장지기가 내려 준 따끈한 원두커피로 그윽하게 마침표를 찍었다.

치밭목 대피소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유평리의 단풍을 기대하며 계단을 내려선다. 

계단을 내려서자마자 단풍은 성미 급한 사람의 비위라도 맞히듯이 곱게 물든 춤사위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희를 즐기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풍경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 숨이 멎을 듯하다.

그 순간만큼은 이곳에 서 있는 우리가 가장 행복한 것 같다.

이런 시간을 가지려고 일상을 더 열심히 살게 되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그 끈을 놓지 않는다.

아직은 인간의 손때가 덜 묻은 유평리 계곡!!

그곳에서 하루의 행복이 고스란히 추억으로 새겨진다.

시간의 여유가 있어 유유자적 즐기니 행복이 배로 늘어난다.

 

 

 

 

미지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설렘이지만, 익숙한 풍경인데도 설렘이 이는 것은 걸음을 뗄 때마다 풍경이 바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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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제 몸을 떨구고도 고운 빛을 내어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지리산이라는 이름이기에 더 고운 빛으로 다가온다.

자연은 풍경을 만들고 풍경은 자연을 만든다.

나도 누군가를 위해 빛이 된다면 저처럼 고운 빛이었으면 좋겠다.

 

 

 

 

 

 

 

 

 

돌아온 길 뒤돌아서서 올려다보니 저 멀리 치밭목 대피소가 계곡을 타고 평온한 모습으로 자그맣게 눈에 들어온다.

화려하지도 진하지도 그렇다고 초라한 모습은 더더욱 아닌 지리산 유평리 단풍 그 빛이 마치 내 영혼을 닮은 듯하다.

 

 

그 어떤 것을 먹어야 이처럼 배부르고 뿌듯할까?

내 작은 가슴에다 지리의 아름다움을 다 담을 수가 있을까 그렇다고 두고 간들 잊어버릴 수나 있을까?

나는 3일 동안 지리산에서 자연의 성찬으로 영혼을 부하게 물들이고 그 어떤 것도 부럽지 않은 영혼이 되어 다시 세상으로 내려선다.

 

온몸으로 느끼는 대자연의 축복!!

길 위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기에 욕심내지 않고 하루해가 허락하는 시간 안에서 주어진 힘만큼만 걸으며 걷는 과정 자체를 즐겼던 여정..

아마 내가 살아가는 과정도 이와 같을 것이다.

가장 소중한 시간은 저 너머에 있는 게 아니고 이 순간에 있기 때문이다.

 

지리산에서 보낸 아름다운 시간!!

그 여정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지리산을 꿈꾼다.

 

돌아오는 봄 지리산 종주를 꿈꾸며..

 

-2013년 10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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