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종주(둘째 날)
언제:2013년 10월 16일 수요일 날씨:맑음
어디:지리산(1915m)
위치:전남 구례,전북 남원,경남 함양,산청,하동(3개 도, 5개 군, 15개 면)
코스:벽소령 대피소-선비샘-영신봉-세석 대피소-연하봉-장터목 대피소-(둘째 날)
누구와:산소녀 외 두 명
지리산 종주 (둘째 날)
벽소령 대피소에서 최상의 서비스를 받고도 잠 못 드는 습관은 어쩜 나의 못된 습관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전혀 피곤치 않음은 지리산이 주는 맑은 기운일 것이다.
그 어떤 볼멘소리도 조용히 들어주는 지리산!!
지리산의 풍경은 산객들의 고뇌까지도 어루만져 주는 자연의 치유이다.
벽소령 대피소를 갓 출발해 마치 무릉도원의 안갯속을 걷는 듯한 몽환적인 경이로움은 아마 느껴보지 않은 사람 아니고는 모를 것이다.
벽소령 대피소가 그리워서일까?
조붓한 오솔길의 풍경이 걸음을 뗄 수 없을 만치 아름답다.
그래서 이곳의 풍경은 매번 지리산 종주를 할 때마다 발이 묶이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해 왔을 때는 구절초와 쑥부쟁이한테 푹 빠져 넋을 잃던 곳인데 이번에는 시기가 늦어 꽃들이 사위어 가고 있다.
골짜기 풍경이 아름다워도 가장 아름다운 건 지금 눈앞의 풍경이다.
하염없이 걷게 하고 수도 없이 서게 만드는 길.
얼마나 더 머물러야 이 길의 아름다움을 다 마음에 담을 수 있을까?
저 멀리 벽소령 대피소 뒤로 하얗게 피어오른 운해는 오늘 산행의 덤인 듯하다.
앞으로 펼쳐질 풍경도 아름다운데, 지나는 풍경을 놓지 못함은 풍경이 그만큼 아름다워서다.
코끝을 간지럽히는 갈잎 내음, 흙 내음이 싱그러운 공기와 함께 가슴속까지 촉촉하게 적셔준다.
지리산 산천경계의 돌 하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가 서로 동화되어 지리산을 더욱 빛내고 있다.
부드러운 햇살과 곱게 물든 가을빛을 바라보며 그 길 위를 걷고 있다.
지리산 종주가 먼 거리이긴 하지만 숲이 시시각각 풍경을 바꿔주니 지루하지도 않고 아름다운 향연에 천상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
지리산은 오랜 세월 변함없는 모습인 것 같아도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시사철 하루하루가 다른 산이다.
걸을 때는 그저 길기만 하더니 멈춰 서니 이토록 너른 품이다.
그렇기에 잘 안다고 말할순 있어도 결코 다 안다고 말할 순 없는 것 같다.
걸을수록 짙어지는 풍경이 그 깊이를 더해가며, 골골이 놓여 있는 숲길에도, 바윗길에도 온통 익숙한 풍경이 흐르고 친근한 추억이 어려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느린 걸음으로 그 길을 걸으며 행복을 노래했다.
벽소령 대피소에서 선비샘 구간이 그리 긴 거리가 아닌데 아름다운 풍경에 시선을 주다 보니 마치 긴 터널을 빠져나온 듯하다.
한적하고 따스하면서도 평온함이 깃드는 선비샘!!
매번 지리산 종주를 할 때마다 이곳에서 아침을 해결하는 곳이다.
벽소령 대피소는 식수 장이 멀기도 하지만 수량이 적어 등산객들 대부분이 이곳에서 세수하고, 아침 식사를 하기도 한다.
누룽지를 끓여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풍경을 찍기 위해 일행들보다 조금 먼저 세석 대피소를 향하여 길을 나선다.
지리산 종주에서 이 구간이 가장 지루하다고 말하지만, 한 발, 한 발 걸으면서 풍경에 시선을 주다 보면 어느결에 세석대피소가 눈앞에 들어온다.
세석을 가기 전 드넓은 전망이 펼쳐진다.
풍광이 아름다워 많은 등산객이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한참을 쉬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까지 꽤 먼 거리인데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아직 일행이 도착하지 안았다.
처음에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풍광을 즐기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도 일행이 오지 않자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구간은 특별한 풍광도 없는데다 어젯밤 내린 비에 바위가 미끄러워 혹시 사고라도 난 것이 아닌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마음은 더욱더 초조해진다.
그런데다 일행의 전화기가 건전지가 달아 연락도 안 되니 말이다. ㅠㅠ
그러던 차 일행이 한 시간여 늦게 도착했는데 일행은 걱정하던 나와는 달리 평온한 모습이다.
일행들 왈~내가 사진 찍는 걸 좋아하기에 여유 있게 즐기라고 마음 푹 놓고 취나물을 뜯었단다.ㅠㅠ
어찌 됐든 노심초사 걱정을 하다 일행을 만나니 반갑기도 했지만, 한 편으론 노심초사 걱정했던 마음에 상대의 마음이 불편할 정도의 언성도 높였다.
리더로서 조금만 참으면 될 것을 상대를 불편하게 해 놓고는 나 자신을 채찍질한다.
산만큼 큰마음이 되려면 어느 만큼 산을 더 올라야 산을 닮아갈까?
대안학교 학생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더니 이곳에서도 또 만났다.
잠시 이산가족이 되었던 일행과 세석으로 향한다.
길 지나는 길목에 단풍이 지난해보다는 못하지만, 가을을 즐기기에는 충분하다.
영신봉에서 세석 대피소 이르는 구간에 구절초와 쑥부쟁이의 군락인데 올해는 시기가 늦어선지 모습조차 찾아볼 수도 없고 있다 해도 거의 사위어 가고 있다.
영신봉에서 세석 대피소를 내려다보면 언제나 마음이 평화롭다.
드넓은 세석평원의 평온함이 마음의 안식을 주기에 그런가 보다.
세석 대피소!!
세석 대피소에서 가을 햇살을 받아가며 지리산의 맑은 공기와 함께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성찬을 즐긴다
견과류가 들어간 찰밥을 한 숟가락 듬뿍 떠 쌈 배추에 올려놓고, 골뱅이를 넣은 쌈장을 넣어 싸 먹으면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다.
처음 지리산 종주를 시작했을 땐 새벽 4시에 세석 대피소를 출발해 이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어둠 속에 가둬 놓아 늘 아쉬운 마음이었는데, 근래에는 낮에 유유자적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이 세상에서 가장 느린 걸음으로 촛대봉으로 향한다.
여기까지 오면서 비우고 비워도 배낭의 무게는 큰 차이가 없다.
세석에서 장터목 대피소가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배낭의 무게가 무거워 질릴 법도 한데 앞으로 남아있는 거리가 짧게 느껴짐은 그만큼 풍경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연하봉을 가기 전 바위봉우리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찬란할 텐데 아쉬움을 남기고 연하평전으로 내려선다.
연하봉!!
연하 선경(烟霞 仙景)은 지리 10경 중의 5경으로 연하봉의 모습이 신선 세계에 온 듯하며 붙여졌다.
연하봉은 기암괴석과 층암절벽 사이로 고사목과 어우러진 운무가 홀연히 흘러가곤 하여 이곳에 앉아
있으면 마치 신선이 된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천왕봉을 향해 힘차게 뻗은 지리산의 크고 작은 산줄기 사이사이에는 온갖 이름 모를 기화요초가 철 따라 피어 지나는 이의 마음을 향기롭게 한다.
이끼 낀 기암괴석 사이에 피어 있는 갖가지 꽃과 이름 모를 풀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져 천상에 온 느낌을 주어 매번 이 길을 걸을 때면 발이 묶이던 곳인데 그 아름답던 풍경은 간 곳 없고 모습이 초로의 노인 같다.
그렇게 느린 걸음으로 지리 능선을 걸었건만 5시가 채 안 된 이른 시간에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해
여장을 풀고 하루를 갈무리한다.
-2013년 10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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