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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향기

2013 지리산 종주 (첫째 날)

by 풀꽃* 2014. 2. 12.

 

언제:2013년 10월15일(화요일) 날씨:쾌청한 가을날씨에 살짝 비

어디:지리산(1915m)

위치:전남 구례,전북 남원,경남 함양,산청,하동(3개 도, 5개 군, 15개 면)

코스:성삼재-노고단- 돼지평전-임걸령샘터-노루목-삼도봉-화개재-토끼봉-총각샘터-연하천대피소-벽소령대피소(첫째 날)

누구와:산소녀 외 두 명

 

3일간의 일용할 양식을 모두 행동식으로 준비했다.

                                                                     

찬란하게 빛나는 계절의 길목!!

매년 이맘때면 지리의 품이 그리워 그 한 자락이 내 안에서 꿈틀댄다.

오르고 올라도 목마름이 채워지지 않는 걸 보면 나에게 산행은 삶인 것 같다.

 

설렘을 안고 떠난 지리산 종주!!

그 어떤 것이 이처럼 달콤할까?

열차에서 밤을 꼬박 새우고도 피곤치 않음은 내가 좋아하는 것에 마음이 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게 그러하면 아마 그 삶은 지상 천국을 이루고 있는 삶일 것이다.

성삼재!

고요 속에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성삼재의 새벽 하늘은 빼곡히 수놓은 별빛 소나타에 그 어떤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을 만치

내 생애 가장 황홀한 하늘빛을 보았고, 노고단에서 만난 일출도 기분 좋은 하루의 발걸음이 되었다. 

 

일상의 시계를 풀어두고 홀연히 떠나와 지리산에 발을 들여 놓으니 두고 온 삶은 찰나의 불과하다.

어제의 일상이 마치 까마득히 잊힌 듯 늘 꿈꾸어 왔던 것에 푹 빠져 지나온 삶이 서운해 할만치 잊히니 말이다.

이곳에서의 시간이 꿈처럼 찰나의 순간일진대 다시 돌아갈 일상 앞에 괜스레 미안해진다.

 

17kg의 배낭이 무거워 질립법도 한데 기운이 나는 것은 지리산의 사랑이 내 안에 가득해서 일 것이다.

배낭 안을 절반만 채워도 될 것을 매번 지리산 종주 때마다 지리산의 그리움만큼이나 배낭의 무게도 무거워지는 것 같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지리산의 그리움!

채워지지 않는 산 그리움을 배낭의 무게로 채우는 것은 아닌지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든다.

 

노고단 대피소!!

희미하게 들어오는 시야 속으로 쑥부쟁이와 구철초 같은 들꽃들이 있지는 않은지 살피면서 어스름 새벽 노고단 길을 오른다

매번 지리산 종주 때마다 노고단 대피소 밖에서 간단하게 간식으로 아침을 먹곤 했는데,

 이번에는 대피소 안 취사장에 들어가 정식으로 테이블에 앉아 준비해 간 주먹밥으로 아침을 먹었다.

노고단 대피소는 취사장 안에 식수가 있어 참 편리하다.

 

매번 지리산 종주를 할 때마다 같은 시각에 떠나는 열차를 이용해서 노고단에서 일출시간을 맞추기라도 한듯 일출을 볼 수 있어서 참 좋다.

 

매번 갖는 생각이지만 단풍과 들꽃들을 모두 볼 수 있는 시기를 택해 지리산 종주를 하고 싶은데, 지리산은 규모가 커서 어느 한 면만 볼 수 있는 게 늘 아쉽다. 

능선 단풍의 시기를 맞추면 산 아래 단풍은 아직 푸른빛을 띠고 있는 게 지리산이다.

 

낮은 곳에 단풍이 고운 빛을 띠고 있으니 능선의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지금 걷고 있는 길에 한 그루 한 그루 물들고 있는 단풍이 더 사랑스럽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길가에 사위어 가는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저들이 고운 빛의 자태로 나 오기만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내가 저들을 사랑하는 만큼 저들도 나를 그리워하고 사랑할 것이다.

 

 

 

 

 

임걸령 샘터!!

지리산에서 가장 물맛이 좋고 수량도 풍부한 샘터이다.

종주하는 등산객들이 대부분 노고단 대피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지만, 이곳은 식수도 있고 너른 터로 되어있어서 등산객들이 더러는 이곳에서도 아침을 준비하곤 한다.

임걸령 샘터 너른 평지 아래로 구름의 운해가 너울춤을 춘다.

앞으로 펼쳐질 풍경도 아름다운데, 임걸령 샘터를 떠나오면서 연실 뒤를 돌아보는 건 그만큼 나에게 지리산의 사랑이 커서일 것이다.

억겁의 세월이 만들어 놓은 지리산의 풍경은 제아무리 모진 세파도 감히 헝클어 놓지 못하는 것 같다.

지리산의 품에서 시나브로 깊어가는 가을을 본다.

어느새 곁으로 가까이 다가온 가을은 깊은 숲 곳곳에서 눈을 맞추고 짙어진 가을향기가 지난 여정을 반추하는 시간이다.

 

해발 1.498m 노루목!!

노루목이란 이곳의 지형은 노루의 목을 닮았다 해서 붙은 지명인데 항간에는 노루가 다니던 길 이라는 뜻에서 붙었다 한다.

이곳 노루목은 삼도봉과 반야봉의 갈림길이다.

이 길은 대부분 종주를 하는 등산객들이 다니는 길이라서 무거운 배낭 때문에 반야봉을 오르지 않고 그냥 지나치거나 아니면 반야봉을 오르다가 배낭을 초입에 내려놓고 반야봉을 오르기도 한다.

이번에는 반야봉을 오르지 않고 삼도봉으로 향한다.

삼도봉!!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한 수채화 빛 아름다운 절경이 흐르는 삼도봉!!

 

삼도봉 아래 이곳 단풍은 아침 햇살과 안개가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을 이루는 곳인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단풍이 좀 이른 감이 있다.

빛고운 풍경에 심술을 부리는 안개가 조금은 야속도 하지만, 안개도 빛고운 풍경이 좋아서일까 바람을 타고 유희를 즐긴다.

 

삼도봉을 지나 화개재로 내려서는 길은 550개의 나무계단으로 이루어져 반대 방향에서 오르는 사람에겐 죽음의 계단일 것이다.

긴 계단이긴 하지만 이곳을 지날 땐 풍광이 아름다워 한참을 쉬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화개재!!

이곳 화개재는 먼 옛날 하동의 화개장터와 남원의 산내장터 봇짐장수들이 물물교환을 했던 고갯마루를 말한다. 

화개재에는 먼 옛날 산내장터에서 올라온 70대의 소금장수가 이 고개를 넘다 너무 힘들어 죽었다는 가슴 아픈 전설이 서려 있다.

무거운 고요였을까, 가벼운 바람이었을까?

지리산의 보석 같은 길에서 그 아름다운 품속에 빠져 지리의 한 조각이 되어 있는 이 시간이 꿈인 듯 행복하다. 

이곳의 자연은 고요하게, 그리고 소박하게 오래된 빛깔과 향기로 지키고 있다.

무엇하나 보탤 것도, 뺄 것도 없이 꽉 찬 풍경이다.

눈에 담고, 가슴에 담고 행복을 되새김질하며 시선을 가득 메운다.

 

숨죽여 멈춘 것 같아 보여도 오랜 세월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호흡해 온 치열한 생명력이다.

옅은 바람에 도리질하면서도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생명이 흩으러 보이지 않는 길이다.

가을 햇살 아래 화개재를 둘러싸고 있는 산빛이 꽃보다 곱다.

어느새 스며든 가을은 숲 속 구석구석을 환하게 빛내고 있다.

 

이맘때에 풍경을 놓치고 싶은 산객이 있을까?

너나 할 것 없이 집을 나서 걸음걸음 밟히는 가을을 걷는다.

무르익어가는 계절 안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노라면 나이도 잊고 금세 소녀가 된다.

 

토끼봉을 향하여 오르면서 17kg의 배낭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기는 하지만 지리의 아름다운 풍경에 그 무게조차도 아랑곳없이 즐거움으로 다가와 지리의 한 풍경을 이룬다.

 

토끼봉!!

토끼봉이란 명칭은 주변에 토끼가 많다거나 봉우리가 토끼 모양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고 반야봉을 기점으로 동쪽, 즉 24방위의 정동(正東)에 해당하는 묘방(卯方)이라 해서 토끼봉(卯峯)으로 부르는 것이다

 

헬기장이 자리한 토끼봉은 노루목에서 시작된 오름길이 계속 이어져 이곳을 지나는 등산객들의 쉼터가 되기도 한다.

앞서 가던 대안학교 학생들이 먼저 자리를 하고 있다.

지리산은 어디를 가도 고요하고 평온해서 좋다.

너른 평지에 있을 법도 한 들꽃들이 하나도 없어 가슴 한편이 허전하다.

연하천 대피소!!

개인이 운영하는 연하천 대피소는 허름하긴 하지만 취사장에서 식수가 바로 지척에 있고 수량도 풍부해서 참 좋다.

매번 지리산 종주를 할 때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 곳이기도 하다.

흐릿한 날씨에 따스한 햇볕이 그리운 한낮이다.

테이블에 소박한 점심상을 펼치고 따끈한 국물로 속을 데워주니 이것 또한 천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우리가 숙박할 벽소령 대피소를 향해 걷는다.

비 소식이 있더니 비가 내릴 조짐으로 날이 잔뜩 흐렸다.

마음 같아서는 벽소령 대피소에 가기까지 비만 내리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벽소령 대피소를 가기 전 거대한 바위벽에 안개가 잔뜩 끼어 풍광을 볼 수 없어 참 아쉽다.

그곳의 풍광이 마치 중국의 황산을 축소 시켜 놓은 듯한데 안타깝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비가 온다는 날씨에 여기까지 오도록 비가 내리지 않은 것만도 감사하다.

 

벽소령으로 이어지는 길은 지난해부터 정비작업이 시작되고 있더니 진행이 무척이나 더디다.

벽소령을 700m 앞두고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지만, 큰비가 아니라서 감사하다.

가벼운 비옷을 꺼내 입고 걸음을 서두른다.

 

일기예보에 비 소식이 있어 조금은 염려했지만, 우리의 산행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듯이 우리가 묵을 벽소령 대피소를 조금 앞두고 비가 내린다.

그래도 많은 비가 아니어서 산행하기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집을 나선 산객들이 저마다의 보금자리에서 하루를 갈무리하는 벽소령 대피소!!

우중 벽소령 대피소에 들어서자 따뜻한 온기가 하루 여정의 피로를 감싸 안으며 또 한 번의 감동을 하게 한다.

 

-2013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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