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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향기

무늬만 산행(팔영산)

by 풀꽃* 2014. 6. 5.

                      어디:팔영산 깃대봉(608m)

                      위치:전남 고흥

                      코스:능가사-흔들바위-유영봉-성주봉-생황봉-사자봉-오로봉-두류봉-칠성봉-적취봉-깃대봉-탑재-능가사

                      누구와: 교회 주안등산부 회원 18명

 

                      내가 존재하는 한 나는 영원히 주안등산부에 남아있을 것이다.

                      내가 비록 힘이 없어 산을 오르지 못한다 해도 함께 하는 것 만으로도 족하니까.  

                     오래 전부터 길들여진 나의 습관은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한 명이라도 더 참석하게 하기 위해 이번에도 도시락을 넉넉히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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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개의 봉우리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팔영산!!

                       팔영산이란 이름의 유래는 삼국시대 중국 위왕이 세숫대야 속에 여덟 봉우리가 비쳐 그 산세를 중국에까지

                       떨쳤다는 전설이 전해지면서부터이다. 

 

                      이번 팔영산 산행은 말이 산행이지 제목에 나타난 대로 무늬만 산행이다.

                      그래도 욕심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이렇게라도 자연 속으로 들어오니 숨이 트일 것 같다.

                      꼭 산행이 아니더라도 산빛, 풀빛만 봐도 오감이 살아나는 것 같다.

                      소리 없이 스며든 봄은 숲을 물들이며 깊어질 때로 깊어진 봄을 풀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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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행들을 떠나보내고 산길로 들어서니 자동차 매연 대신 싱그러운 풍향기를 풀어 놓는다.

                      그리고 속도를 내는 대신 느긋하게 유유자적 두 발로 걷는 기쁨이 충만하다.

                      숲 속으로 들어서니 새소리, 바람 소리,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모두 나를 반기듯 찬양하는 것 같다.

                      나를 반기며 이렇게 아우성인데 내가 오지 않았더라면 저들이 얼마나 서운했을까?

                      그런 생각이 스친다. 

                      예전 같았으면 눈에도 들어오지 않을 풍경들인데 작은 것 하나하나가 보석과도 같이 소중하게 느껴지며

                      풀조차도 가까이 두고 싶어지는 것을 보면 그만큼 자연이 그리운 것이다.

                      산길을 걷다가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사진에 담기 위에 숲으로 들어가면서도 무심코 남긴 발자국 하나가

                      행여 자연 생태계를 해치지 않을까 조심스레 발을 딛는다.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이보다 더 좋은 명약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급할 수밖에 없던 성미가 느긋해지고 아름의 여유가 생긴 것도 그러고 보면 산이 내려준 처방이다.

                      지금의 내 상황이 이렇다 보니 풍경에 애잔함이 더한다.

 

                     일상의 분주함을 뒤로하고 푸른 자연 그리고 그 안에서 누리는 이 평화!!

                     비밀의 정원 대자연의 화폭에 아름다운 그림을 펼쳐 놓고 그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여유롭고 달콤한지

                     나를 다시 돌아본다.

                     바람에 실려온 향기에 자연의 숨소리만 가득하다. 

 

                     지나온 세월로 다시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여리디여린 4월의 색채만으로 사랑스러워 마음의 키가 쑥쑥 자라난다.

                     계절이 실은 연둣빛 바람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기고 신록의 풍경과 새소리 그리고 바람 소리가 삼중주로 연주하는

                     황홀한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흔들리는 이파리는 음표가 되고 능선을 감싼 정적은 쉼표가 되는 음악 같은 숲으로 걸음 한 번, 풍경 한 번,

                     번갈아 가며 그 풍경에 젖어 계절의 축복을 누린다. 

                     완주를 못 하는 게 아쉽긴 하지만 이나마도 걷지 않았다면 놓쳤을 풍경들이다.

                     오지 않았더라면 못 봤을 풍경이다.

 

                     숲으로 들어오니 여덟 개의 봉우리는 숲에 슬쩍 감추고 신록의 얘기만 풀어 놓는다.

                     풍경도 마음도 싱그러운 생명력으로 들썩인다.

                      전에 팔영산을 두 번을 왔었어도 흔들바위를 본 기억이 없는데 집체만한 흔들바위가 터를 잡고 있다.  

 

 

 

 

                      올해는 산에도 꽃피는 시기가 일러 오월 말에나 피는 연분홍 철쭉(연달래)이 벌써 피었다.

                      화려하지도 진하지도 않은 수줍은 듯한 철쭉을 내가 좋아하는 이유도 철쭉의 온화함이 

                      나를 닮은 듯해서인 것 같다.

 

                      목적지는 아직도 먼 풍경 속에 있는데 유영봉을 0.4km를 앞두고 하산길로 내려선다.

                      능가사에서 1.4km를 올랐으니 왕복 2.8km를 걷는 셈이다.

 

                      등산객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름길이 힘들겠지만, 무릎이 안 좋아 하산하는 게 더 걱정된다.

                      스틱을 가져오다가 짐이 될 것 같아 다시 차에다 놓고 온 게 후회가 된다.

                      풍경에 시선을 두며 한발 반발 조심스레 걸음을 옮긴다. 

                     산을 오를 때도 쉬엄쉬엄 올랐지만, 하산길은 소풍 나온 어린아이처럼 느린 걸음으로 숲 속 구석구석 참견할 것

                     다 참견하면서 하루 분량의 소박한 행복을 챙겨 들고 주차장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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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따라 매번 오던 권사님도 오질 않아 기사 집사님과 함께 점심을 먹고 밭 억덕배기에 돋아난 머위를 뜯고도

                     시간이 남아 일행들이 하산하는 코스로 산책 삼아 올라 일행들을 만나 함께 하산했다.

 

                     나는 오늘 힘겨움보다는 산의 갈망이 더 컸기에 이 길 위에 섰다.

                     놓칠뻔한 풍경을 산은 그렇게 단단히 묶어 주었다.

                     언젠가 끝날 이 길의 힘겨움, 언제고 부서질 이 순간의 평온함 그 여정이 내게 다가올지언정 나는 외롭진 않다.

                     산이 거기 있으니까.

 

                     욕심내지 않고 하루해가 허락하는 시간만큼 주어진 힘만큼만 걸으며 걷는 과정 자체를 즐겼던 여정!

                     아마 내가 살아가는 과정도 이와 같을 것이다.

 

                     길 위에서 중요한 건 길이가 아니라 방향이다.

                     가장 소중한 시간은 저 너머에 있는 게 아니고 바로 이 순간에 있기 때문이다.  

 

                     아픔도 그리움도 멀리하기 위해선 새로운 둥지를 틀어야 하기에 나는 지금 아픔의 자리를 메꾸기 위해

                     새로운 둥지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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