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2014년 5월 17일(토요일) 날씨:맑음
어디:공작산(887m)
위치:강원도 홍천
코스:공작헌-공작산-안공작재-수리봉-약수봉-귕소-용담-공작산 생태숲-주차장
누구와:교회 주안등산부(26명)
눈이 시릴 만큼 푸른 오월!
봄이라 하기엔 너무 늦고 여름이라 하기엔 다소 이른 봄과 여름이 몸을 섞은 오월!
연둣빛 산하가 하루가 다르게 진초록 물감을 풀어가며 곱게 채색화되어가는 싱그러운 푸른 오월이다.
이유 없이 터져 나오는 오월의 햇살 속으로 빠져들고 싶은 계절이기도 하다.
소리 없이 스며든 오월은 세상을 이처럼 찬란하고 아름답고 물들이며 오월의 정취를 깊어질 때로 깊이 수놓고 있다.
이곳에 들어서니 자연의 숨소리만 가득하다.
자동차 매연 대신 싱그러운 풍향기를 풀어 놓는다.
그리고 속도를 내는 대신 느긋하게 두 발로 걷는 여유로움의 기쁨이 하늘을 난다.
대자연의 아름다운 화폭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펼쳐 놓고 그 안에서 누리는 이 평화!
이것이야말로 힐링다운 힐링이다.
급할 것도 서두를 것도 없이 나는 이곳에서 자연의 시계에 맞춰 그들이 이끄는 대로 몸과 마음을 내어주려 한다.
그리 번잡한 일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상에서 조금은 허기진 마음을 너른 자연의 품이 안아준다.
태초에 사람의 보금자리가 자연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욕심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난 후의 홀가분함이라고 할까?
마음이 그새 산을 멀리하고 오월의 풍경 앞에 그 색채만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을 설렘으로 알 수 있다.
푸름의 자연에서 나는 이럴 때마다 마음의 키가 쑥쑥 자라는 것 같다.
풍경도 마음도 싱그러운 생명력으로 들썩인다.
이렇듯이 주어진 계절에 축복을 누리는 일은 각자의 몫이다.
공작산 생태숲에 들어서니 눈이 부시도록 시린 청명한 하늘이 심상치 않은 얘기를 풀어 놓는다.
초록의 숲에서 태양이 빛을 뿌리는 시간!.선명히 파고든 햇살도 숲이 좋은지 숲 속 곳곳에 몸을 던진다.
생태숲 사위가 온통 설렘으로 다가온다.
어제와 오늘이 다른 것은 어제는 기다림의 설렘이고, 오늘은 아름다운 풍광으로의 설렘이다.
어쩌면 생의 희망과 절망 역시도 태양의 명암 같은 게 아닐까?
연못 한쪽에서 풍광에 취해 사진을 찍는데 교구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권사님 지금 어디세요?" 목사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목사님 저 지금 아주 좋은 곳에 와 있어요." 하고 설명을 늘어놓자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권사님 보이지는 않지만, 권사님이 계신 곳 그림이 그려지네요." 하신다.
얼마 전 목사님과 심방을 마치고 함께 숲길을 산책한 적이 있었는데 목사님과 나는 숲 속 풍광에 푹~빠져 걸음을 떼지 못할 정도로
감탄을 했던 적이 있었다.
목사님께서 그때의 모습을 떠올리시고 하신 말씀이다.
그때 나는 이미 목사님께 마음을 들켜버리고 말았다.
목사님과 나는 성향이 비슷하고 요즘 흔히들 하는 말로 코드가 잘 맞는 것 같다.
이 풍경 속에 한 조각이 될 수 있음이 그저 감사하고 행복하다.
그 어느 도시도 산보다 좋을 순 없고 그 어느 산도 오르지 않으면 그저 산으로 남아있지만
숨은 그림을 찾아 내 안에 이렇게 넣으니 귀한 보석이 된다.
이름 모를 새가 오월을 찬양하듯 그들의 울음소리가 하늘을 난다.
온갖 꽃으로 화폭을 수놓은 그윽한 숲!
오월의 햇살이 잔잔하게 부서져 머리 위에 내리면 싱그러운 초록 바람은 향기나는 기품을 토하며 봄 햇살과 만나 포옹을 한다.
싱그러운 초록 풀 내음이 전해져오는 산자락은 점점 짙푸르러 가고 앞다투어 피어나는 꽃들로 오월의 향 내음에 숨이 멎을 것만 같다.
초록 바람이 꽃에 내려와 앉으면 꽃들은 오선지 위에 음표와 쉼표가 된듯 잔잔한 무음으로 고즈넉한 숲 속에 그들만의 연주를 펼친다.
꽃들의 여린 살갗 행여나 스쳐 지나는 바람에 다칠까 노심초사해지는 살가운 마음은 바로 사랑이다.
푸르름 가득 품은 그리움에 풀꽃이라도 되고 싶은 오월이다.
작약꽃이 펼치는 아름다운 연주에 걸음을 뗄 수 없을 만치 설렘이 일어 한참을 머물렀다.
이런 곳에서는 온종일 머물러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아름다움에 취해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배고픔에 허기지는 줄도 모르고 풍광으로 배를 채우고, 나비가 꽃을 찾아 날아다니듯
풍광 따라 춤을 추며 훨훨 난다.
풍광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한 끼 밥 굶은들 어떻고 며칠 밤잠 설친들 어떠랴.
현란한 봄, 찬란한 봄이라기보다 가슴에 젖어드는 푸릇푸릇한 초록 풀잎이고 싶은 오월!
초록은 나에게로 와서 바람과 함께 잎이 되고 꽃이 되고 사랑이 된다.
나무와 바람, 꽃들과 풀들은 이곳의 주인이 되어 터를 지키며 오고 가는 이들에게 기쁨과 안식과 행복을 선물해 주고 있다.
이곳에 나도 한 점이 되어 풍경을 이루며 아름다운 그림이 되어 본다.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도 봐주는 이가 없다면 무용지물이 될 테니까.
공작의 날개처럼 부챗살을 한 공작산!
뻗어내린 너른 품 구석구석엔 오래된 전설과 오늘의 삶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그 길로 들어서는 걸음걸음이 시간이 흘렀는데도 설렌다.
해 뜨면 산이 보이고, 해 지면 별이 보이는 건 모두의 꿈일진대 매일의 삶이 그렇지는 못해도 이따금 이렇게라도 즐길 수 있으니
이것 또한 얼마나 감사인가?
산이 들으면 서운할지 모르겠지만, 풍광에 젖어 산행의 미련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제까지는 산만 떠오르고 눈뜨면 산만 보였는데 오늘에서야 들도 보이고 산아래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그리워하기에도 가슴 벅찬 오월!
오월의 시간이 흐르고 있음에 그리움은 더 깊이 푸른 오월을 노래하고 싶어진다.
올봄 지리산 종주의 꿈이 물거품으로 사라지면서 피 울음을 놓지 못한 멍들어진 가슴에 무엇인가 그려 넣고 싶은 욕망에
마음 가득 초록 물이 흥건히 젖었다.
내가 만일 전원주택을 마련한다면 그곳에 꼭 갖추고 싶은 풍경이다.
새들이 찾아와 주지 않아도 이 자체만으로도 운치 있고 좋은 기운이 흐를 것 같다.
깨끗하게 잘 다듬어진 곳에 세워진 것보다는 이처럼 풀숲에 세워지면 더 좋겠지!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으니까 비상의 날개를 펴보자.
한겨울의 밀짚모자 꼬마 눈사람! 갑자기 그 노랫말이 떠오른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 작은 것으로 인해 마음이 이렇게 포근해지고 정겨울까?
사랑스러운 가족 愛가 느껴진다.
눈사람은 눈 내린 하얀 벌판에만 있어야 어울리는 줄 알았는데 때아닌 초록의 숲에 있으니까 더 친근감이 있고 사랑스럽다.
파란 하늘에 구겨진 얼굴 헹구어 보고, 형형색색 꽃들의 현란한 조화에 취해 보고 초록 화단에 꽃잎 하나 피워 투명한 하늘을 여는
싱그럽고 풋풋한 초록 풀잎이고 싶은 오월!
서로 앞다투워 피어나는 꽃들의 거친 호흡 소리가 푸른 문 활짝 열어 놓고 소리 없이 오월과 함께 손잡고 가려 한다.
나이는 들어가도 아직은 계절을 노래하는 풋풋한 풀꽃, 들꽃이 되고 싶다.
풍광에 취해 시간 흐르는 줄도 몰랐는데 그새 4시간이나 흘렀다.
시간이 흘러 배고플 법도 한데 풍광으로 배를 채워서인지 뿌듯하기만 하다.
그 긴 시간을 즐기고도 주차장에 와서 간단히 포도를 먹곤 또 풍광을 찾아 계곡으로 내려선다.
푸른 시절이 아쉬워서일까?
붉게 물든 적 단풍이 초록의 숲에서 붉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가을이 되려면 아직도 먼데 지난가을 억새가 할 말이 남았는지 아직 떠나질 못하고 있다.
억새도 누군가의 그리움이 있어 그리움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걸까?
바람이 일렁일 때마다 손사래를 흔드는 것 같다.
우리의 일상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조각천처럼 하루하루가 모여서 인생이 된다.
오늘 이 하루의 시간이 살아가면서 삶이 지루하거나 힘겨울 때 이 풍경은 변함없이 안식이 되고 위안이 되어줄 것이다.
즐거운 하루는 이렇듯이 늘 빨리 달아난다.
오월의 텃밭에서 방금 따온 푸른 채소처럼 나는 푸른 오월입니다.
앞으로도 영원한 오월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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