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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향기

구름이 머무는 운장산

by 풀꽃* 2014. 9. 25.

언제:2014년 8월 16일(토요일) 날씨:맑음

어디:운장산(雲長山)1126m

위치:전북 진안

코스:연동마을-연석산(925m)-만항재(770m)-칠성대(1,120m)-운장대(1,126)-삼장봉(1,133m)-내처사동(7시간)

누구와:교회 주안등산부 회원 29명

 

 

 

 

여린 신록에서 짙은 녹음으로 무르익어가는 여름의 숲!

걸어보지 못한 시간과 공간 속으로 이방인들을 이끈다.

그 길로 들어서니 들길 같은 소박한 풍경에 마음이 정화된다.

 

최고의 사진은 아직 찍히지 않은 사진이고, 최고의 풍경은 아직 보지 못한 풍경이 아닐까?

오늘도 그 설렘을 안고

멀어져 가는 여름 향기를 따라 운장산 들머리에 들어서니 등로 양옆으로 싱그러운 초록의 숲에서

코를 자극하는 풀 향기가 지난 세월 동심을 불러온다. 

지금은 그 향기가 선물처럼 다가오지만, 그 시절엔 매일 같이 그 향기에 젖어 살았기에 희뿌연 도시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참 아름다운 부부의 모습이다.

부부란 세상을 살아갈 때 이렇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발을 맞춰가며 호흡을 함께해가며 살아가는 거야.

 

 

 

때론 남편을 앞에 세우고 뒤에서 조용히 응원하며 따라가는 거야.  

실타래 같은 길이 가늘지만, 선명히 먼 곳을 가르치며 흐른다.

 

먼 길 가는 이들 응원이라도 하듯 계곡의 기운찬 물소리가 막바지 여름을 찬양하고 있다.

갈 길이 멀어 마음은 계곡에 두고 빈 껍데기로 미지의 세계로 걸음에 힘을 실어 한 걸음, 한 걸음 옮긴다.

산행은 속으면서 하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걸어도 걸어도 여전히 아득한 높이에 여전히 힘들어하는 체력!

오르면 오를수록 걸음은 점점 묵직해지고 능선의 하늘 끝이 보이는 듯하면 다시 숲으로 이어지는 여정!

그런 여정이 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몸에 힘을 뺀다.

정말 힘든 여정을 미리 알고서는 산을 오르기도 전에 지쳐버려 산행을 못 할같다.

 

머리 위에 묵직한 풍경이 버거울 땐 발아래 소소한 것들에 눈길을 나눠주며 걷는다.

고도가 가져다 주는 것은 이마를 타고 흐르는 짭쪼롬한 땀뿐이고 그 흔하디흔한 원추리 한 송이 보이지 않고

홀로 견뎌야 하는 걸음의 무게만 더 무거워진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늘 곁에서 함께 가자 응원하는 저 산이다.

 

계곡을 벗어난지 얼마 안돼 대장님을 따라 일행들 모두 지름길로 들어서고 앞서가던 장로님과 나만 정코스로 오른다.

앞서가던 나도 아마 대장님과 거리가 멀지 않았더라면 나도 그리로 들어섰을 텐데 힘들게 올랐기에

되돌아 서서 내려간다는 게 마음이 허락질 않는다.

이젠 정말 별다른 풍광도 없이 걷는 일만 남은 것 같다.

올라야 길이 아직 멀리 있긴 하지만 분명히 가까워지고 있다는 희망을 갖고 나간다.

그렇게 고도와 싸우며 그리고 나 자신과 싸우며 해발 1126m의 산을 오른다.

 

 

서서히 가팔라지고 있는 이곳의 고도!

얼마나 걸었을까 힘든 여정 쉬어가라고 등로 옆으로 전망대를 선사한다. 

세 곳의 전망대만 있을 뿐 별다른 풍경도 없이 그 풍경이 그 풍경인 오름길!

그곳에 서서 우리가 올라온 곳을 내려다보니 긴 역사의 한 장면처럼 아스라이 내려다보인다. 

 

 

 

고도가 더해갈수록 바닥나는 체력이지만, 마지막 전망대에 섰을 땐 부드러운 바위 능선의 곡선미가 마음을 빼앗는다.

저 능선이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능선이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길 만치 빼어난 풍광이다.

턱까지 차오르는 거친 숨만 아니라면 차라리 꿈으로 기억될 시간이다.

능선이 저만치 위에 있으니 앞으로 가야 할 여정에 가기도 전에 지쳐 그만 그 자리에 주저 싶은 심정이다. 

 

인생도 목표가 있어야 의혹이 불타듯 힘은 들지만, 목표 지점을 향해 쉼도 없이 다시 길을 오른다.

오르다 힘들어 지나온 길 뒤돌아 보면 실타래처럼 구불거린 길에 내가 흘리고 온 땀 자국이 뚝뚝 떨어져 있는 듯하다. 

 

선명히 먼 곳을 가리키며 실타래 같이 흐르는 길을 따라 그 꿈을 안고 힘들지만 땀 범벅인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오른다.   

우리 앞에 놓인 먼 여정을 예고라도 하듯이 하늘 끝이 보이는 듯하면 다시 숲으로 이어지는 여정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몸에 힘을 뺀다.

오름길의 힘듦도 이젠 친구처럼 동행해 익숙해져 있다. 

 

지금 이 시각이 누군가에겐 모험으로 기억되고 그러나 또 누군가에겐 한날의 고된 고행이지만 시간이 흐르고 난 후엔

더 잊히지 않는 추억으로 오래오래 자리할 것이다. 

아직도 하늘 끝이 보이지 않는 걸 보면 그저 묵묵히 걷는 일만 남았다.

다가선 풍경 하나하나에 눈 맞춤 하면서 힘은 들지만, 인내도 인생 공부라고 생각하고 힘을 내어 본다.  

이렇게 무심 없는 걸음으로 걷다 보면 멋진 풍경도 곧 만나게 되지 않을까?

지금 걷는 이 길이 오늘 우리가 가야할 전체 트레일 중 가장 힘든 구간일 것이다.

가려진 산세를 미루어 짐작치 않고 앞에 놓인 길과 풍경을 그저 심신에 맞기는 건 오랜 시간 산행이 가르쳐 준 여유다.

 

 

 

 

 

 

꿩대신닭이라고 인색한 야생화 대신 망태버섯이 노랑 그물을 뒤집어쓰고 있다.

망태버섯도 혼자였으면 이 깊은 산중에 외로웠을 텐데 둘이 서로 마주 보고 있어 덜 외롭고 그들만의 말동무가 될 것 같다.

 

 

긴 시간을 거쳐 도착한 연석산 정상!

연동마을에서 쉼 없이 1시간 45분을 죽을 힘을 다해 올라온 연석산이다.

연석산에 오르니 우리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뜨거운 태양이 덥석 안긴다.

힘들게 올랐는데 변변한 표지석 하나 없어 더 힘이 빠진다.

 

 

우리가 도착한 지 15분쯤 지나 지름길로 들어선 일행들이 하나둘 오기 시작한다.

얼굴에 힘든 기색이 역력히 배어 있다,

이곳까지 올라오느라 힘은 들었지만 그래도 능선에 오른 기쁨에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진다.

 

삶에도 굴곡이 있듯이 부부도 살아가면서 힘들 땐 서로 마주 보며 웃기도 하고 서로를 위로해 주며, 기쁠 땐 함께 기뻐하는 게

이치이듯 동행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이곳에서 가야 할 운장산을 바라보니 하늘을 닿을 듯한 산 높이에 걷기도 전에 질려버린다.

보이는 것은 굽이굽이 흐르는 산 그리메로 사방이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잠시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산죽 나무 숲을 지나 운장산으로 향한다.

운장산이 하늘을 닿을 듯이 높이 솟아 있지만 이제까지 봐왔던 것처럼 산은 보는 것하고는 달라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여기까지 오도록 계속 오름길만 오르다가 능선길로 접어드니 양옆이 숲으로 가려져 별다른 풍경이 없어도 편안함 그 차체로

모두가 행복한 표정이다. 

그래도 힘이 되는 건 연석산에서 운장산의 연결 고리가 되는 부드러운 능선의 숲이 활력을 갖게 했다.

 

 

소소한 풍경에도 눈길을 주다 보면 자연은 또 다른 선물을 준다.

산행 중 야생화를 자주 만났다면 아마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르지만 궁핍한 마음에 보물처럼 다가오는 버섯에 눈이 번쩍한다.

 

 

 

 

능선길의  숲 속 사이로 간간이 파고드는 바람이 얼마나 반갑던지 한낮 잠깐 눈 붙이는 낮잠처럼 달콤하다.  

순한 능선임에도 불구하고 오름길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써서인지 허기가 진다.

 

 

산상에서 펼친 성찬!

가져온 음식 모아 모아 상을 펼치니 진수성찬으로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허기진 배를 채운다.

이웃끼리 도란도란 모여 사는 풍경처럼 삼삼오오 둘러앉아 사랑을 나누고 음식을 나눈다.  

 

깊은 명상에 잠긴 대장님.!

대장님께선 점심을 뚝딱 드시고 깊은 명상에 잠기셨다.

 

 

점심을 먹기 전에는 허기 가져 기운이 빠지더니 밥을 먹고 나니 몸이 무겁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된 오름길이 아니어서 걸을만하다.

산행도 그러고 보면 우리의 삶처럼 희로애락 인 것 같다.

오름길처럼 힘든 구간이 있는가 하면, 쉬지 않고 내리닫는 길도 있고 평탄한 길도 있다.   

 

연석산과 운장산의 다리 역할을 해준 편안한 길이 끝나고 다시 오름길이 시작된다.

산행의 재미는 오르다 내리다인데 자일 구간이 없으면 좀 밋밋할 텐데 오름길에 자일 구간이 심심찮게 이어진다.  

우회로가 있음에도 산객들은 편한 길 마다하고 로프에 매달리는 것을 즐기고 있다.

쉽고 빠르게 오르려는 이나 애를 쓰며 고비를 넘기려는 이나 결국 그 마음은 자연을 향해 있다.

 

바위 채송화

 

 

사람의 손이 전혀 안 간 산상의 잘 가꿔진 초록 정원!!

바위벽에 뿌리를 내리고 생명을 이어가는 강인한 생명력 우리에게 강인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높은 절벽에 뿌리를 내리고 피어 있는 원추리가 노란 웃음을 짓는다.

인간이 견디기 힘든 곳에서 꽃은 생명을 유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자연을 잔인하다 해야 할까 자비롭다 해야 할까?

애초부터 인간의 길이 따로 있지 않고 인간이 개척했듯이 이 길도 인간이 산을 다니기 위해 개척해 놓은 길이다.

그 길 위에 내가 있고 꽃이 있다.  

 

 

칠성대에 오르니 바람과 함께 멋진 조망이 펼쳐진다.

멋진 조망에 숨 고르기도 하지 않고 바위 봉에 올라 사진 담기에 여념이 없다.

 

이곳까지 오면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바위를 침대 삼고 배낭을 베개 삼아 하늘을 향해 누웠을까?

그렇게 힘든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산에 매력에 푹 빠져 있는 걸 보면 자연만큼 좋은 건 없는 것 같다.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그런 걸 보면 산행은 힘으로 하는 게 아니고 지구력이다.

 

높은 바위 봉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눈에 들어오는 건 온통 산뿐이다.

나비가 너울 춤을 추듯 굽이굽이 걸어보지 못한 시간과 공간 속으로 산객들을 유혹하고 서 있다.

이 광활한 세상의 중심에서 우린 무엇을 보고 무엇을 외치게 될까?

 

 

 

 

 

 

 

 

 

깎아지른 벼랑 끝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보랏빛 산부추!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연약한 꽃잎에서 누구보다 치열한 생을 엿본다.

몸낮춰 엎드린 풍경 앞에선 사람도 겸허해 진다.

지상의 높은 곳이 아닌 내 안에 낮은 곳을 향해 가는 여정 속에서 세상사 잡념과 허욕이 차 오를 때마다 나는 이 여정을 돌아보며

아무런 욕심도 없는 겸손한 순례자처럼 마음을 비울 것이다.   

 

저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을 운장산으로 다시 걸음을 옮긴다.

힘든 길이 있는가 하면 우리의 인생길처럼 아기자기한 길도 있다.

그래서 산행은 힘든 고비도 인내하게 되는 것 같다.

 

숲을 지나 바위에 이르고 바위에 올라서서 다시 숲을 본다.

연석산을 오를 땐 사진 한 번 안 찍고 올랐는데 풍경만 나타나면 사진찍기 바쁘다. 

 

 

 

꽃도 우리 인생과 같이 부부의 연이 맺어지는지 두 송이의 원추리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가 하면 짝을 잃고 홀로 피어 있는 것도 있다.

이 또한 자연의 순리이기도 하다.

 

 

 

국립공원이 아니라 그런지 봉우리의 표지석이 하나같이 다 자그마하다.

힘든 산행 앉아 쉬어가라고 배려하는 마음에서 일부러 키를 낮춘 걸까? 

 

잉크 빛 모싯대!

정체 구간 지루할까 봐 사진 담으라고 이곳에 피었을까?

지리산 종주 길에 많이 피어 있는 모싯대가 반갑게 맞이한다.

아니 모싯대가 반갑게 맞이한 게 아니라 내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설악산 서북 능선에 자리한 아치형 나무를 닮은 아치형 나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사진을 담으며 시간을 할애한다.

이곳은 운장산을 찾는 산객들이 사진 찍는 명소이기도 하다. 

 

 

 

 

 

 

 

햇볕조차도 스미지 못하게 숲으로 우거진 계곡은 물의 수량은 적지만 맛으로 치면 살얼음 동동 띄운 동치미처럼 시원하다 못해

소름이 끼칠 만치 차가워 물에 들어갈 엄두조차 나질 않지만, 여름의 끝자락 바람도 막바지 휴가를 갔는지 산행 내내 흘린 땀을

계곡에 흘러보내며 산행을 마무리 한다.

 

나만 그랬을까 산 위에서 참 힘들고 버거운 하루였다

아마 무작정 산만 바라보며 갔더라면 가기도 전에 지쳐 기진했을 텐데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꿈을 가진 동행이 옆에 있었기에

힘든 여정도 위안이 되고 즐거움이 되고 활력이 되었다.

오늘의 이 힘든 여정을 생각하면 다시는 산을 오르고 싶지 않을 것 같은데, 그 여정이 힘들지언정 우리는 산을 내려서기도 전에

다시 산을 꿈꾼다.

 그날의 힘들었던 시간도 우리들의 아름다운 우정도 여름날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곱게 여울져 간다.

 

 

 

 

 

 

 

 

 

 

 

 

 

 

구름이 머문다 하여 이름 붙여진 운장산!

멀어져 가는 여름 향기를 따라 나셨던 길이

누군가 쌓아 올린 탑처럼 장엄한 성체처럼 단단하고 묵직한 앉음새!

이 모든 게 세월의 결정체가 아닐까?

시간이 지나 오늘의 이 풍경은 또 어떤 기억으로 새겨질까?

 

산을 오르며 힘들다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더라면 보지 못했을 풍경들이다.

풍경에 따라 달라지는 속삭임이 그리 달콤하지 않아도 미지의 길로 들어서면서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일!

그 설렘이 있기에 우린 산을 오른다.

그리고 인생의 희로애락 같은 산의 품에서 인생을 배우게 된다.

풍경의 경계를 가만히 적시는 노을빛처럼 그렇게 길 위에 하루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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