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2014년 7월 19일 (토요일) 날씨:한차례 소나기
어디:덕항산(1071m9 지각산(1079m)
위치:강원도 삼척
코스:하사미교-예수원-구부시령-덕항산-환선봉(지각산)-장암재-환선굴-대이리 주차장
누구와:교회 주안등산부(26명)
하늘도 산도 초록이 넘실대는 계절 여름!
살아있는 모든 것이 푸른 숨을 내쉰다.
푸른 나무가 그늘 텐트를 친
숲으로 들어서니 숲의 청량함에 도시에서 묻어온 더위도 날아간다.미지의 경치 앞에 솟아나는 설렘과 다양한 감정의 풍경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마음이 달뜬다.
볕 드는 날만 기다렸던 들꽃처럼 산에 오르기를 얼마나 고대했던가?
이번 산행도 산 아래서 머물렀다면 보물 상자를 열어보지 못한 아쉬움을 안고 돌아갈 텐데
하나씩 꺼내보는 보물의 기쁨에 산행의 맛이 깊어간다.
풍경에 따라 달라지는 바람을 맛과 그 바람 속에 숨겨진 또 다른 풍경들을 바라보는 일보다 신 나는 일은 없다.
자꾸만 말을 거는 풍경에 눈길을 주다 보면 내가 산인 듯, 산이 나인 듯 풍경에 푹 빠져 나도 모르게 자연과 하나 되어
한 풍경을 이룬다.
자연이 그려내는 아름다운 풍경!
여름의 잔치에 모든 색이 선명해지고 모든 길이 제 품을 열어 다채로운 풍경을 선보인다.
그 풍경에 물들어 몸도 마음도 평온해진다.
경쾌한 노래만큼 부푼 마음으로 산을 오르다 보면 발치의 작은 풍경 하나하나에 마음이 가고 그러다 보면 걸음은 점점 게을러 진다.
온몸으로 계절을 노래하는 꽃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먼 길 가는 이들 응원이라도 하듯 걸음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말나리꽃이 지천으로 피어 발목을 잡는다.
꽃과 눈 맞춤 하여 몸 낮춰 허리 굽히면 그 풍경에 맞춰 마음도 겸허해진다.
깊고 푸른 자연 그리고 그 안에서 누리는 평화 대자연의 화폭에 수를 놓듯 알록달록 꽃따라 마음도 알록달록 물든다.
그동안 무릎에 무리가 와서 산행을 못 해서 인지 산을 오르는 기쁨이 더 크다.
삐죽 내민 야생화에 시선을 주다 보면 멀리 보이던 풍경도 어느새 앞에 다가와 걸음을 옮겨 놓은 듯하다.
사람이 만든 건 한계가 있지만, 자연이 빚은 건 그 아름다움이 무궁무진하다.
산이란 공통분모를 가진 이들이 모여 가다가 쉬다가 걸음 맞춰서 걷는 길!
걸음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마음도 맞춰져 흥을 돋우게 된다.
앞서가는 이들의 쉼터가 되었던 구부시령!
태백 하사미의 외나무골에서 삼척 토계읍 한내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옛날 고개 동쪽 한내리 땅에 기구한 팔자를 타고난 여인이 살았는데 서방만 얻으면 죽고 또 죽고 하여 무려 아홉 서방을 모셨다고 한다.
그래서 아홉 남편을 모시고 산 여인의 전설에서 구부시령이라 하였다고 한다.
매번 들머리에서 찍던 단체 사진을 오늘은 구부시령에서 찍었다.
<동자꽃>
귀한 꽃들이 이 길 위에 있다.
옛날 깊은 산 속 암자의 스님이 겨울을 나기 위해 마을로 시주를 나갔는데 폭설 때문에 암자로 돌아올 수가 없어
암자에 남아 스님을 기다리던 동자승은 배고픔과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 얼어 죽고 말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스님은 양지바른 곳에 동자승을 묻어 주었는데 동자의 무덤에서 식물이 자라 꽃을 피웠는데
마치 동자승의 얼굴처럼 동그랗고 발그레한 꽃을 피워 사람들은 이때부터 이 꽃의 이름을 동자꽃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구부시령을 지나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보던 솔나리와 동자꽃이 걸음을 뗄 수 없을 만치 꽃길을 연다.
마치 내가 산을 오른 것을 환영이라도 하듯 환한 미소를 건넨다.
내가 살아가면서 이런 기쁨을 몇 번이나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가던 길 멈추고 아예 그곳에 자리를 잡고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좋아한다고 다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어찌 이리도 아름다운 꽃을 두고 걸음을 뗄 수 있을까?
바람이 불 때마다 꺾어질 듯하다가도 몸을 일으켜 곧추세우는 솔나리의 춤사위가 강인한 여인의 자태 같다.
솔나리는 멸종위기 2급의 보호식물인데 그래서 더 발을 뗄 수가 없다.
일행들이 모두 사라지고 조급할 텐데도 고요한 길에 평온이 깃드는 건 자연이 주는 사랑일 것이다.
일행들이 모두 앞에 간 줄 알았더니 뒤에서 후미 대장님이 오고 계신 게 아닌가?
갑자기 밀려오는 안도감에 마음이 다시 넉넉해진다.
꽃에 푹 빠져 덕항산 굴곡에 몸을 맡긴 지 한 시간 여 꽃에 눈길을 주다 그만 길을 잃었다.
흐릿한 길을 따라가 보지만 가면 갈수록 길은 더 흐려지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길도 아닌 된비탈 길을 하염없이 미끄러지며 내려가도 길은 보이지 않고 막막하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혼자가 아니고 동행이 있어서다.
보지 못했을 풍경, 알지 못했던 곳을 샅샅이 헤쳐가며 된비탈 길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걷는 길에 많은 생각이 스쳐 간다.
길을 잃고 30여 분 수직의 직벽을 미끄러지듯 내려와 만난 이끼 계곡! 길도 없는 곳을 30여 분 미끄러지듯 내려왔는데 집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오던 길을 다시 올라가야 할 것 같다며 하시길래 너무 힘든 길이어서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렇게 힘들게 내려온 길을 어떻게 다시 올라가느냐며 힘들어서 절대로 못 올라간다고 이끼 계곡을 건너 길도 없는 산등성을 헤치며 또 하나의 길을 내며 밀림 속으로 접어든다.
힘들다가도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처럼 꽃만 만나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반가웠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이런 마음의 여유가 드는 것도 든든한 일행의 힘일 것이다. 깊은 산중에 나무에 뿌리를 남기고 서식하는 초록의 이끼! 이끼와 버섯이 어울림 되어 사랑스럽다. 작은 것이지만 이런 걸로 인해 힘이 된다..
길을 잃은 지 1시간 30분쯤 됐을까 길도 없는 직벽의 숲을 오르면서 지칠 때로 지쳐 첫 번째 휴식을 취했다.
입대한 훈련병들이 이런 훈련을 3일 정도 연속으로 받으면 아마 힘들어서 자살 소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생각을 다 했을까?
계속 이어지는 직벽의 오름이라 어느 한 곳 평평한 곳이 없어 앉아서 도시락 먹을 장소도 없다.
이곳에서 10분 정도 얼음물로 갈증을 해소하고 걸으니 다시 힘이 나는 것 같다.
<나무 구렁이>
오래된 흔적으로 희미한 길이 있는 걸로 봐서 심마니들이 산삼을 캐러 다닌 흔적 같다.
심마니들이 길도 없는 숲을 오르고 내리며 산삼을 찾아 헤맸을 텐데 산삼이 비싼 이유가 바로 이래서였어.
여전히 아득한 높이에 체력이 저하되어 힘은 들지만 습관처럼 받아들이고 묵직해진 발걸음에 힘을 실어가며
가끔 억지웃음도 웃어가며 빽빽한 숲 속에서 파란 하늘이 드러나기만을 기대하며 소망을 가져본다.
그렇게 숲 속에 하루가 흘러간다.
능선이 가까워지면서 더욱 악화된 상황은 흙이 다져지지가 않아 한 발 앞으로 내딛으면 두 발 뒤로 미끄러지는 상황이 반복된다.
모든 건 끝이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한 발 한 발 걷다 보니 멀리 보이는 풍경도 눈앞에 지근거린다.
능선을 얼마 앞두고 전화가 수신되어 대장님과 통화를 했는데 정상을 지나 400m쯤에서 기다리고 계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2시간을 길도 없는 정글에서 숲을 헤치며 방황했던 시간!
만일 혼자였다면 어떡했고, 그리고 그곳에서 비를 만났으면 어쨌을까?
주마등처럼 스치는 고행의 시간이 비록 고생은 했지만 지나고 나니 모든 게 감사하다.
다시 웃으며 이 길 위에서 산행할 수 있는 게 꿈만 같다.
거친 자연 앞에 순수하게 도전하는 일은 자연과 맞서는 게 아니고 오히려 자신을 극복하는 정수를 가르쳐 주고 있다.
마치 지구의 비밀을 엿보며 걷는 듯한 세월의 결정체가 아닐까?
인간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오뚝 솟은 산을 보면 자연 앞에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가
오늘의 이 풍경이 시간이 지나면서 또 어떤 기억으로 새겨질까?
작은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 데려다 준 정상!
모든 걸 포기한 상태에서 지나쳤을 것 같은 정상을 만나니 왠지 덤으로 얻은 행운 같다.
이제 400m만 가면 일행을 만날 수 있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린다.
일행들이 지나갔을 조붓한 오솔길!!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일행들을 만날 수 있겠다는 안도감과 기쁨에 걸음이 가뿐하다.
이렇게 편안한 길이 있는 것을 공수부대 훈련생들이 훈련하듯 된 훈련을 하였다.
꽃이 그렇게도 좋을까?
꽃에 취해 길을 잃고도 꽃만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태연하게 나의 본성은 다시 드러난다.
내가 꽃을 좋아하는 것만큼 아마 꽃도 내가 좋지 않을까?
강훈련하고 난 후 먹는 밥맛!
내가 이 세상에서 태어나 이처럼 맛있는 밥은 처음인 것 같다.
대자연의 화폭에 아름다운 그림을 펼쳐 놓고 야생에서 즐기는 식사가 달콤하다.
자연에서의 성찬치고는 아마도 사치 이겠지?
덕항산 정상 하나만으로도 만족한데 환선봉까지 만나다니 이건 완전 보너스다.
마음 졸이며 고생은 좀 했지만, 오늘 산행은 체력 테스트 제대로 한 격이다.
내 체력이 강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강한 줄은 몰랐다.
조금 전만 해도 힘들었던 몸이 언제 그랬냐는 듯 날아갈 듯 가뿐하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얼마만의 해보는 우중산행인가?
우의를 꺼내 입고 빗방울 행진곡에 맞춰 걷는 걸음 또한 경쾌하다.
모든 게 정겹게 다가온다.
놓치고 싶지 않은 풍경을 렌즈에 담지 못함이 아쉬워 걸음이 무겁다.
<펌>
<펌>
하산길로 들어서면서 제2 전망대에 올라서니 멋진 조망이 펼쳐진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두고 어찌 그냥 떠날 수가 있을까?
내리는 빗줄기가 야속하기만 하다.
올라야만 만날 수 있는 귀한 것들이 이 길 위에 있다.
여정의 끝에서 만나는 풍경의 절정이 구름 너머 천상에도 이만한 절경은 없을 것 같다.
그 옛날 세상구경 내려온 신선들이 한가로이 앉아 세월을 낚았을 것 같다.
제2 전망대에 이어 제1 전망대!
다행히도 비가 그쳐 풍경을 담을 수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세상이 다 우리를 위해 열린 듯 초록의 싱그러움이 춤을 춘다.
비바람이 실어다 주는 초록 내음이 푸른 가지 속을 간지럽히며 기분 좋은 숨결을 내뱉는다.
선물 중에 가장 최고의 선물은 자연이 주는 풍광이다.
가릴 것 하나 없이 몰려드는 안개를 고스란히 맞고 서 있는 산!
바람이 흔들어도 안개가 숲을 가려도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는 산!
시시때대로 변하는 운무의 향연이 너울춤을 추고 탁 트인 조망에 원대한 기상을 느껴진다.
그것을 마음에 품고 삶을 길러내고 사람들을 넉넉히 채워줄 만한 풍요가 이 길 위에 있다.
불확실한 내일을 향해 확실한 오늘의 한 걸음을 내딛는 것 그것이 바로 산이 주는 지혜다.
자연의 오묘함이 참 경이롭다.
인간의 지능이 제아무리 뛰어난들 자연의 세계를 뛰어넘을 수가 있을까?
창조주 하나님만이 무한한 능력의 힘을 가진 능력자이시다.
무릎이 안 좋아 산행은 고사하고 사는 날까지 운동만이라도 하게 됐으면 했는데 이렇게 또다시 산행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고 꿈만 같다.
또 한 번의 동행 또 하나의 값진 추억과 풍경이 내 안에 행복으로 고스란히 스민다.
문득문득 돋아나는 그리움이 흐르는 곳에 친구 같은 산이 있어 행복하고 동행할 수 있는 이들이 있어 행복하다.
오늘도 산이라는 행복의 기둥을 세우고 산을 내려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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