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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향기

설악산 서북능선(첫째 날)

by 풀꽃* 2014. 2. 5.

♤설악산 서북능선(첫째 날)

언제:2013년 10월 4일(금요일)   날씨:맑고 쾌청한 전형적인 가을날씨

어디:설악산(1708m)

위치:강원도 인제. 양양

코스:한계령-한계령 삼거리- 끝청-중청 대피소-대청봉(첫째 날)

 

 

♤설악에서의 첫째 날

 

<들어가기 전>

매년 이맘때면 설악의 단풍이 그리워 단풍 소식이 전해지면 귀가 쫑긋해 진다. 

이번 가을엔 지리산 종주 계획이 있어 설악의 단풍은 접으려 했었는데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생각지도 않던 설악에 덥석 끼어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평일을 이용해 설악동 소공원에서 금강굴을 거쳐 공룡의 등줄기를 타고 천불동으로 하산하고 싶었는데 그건 나의 바람이다.

 

이번 설악산 산행은 계획된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을 던져 놓고 보니 마음은 벌써 설악의 품에 안겨 볼그레

단풍 물이 든다.

예쁜 꼬까옷 껴안고 설렜던 그 시절 같진 않아도 마음이 설렌다.

설악산에서도 가장 험난한 코스 공룡능선을 이틀 동안에 종주하려고 한다.

 

익숙한 등산로를 따라 그 거대한 빗장을 열고 그 품으로 들어선다.

설악은 품 안에 들기만 해도 절로 위안이 되는 세상사 부대끼던 마음마저 시원하게 씻겨주는 것 같다.

그런데 바쁘게 사는 건 인간만이 아니었다.

치열했던 날들을 지나 설악의 품에 들어서니 시나브로 깊어가는 가을을 본다.

휘양하게 빛나는 계절의 길목.

어느새 곁으로 가까이 다가온 가을은 깊은 숲 곳곳에서 눈을 맞추고 짙어진 가을향기에 이끌려 산자락에 드니 지난 여정을 반추하는 시간이다.

 

아침을 든든히 먹었는데도 허기가 진다.

점심 먹을 시간은 아직 멀었는데 무거운 배낭을 메고 갈 생각을 하니 오르기도 전에 힘이 빠진다.

산에 오른 지가 불과 채 20분도 안 돼 빵과 과일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그곳에서 먹던 모카 빵과 단감이 얼마나 맛있던지 아마 그 맛은 평생 잊질 못할 것 같다.

전국에서 가장 부지런하다는 설악산 단풍!!

이맘때에 설악의 단풍을 놓치고 싶은 산객이 있을까?

너나 할 것 없이 집을 나서 걸음걸음 밟히는 가을을 걷는다

가을 햇살 아래 얼굴 붉힌 그 모습이 꽃보다 곱다.

어느새 스며든 가을은 숲 속 구석구석을 환하게 빛내고 있었다.

거리의 가로수는 초록빛을 띠고 있어 집을 나설 땐 설악산 단풍이 좀 이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설악은 잠도 안 자고 산을 뒤척이며 오색빛깔 물들이는 펌핑 작업이 한창이다. 

 

봄에는 봄빛, 여름에는 여름빛으로 푸르던 설악은 이제 산등성을 타고 여명을 닮은 가을빛이다.

설악의 품은 그렇게 가을을 맞고 있다.

사방 어디를 보아도 사랑스러운 가을빛이다. 

 

 

 

이만큼 호사스러운 게 또 있을까?

가을바람 가르고 오른 설악의 단풍은 만산홍엽은 아니어도 내 영혼을 가을빛으로 물들이기에는 충분했다.

눈앞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마치 수채화를 보는 듯 서정적인 절경이 흐른다.

은은함을 안겨주는 설악의 풍경처럼 내 영혼도 볼그레 물들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걸음을 걸으며

설악의 품에서 나는 행복을 노래했다.

산의 품은 특별함이 없어도 안식으로 평온함을 준다.

계절이 숲에 빗질하고 색색으로 무르익은 숲 속엔 곁에 있던 사람마저 고운 물이 든다.

 

 

짧기에 더욱 찬란한 10월!!

바람과 햇살이 산등성을 타고 오색 빛 잔치를 펼친다.

가을 잔치에 초대해 준 설악이 고맙기 그지없다.

곱게 물든 풍경에 동화되어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넋이 나가 설악의 한 점이 되어 설악을 수놓는다.

 

능선이 가까울수록 단풍의 빛이 더 고와 걸음을 뗄 수가 없다.

아름다운 풍경에 푹 빠져 일행들도 떠나 보내고 생전 단풍구경 못 한 사람처럼 단풍과 눈맞춤 하며 밀어를 즐긴다.

혼자 남아 마음이 조급할 법도 할 텐데 여유가 생기는 건 산이 주는 넉넉함 때문일 것이다.

 

꿈과 소중한 인연까지 갖게 해준 산!!

산은 내게 마음의 고향 같고 올라도 올라도 늘 고맙고 그리운 존재다.

인생이 스승이란 말이 있듯이 산 역시 내겐 스승이다.

말이 산에서 더욱 실감이 난다.

그곳에서 침묵을 배우고, 느리게 사는 법을 배우고, 먼 길 가는 법을 배운다.

 

한계령 삼거리!!

설악의 풍경이 한눈에 펼쳐지는 그곳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점심상을 펼쳤다.

먹는 즐거움도 있지만 집채만 한 배낭이 가벼워지는 혜택을 주기에 일거양득의 기쁨이다.

산상에서 이렇게 호사스러운 성찬을 즐겨도 되는 것인지 그런 생각이 들만치 풍성한 산상 식탁이다.  

서북능선에서 바라보니 설악의 웅장한 몸매가 한눈에 들어온다.

설악의 수많은 바위봉우리들이 용트림을 하며 시선을 멈추게 한다. 

내일 저곳에 선다고 생각하니 몸에 전율이 느껴진다.

창조주께서 펼쳐 놓은 설악은 언제 봐도 감동이고 웅장함이다.  

 

오름길은 올라야 하기에 힘들고, 능선길은 질펀하게 깔린 돌이 있기에 힘들고, 하산길은 깎아지른 내리막길이기에 힘들다.

그러고 보면 산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힘든 여정이다.

아마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면 무겁다고 투정도 부리고, 멀다고 짜증도 부리겠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짓이니 힘들어도 그 여정이 기쁨으로 다가온다. 

목적이 있는 삶은 희망이 있고 즐거움과 기쁨이 있듯이 산행도 마찬가지다.

 

 

 

 

사방으로 막힘없이 펼쳐지는 바위봉우리의 파노라마.

능선 왼쪽으로 눈앞에 짜릿하게 이어지는 칼날능선은 마치 용의 이빨처럼 날카롭다는 용하장성 이다.

용아장성은 설악에서 험하기로 이름난 곳으로 입산금지 구간으로 되어있다.

가지 말라는 곳을 굳이 가는 산객과 가겠다는 산객을 지켜보는 감시원의 줄다리기가 팽팽한 곳이다. 

지난날 감시원을 피해 그곳에 발을 딛었던 그 희열이 아직도 내 안에서 감동이 인다.

 

능선길이 대부분 편안한 데 비해 서북릉 능선 길은 작은 바윗돌이 빼곡히 박혀 있어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로 긴장감을 갖게 한다.

서북릉 끝청!!

아치형의 나무 형태를 보면 이제부터 산으로 입문하는 기분이다.

세월에 깎이고 바람에 흔들려 쓰러질 법도 한데 여전히 꿋꿋하게 서 있는 걸 보면 마치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 사는 고사목 같다.

저 아치형 나무처럼 나 또한 산에서 오래오래 산의 노래를 부르고 푼데 예전 같지 않은 무릎에 괜스레 슬퍼진다.

지층에 파고든 화강암이 오랜 침식과 풍어의 세월을 거쳐 험준한 바위산이 된 설악!!. 

맛 닿은 걸음걸음마다 바위에게 인사를 건넨다.

능선 왼쪽으로 공룡능선과 용아장성이 위풍당당하게 자리해 있다.

불끈불끈 솟아오른 바위가 마치 남성의 근육과도 같이 살아있는 것처럼 생동감이 느껴진다.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기묘한 화강암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용아장성의 춤사위가 공룡능선에 눌려 조금은 나지막하게 아래로 내려다보이지만 마치 병풍을 둘러 놓은 듯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며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중청대피소!!

우리 일행이 숙박을 할 중청대피소다.

석양이 능선에 숨을 토해내며 빗질을 한다.

이곳에서 숙박하는 것이 두 번째인데 7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는 7월의 한여름이었는데 변화무쌍한 산악날씨로 강풍까지 동반해 마치 한겨울의 날씨를 방불케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고도가 높은데도 오늘은 10월치고는 설악 날씨가 믿기지 않을 만큼 포근하다.

해지기 전 대청봉에 올라 일몰을 보기 위해 숙소에 배낭을 내려놓고 대청봉으로 향했다.

 

 

                

낮이라 하기엔 어둡고 밤이라 하기엔 아직은 밝은 빛과 어둠이 함께하는 이 짧은 순간을 음미하면서

남한에서 세 번째로 높은 대청봉을 빠른 걸음으로 오른다.

지는 해라서 일몰이 붉게 물들더니 금세 어둑해진다.

부랴부랴 대청봉 표지석에서 사진을 찍고 서둘러 빠른 걸음으로 대청봉을 내려선다.

 

설악의 산상 기온이 올해는 이상 기온으로 포근해 대피소 앞 야외 평상에 앉아 헤드 렌턴 불빛에 실어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성찬을 허기진 배를 채우고 하루의 고단함을 벗고 잠 못 드는 설악에서의 하루를 지새운다.   

 

-2013년 10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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