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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 가을 새벽에 / 들꽃향기
뿌연 불빛 사이로 무언가 발에 챈다.
발에 느껴지는 감각이 돌멩이보다는 부드럽고
공보다는 단단하다.
허리를 굽혀 자세히 보니 모과였다.
지난밤 바람이 불더니 높은 가지에서 낙하한 모양이다.
야구공보다는 조금 작고 아기 주먹만 하다.
향기를 맡아 보니 향기롭다.
자그마한 모과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가 온몸에 번진다.
어둠 속 손바닥에 와 닿는 모과의 촉감이 맨지롬하니 참 좋다.
향기와 촉감이 좋아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옮겨가며 가을을 음미한다.
향기로운 모과차도 음미해 보고
열매로 가득한 풍성한 가을도 느껴본다.
땅에 떨어져 뒹구는 모과 하나에서도 이렇게 향기가 배어 있고
결실의 계절 가을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이를 어쩌지?
집에 돌아와 모과를 들여다보니 모과의 밑동이 금이 가고
깨지고 상처투성이다.
높은 가지에서 낙하하면서 난 상처다.
나는 모과의 아픔은 생각지도 않고
그저 향기만이 좋아 즐겼던 것이 괜스레 미안해진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작은 모과 하나로 인해
어스름 가을 새벽 행복한 아침이었다.
아직도 상처가 난 모과는 책상 위 컴퓨터 옆에서
내 영혼을 닮은 은은한 향기를 피워내며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어스름 가을 새벽에>
위 편지지에 글씨가 안 보이는 분들이 있어 다시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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