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라던 시절 같아서 옮겨온 그림입니다.
유년의 기억
서울 동작구 사당동이 나 자랄 때는 시골이었는데
시간이 흐름에 너무 급속도로 변해 믿기지 않을 만큼 변화가 됐다.
집은 사당동이었고 학교는 지금의 서초동 예술회관 앞이었는데
집과 학교와의 거리는 걸어서 한 시간 거리지만, 직선거리가 아니고
지금의 방배동 방향으로 산을 넘고 들을 지나 걸어 다니곤 했다.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개울물 수위가 높아져 건너질 못하고
과천에서 넘어오는 버스를 타고 동작동에서 내려 또 한 번의 버스를 타야 학교에 갈 수 있었다.
학교라야 한 학년이 두 개 반으로 나눠 오전 오후로 수업을 받았는데
장마철에 비라도 많이 오면 안전을 위해 지역마다 전 학년이 한데 모여 집으로 돌려보내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게 추억이 되고 정겹게 느껴지지만
그 시절 겨울은 지금의 겨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날씨도 추웠는데
이렇게 말하면 믿어지지 않겠지만, 제대로 된 신발 한 번 신어보지 못하고
고무신에 광목으로 지은 버선을 신고 다녔었다.
오전반 때는 등굣길에 곧장 학교로 향했지만
오후반 때는 등교 시간을 조금 일찍 나서 여유 있게 놀면서 가곤 했었다.
겨울이면 꽁꽁 언 얼음판에서 미끄럼을 지치곤 했는데
얼음이 깨지면 깨진 얼음 속으로 발이 푹 빠져 버선이 진흙으로
뒤범벅이 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가 버선을 갈아신고 학교에 가곤 했었다.
수업을 마치고 학교에서 돌아올 때면 산에 올라 봄물이 가득 오른 칡을 캐기도 하고
들판으로 다니며 딸기며 아카시아 순과 아카시아 꽃을 따먹으며
눈에 보이는 먹거리는 다 따먹으며 자랐다.
그 시절 농촌에서는 그런 것이 유일한 간식이었다.
가방 하나 변변한 것 없어 보자기에 책을 둘둘 말아 허리에 매고 다녔는데
아침 등굣길엔 그나마 괜찮은데 하굣길엔 책보 자기를 허리에 매고 달리면
알루미늄 도시락 안에 들어있는 숟가락과 젓가락 소리가 달그락거리는 게
얼마나 시끄럽고 요란스런 지 지금도 그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가방이라면 누런 광목을 양잿물을 넣고 뽀얗게 삶아
언니가 광목천에 십자수를 놓아 가방을 만들어 주었던 게 전부다.
도시락을 싸는 날이면 가방에 김칫국물이 뻘겋게 흘러 가방 밑이
김칫국물 범벅이 되어 빨지 않으면 안 되었다.
김칫국물 배인 가방을 양잿물을 넣고 뽀얗게 삶아서 들면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마음마저 하얗게 표백된 것 같아 학교 가는 걸음이 사뿐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전학 온 아이들이 한 반에 두세 명 정도 있었는데
유독 그 아이들은 가죽으로 된 책가방을 메고 다녔는데
가방 뒤에 그려진 그림이 여자아이는 무궁화 꽃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남자아이는 호랑이 그림 아니면 말이 그려져 있었는데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면 그 가방을 돌아가며 서로 메어보곤 했다.
그리고 시험이 있는 날이면 시험공부를 한다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학교 뒤에 있는 산으로 올라가 뚝 뚝 떨어져 암기 과목을 외우곤 했었다.
어느 때는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갖고 산 아래 계곡에 앉아 먹곤 했는데
짓궂은 남학생은 개구리와 심지어는 뱀을 잡아 몰래
여자아이 도시락 속에 넣어 놀라게 한 적도 있었다.
나이 들어 생각하니 그때는 그저 평범한 일상이었는데
그때 그 시절 추억이 정겹고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지금 이 순간도 더 나이 들어 세월이 흐르면 그리움의 한 조각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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