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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숲

유년의 명절

by 풀꽃* 2015. 2. 13.

 

 

유년의 명절

 

어린 시절에는 명절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는데

결혼하고 가정을 갖고부터는  명절을 앞두고 명절에 대한 부담으로  마음이 무겁다.

지금의 명절은 예전 내가 자랄 때처럼 힘들여 준비하는 것도 아닌데

그만큼 마음이 나약해진 것 같다.

 

나 어릴 적엔 명절이 돌아오면 명절을 앞두고 술 담그는 일에서부터 시작해 

콩을 갈아 두부도 집에서 직접 만들고, 인절미며 수수부꾸미와 찹쌀 부꾸미, 

식혜, 수정과를 담그며 명절 준비를 하곤 했다.

지금처럼 주방문화가 갖춰져 있는 것도 아니고 장작으로 불을 지펴서 음식을 만들곤 했다. 

 

술을 담그기 위해 시루에 고두밥을 지어 둥근 멍석에 펼쳐 놓으면 

고슬고슬한 고두밥이 얼마나 고소하고 맛있는지 엄마 몰래 드나들며

얼마나 많이 집어 먹었는지 아련한 추억으로 다가온다.

식은 고두밥에 집에서 직접 만든 누룩 가루와 이스트를 넣고 고두밥과 골고루 섞어

항아리에 옮겨 넣고 아랫목에다 이불을 푹 뒤집어씌워 적당한 온도로 며칠간 숙성시키면 

술이 되는데 엄마는 숙성된 술을 부엌에서 거르곤 하셨는데

술을 거를 때  엄마는 술맛도 모르는 우리에게 맛을 보라며 주시곤 했었다.

술은 주로 막걸리와 약주, 동동주를 만드셨는데 막걸리에 설탕을 타서 먹으면 

얼마나 맛있던지 취하는 줄도 모르고 주는 대로 날름날름 받아먹곤 했다.

 

그리고 두부를 할 때면 전날 콩을 물에 불려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새벽 4시부터 일어나 두 분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앉아 콩을 맷돌에 갈아 가지곤

간 콩을 가마솥에 넣고  불을 집혀 끓여 두부를 만들곤 하셨다.

콩 간 걸 애벌 끓여서 자루에 걸러 비지를 걸러내고 다시 가마솥에 넣고 한소끔 끓여

간수를 넣으면 콩물이 엉기기 시작하는데 두부가 완성되기 전 그게 바로 순두부이다.

그때 순두부의 맛은 지금 마트에서 파는 순두부와는 전혀 다른 맛으로 

모양부터가 몽골몽골 한 게 담백하면서 고소한 게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었다.

두부가 완성되려면 몽골몽골 엉긴 것을 광주리에 삼베보자기를 깔고 퍼부어 

삼베보자기로 잘 여민 다음 무거운 맷돌을 올려놓으면 물이 빠지면서 두부가 완성된다.

그때는 지금처럼 냉장고도 없어서 두부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

큰 그릇에 물을 붓고 그곳에 두부를 넣어 보관했었다. 

 

그리고 인절미를 할 때면 찹쌀을 불려 시루에 쪄서 돌절구에 찧어서

인절미를 만들곤 했는데 밥알이 조금씩 씹히는 게 요즘 방앗간에서 하는

인절미와는 비교가 안 될 만치 차질면서 쫀득쫀득하고 맛있었다.

 

수수부꾸미와 찹쌀 부꾸미, 그리고 녹두전을 할 때도 무쇠솥 뚜껑을 엎어 놓고 불을 때어

만들었는데 참깨를 털고 난  참깨대로 불을 때면 연기도 안 나고 부칠 때 제격이었다.

 

그리고 식혜와 수정과를 만들어 작은 항아리나 질그릇으로 된 동이에 담아

광이나 대청마루에 보관하면 위에는 살짝 살얼음이 얼어 지금의 냉장고에

넣어 놓고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지금은 떡국 떡도 썰어 놓은 것을 사지만 그때는 쌀을 물에 담가 불려서 

방앗간에서 떡을 뽑아 떡이 적당히 굳으면  썰어서  떡국을 끓였다.

 

그리고 그 시절 시골에선 설날에 웃어른들을 일일이 찾아뵙고 세배를 하러 다녔는데

그 시절만 해도 조상이 돌아가면 길게는 3년 동안 상청을 차려 놓고 모셨는데

세배도 우선순위가 있듯 돌아가신 조상님을 모신 집을 우선으로 세배하러 다녔다.

동네 어른들이 부모님께 세배를 드리러 오면 우리는 그 어른들께 세배를 하곤 했는데

그때 어른들이 세뱃돈을 주면 우리는 그 돈이 구겨질까 봐 다리미로 다려서

책갈피에 보관하곤 했었다. 

 

그리고 세배를 하러 온 손님에겐 음식을 대접하거나 술상을 차려 대접했는데

미리 만들어 놓은 인절미와 부꾸미 그리고 녹두전을 화롯불에 석쇠를 얹어 노릇노릇하게 구워

손님상에 올리고 식혜와 수정과, 그리고  집에서 만든 두부와 술이 전부였고

다과로는 집에서 만든 다식과 강정이었다. 

그리고 명절이 지금처럼 명절 연휴로 끝나는 게 아니고 정월 대보름까지

명절 분위기로 이어져 어른이 계신 집은 계속 손님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시절은 한복도 엄마가 손수 지어 주셨는데 설이 돌아오면

엄마는 지어 놓은 한복을 이슬을 맞혀 다리려고 대문 밖 빨랫줄에 널면서

늘 하시는 말씀이 딸만 다섯이라 남부끄럽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명절은 이렇듯이 모든 걸 힘들게 하나하나 만들며 설을 준비했는데 

그때 비하면 지금의 명절은 문명이 발달해 아무것도 아닌데 설을 앞두고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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