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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숲

설 뒷이야기

by 풀꽃* 2015. 2. 23.

 

 

 

  설 뒷이야기

 

  올해로 결혼한 지가 39년째이고 아들이 결혼한 지도 어언 9년이 되어온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설 준비는 내 몫이었는데 이번 설은 며느리의 배려로

  아들 집에서 준비하기로 했다. 

 

  그런데 설 이틀 전 며느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며느리는 기분 좋은 목소리로 어머니 저희 지금 아이들 데리고 놀러 가고 있어요. 

  오빠 친구가 리조트 이용권 있다고 해서 오늘 갔다가 내일 오후에 돌아오게 될 것 같아요.

  나는 전화를 받는 순간 황당해서 장은 봐놨어? 했더니 어제 오빠하고 대충 봐 놨어요.  

  어머니!  저희가 내일 그곳에서 출발할 때 전화 드릴 테니까 집에서 그때 출발하세요.

  그래 그럼 조심해서 잘 다녀와 그렇게 말을 하곤 전화를 끊었다. 

 

  여느 며느리 같으면 설을 코앞에 두고 놀러 가는 게 불편해서 시어머니한테 말을 안 하고

  슬며시 다녀올 텐데 나는 꾸밈없이 솔직하게 말하는 며느리의 그런 모습이 참 예쁘다. 

  어떻게 생각하면 며느리의 그런 모습이 자극이 될 수도 있지만

  며느리가 시어머니께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시어머니와 벽이 없기 때문이다.   

 

  며느리가 직장을 갖고 있어 아이들 양육 문제로 홀로 계신 친정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데

  친정엄마께선 이번 설에도 딸이 리조트로 놀러 간 사이 설에 사용하라고

  전(녹두전, 명태전, 표고전, 동그랑땡)과 불고기(광양식 소 불고기)를 재어 놓고

  설을 쇠러 남동생 집으로 가셨다.

 

  설 전날 리조트로 놀러 간 며느리로부터 1시 20분 출발한다는 전화를 받고 

  4시쯤에 아들 집에 도착했는데 아들과 며느리는 집에 도착해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 사실은 오늘 저녁은 피곤해서 대부도 가서 바지락 칼국수 먹으려고 했던 건데

  비빔밥 하려고 재료 준비해서 지금 비빔밥 준비하는 거에요.

  주방에서 음식을 할 때면 아들은 주방장이 되고 며느리는 언제나 도움이 역할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며느리는 외동딸로 자란 데다 결혼하고도 직장을 갖고 있어

  친정엄마가 가사를 도맡아 주셔서 음식 만드는 건 좀 서투른 편이다.

  반면에 아들은 음식을 검색해서 만들긴 하지만 음식을 하면 전문가 못지 않게 훌륭하게 만든다.

  저녁을 먹고 아들과 며느리는 늦은 시간까지 음식을 준비하는데 나는 감기몸살 기운이 있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설날 아침 며느리와 나만 집에 남고, 모두 큰집으로 차례를 지내러 갔다.

  여느 때처럼 설을 집에서 쇠면 지금쯤 음식 준비로 분주할 텐데 

  이번 설은 며느리의 배려로 더함이 없이 여유 있는 설을 보내고 있다.

  며느리와 나는 느긋하게 떡국을 끓여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 만들 재료를 손질하였다. 

 

  설날 오후 아들이 큰집에서 돌아와 며느리와 본격적으로 음식 준비에 들어갔다.

  주방에서 아들과 며느리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준비하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 

  부모에겐 그게 바로 행복인 것 같다. 

  음식도 간단하게 조금만 하라고 했더니 그동안 시어머니가 해오던 상차림을  봐와서인지

  설 상차림으로 손색없이 준비했다

  사람은 섬김을 받을 때보다 섬길 때 기쁨이 있듯 이번 설은 부모님을 편하게 모시게 되어 기쁜지

  아들과 며느리는 늦은 시간까지 일하면서도 기분 좋은 표정이다. 

 

  직장을 자진 며느리가 손님상을 준비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설 다음 날 두 시누이 가족까지 훌륭한 상차림으로 접대하면서 힘든 기색도 없이

  아들과 며느리는 연실 기분 좋은 표정이다.

  나는 나 사는 동안 설 준비는 내 몫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 설은 뜻하지 않게 며느리의 배려로 내 생애 가장 편하고 행복한 명절을 보냈다.

 

  희수야 설 준비하느라 고생 많았어!  

  그 은혜 내 안에 영원히 행복으로 기억될 것 같애.

  희수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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