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을 어느 정도 한 사람은 영남알프스 구간에 있는 샘물산장을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가을(2006년 9월 29~30일) 일행 9명과 함께 영남알프스 종주를 했다.
교회에서 저녁 6시에 출발해 밤 11시쯤 운문산 입구 청림산장에 도착해 산장에서 1박을 하고
영남알프스 종주 첫째 날 석골사에서 운문산을 올랐는데 운문산 정상에 올라 좌측으로 가야 가지산인데
길을 잘못 들어 우측으로 들어서 다시 산행 기점인 원점으로 돌아와 운문산을 다시 오르게 되는
고생담이 있었다.
다시 운문산을 올라 가지산, 능동산 산행을 마치고
해 질 녘 나를 포함한 9명의 일행과 능동산 끝나는 지점에서 조금 가면
천왕산이 시작되는 기점에 개인이 운영하는 허름한 샘물산장에 사전예약을 하고 숙박을 하게 됐다.
그곳은 숙박과 숙식까지 할 수 있는 곳인데 산장지기의 넉넉한 인심과 입담 또한 좋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휴식을 가졌다.
초가을 산정의 밤은 늦가을 기온으로 차갑게 느껴졌다.
까만 밤 산장 밖은 바람에 억새의 휘날림이 고요를 깨우고
가을밤 높은 하늘 빼곡히 수놓은 별빛은 금세라도 억새밭에 쏟아질 것 같았다.
화장실을 가려고 위치를 물었더니 산장지기가 하는 말이 달걀귀신이 나오니까 등불을 가지고 가라신다.
그 소리를 듣고 혼자서는 무서워 못 가고 권사님과 둘이 갔는데 화장실이 재래식으로 되어 있는데
뒤에서 누가 끌어당기는 듯 정말 달걀귀신이 나올 것만 같았다.
맘씨 좋은 산장지기는 우리의 피로를 풀어 주려고 장작을 짚여 방에 불을 때어 주었는데
불을 얼마나 많이 짚였는지 방바닥에 바베큐를 해도 될 만치 뜨거웠다.
방이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는데 방 하나는 남자 집사님들이 사용하고
방 하나엔 권사님과 내가 사용했는데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방바닥이 뜨거워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방바닥이 뜨거운 것도 뜨거운 거지만 옆방에서 들려오는 남자들의 코 고는 소리가 요란해
권사님과 나는 잠을 못 자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코 고는 소리도 어쩜 그렇게 다양한지 음률로 치면 소프라노, 알토, 베이스,
여러 파트로 나뉘어 코를 고는 소리가 고요한 샘물산장의 적막을 깨고
산장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다음 날 아침 잠을 자지 못해 입맛은 없었으나 손맛 좋은 산장 아주머니의
상차림에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다시 산행길에 나섰다.
앞으로 가야 할 산들은 천왕산, 재약산, 신불산, 간월산인데
이른 아침 이슬 내린 산길을 따라 천왕산으로 들어서는 기분은 얼마나 상쾌하던지
전날 잠 못 잔 게 무색할 만치 내딛는 걸음엔 앙큼스런 힘이 실려있다.
천왕산에서 일출을 맞이하고 재약산을 거쳐 신불산, 간월산을 끝으로 산행을 마치고
언양 온천지대에 가서 그동안의 피로를 말끔히 씻고 집으로 향했다.
이렇게 해서 운문산(1188m) 가지산(1240m) 능동산(982m) 천왕산(1189m) 재약산(1189m) 신불산(1208m) 간월산(1083m)
7개 산 영남알프스 종주를 마쳤다.
우리는 지금도 만나면 그때의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에 젖는다.
추억은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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