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2008년10월4일(토요일) 날씨:맑음
어디:설악산 서북능선
위치:강원도 인제
코스:한계령-한계삼거리-귀떼기청봉-대승령-장수대(산행시간:8시간30분)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나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 ~ 바람같이 ~ ~살다가 가라하네.....♪♩♬~ ~♩♬♪ ~ ~ 우리가 산에 가는 이유다...
늘 이맘때 쯤이면 설악의 한자락이 그리움으로 다가서게 된다.
옅은 안개가 낮게 드리운.. 아직 잠이 덜 깬 아이같은 모습이다.
오늘도 따가운 가을햇살 일듯 싶다....
하늘 표정이 예쁜 날...
몇번을 다녀온 곳이긴 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서는 곳이기에 설렘과 기대감속에서 산행은 시작된다.
뿌연 하늘에 걸터앉은 안개도 짐을 꾸린다.
하늘은 파랗게 저 멀리 올라가 있고 여기저기 조각조각 떠 있는 하얀 구름은 눈이부시다.
바위틈 기슭에 빼꼼히 고개들고 미소한번 띄워주던 하얀 구절초가 단풍에 가리워 서럽다고 울고있다.
자고나면 저만치 달려오는 단풍의 물결!! 계절이 얼굴을 바꾸더니 산의 색깔도 바꼈다.
이젠 눈감고도 훤하게 그려지는 서북능선.....
가을은 벌써 가슴을 파고드는데 내 삶의 나이테는 자꾸 늘어가고 ...예전 같지 않은 체력이 걱정도 된다.
왜 설악의 단풍을 이야기 하던가?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 동화에 그런게 있었다. 못된 마음을 가진 왕비가 거울을 보며 매일 이렇게 물었다."거울아 거울아 이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어둠이 지나고 날이 밝아오면 드러나는 서로의 모습에 반한 연봉들.....용아릉은 화채릉에게 ~ ~ 공룡은 서북릉에게 ~ ~ 이렇게 묻지 않을까?..." "넌 왜 그렇게 멋있니?" "넌 왜 그렇게 아름다우니?" 도란도란 그들의 이야기가 들리는 듯 하다.
아직 단풍이 이르지 않을까? 란 생각은 나만의 생각이었다.
산등성 가득 빨래널듯 펼쳐진 오색 단풍...그곳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찬란하게 아름다웠다.
오랜 세월을 함께 견뎌온 자연스런 풍광들은 서성이는 바람에 몸을 맡긴채 오색 물들이기에 바쁘다.
점점 다가서는 하늘과 점점 멀어지는 아랫세상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며 까탈스러운 험로에 주의가 필요로 한다.
언제나 어른이 되길 거부하는 피터팬 처럼 뛰고..날고..주저앉아도...세월과 함께 잠재워진 유년의 기억은 기억속에서만 존재할뿐...현실에선?" 비록 건강한 장정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버텨가며 산을 오르는 오늘이 있기에 그져 행복하기만 하다.
오늘도 산길을 걸으면서 자연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름다운 가을...아름다운 산자락에서 가을색으로 물들어가는 산하를 아무데나 정말 아무데로나 날고 싶다. 지금 이순간 만큼은 날개를 달고 싶다.
물감으로 흉내낼 수 없는 색으로 채색되어 지는 그 광경은 천지창조란 그림으로 내 앞에 펼쳐지고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오묘한 색으로 채색되어 줄을 잇는다. 마치 천상을 걷는 듯한 아름다움에 착각을 갖아본다.
이제 막 가을빛에 물들어가는 관목들과 화려하진 않지만 군데군데 마중나온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꽃길을 열어준다.
계절의 순환기에 끄트머리에서 야위워가는 그들의 뒷모습도 언젠가는 추억 처럼 이야기 할 희미한 삽화로 끼워 놓는다.
어느새 말끔히 화장을 마친 오색빛깔의 숲은 숲밖 세상과의 눈맞춤을 용서치 않으며 아름다움을 풀어 놓는다.
능선길을 따라 한낮의 더운김 등에 지고 올라선 귀떼기청봉 하늘엔 오색 바람이 실어다준 오색향기가 가득하고, 머리꼭대기에 걸린 햇살은 실핏줄 처럼 이어진 산길을 속속들이 파고들어 단풍을 물들인다. 여기저기 시작된 가을서곡의 은은함속에서 흘러나오는 곡조가 가을을 노래한다.
늘 그러하듯...조망이 시원하게 터진 이런 곳에 서면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욕심 때문에 선뜻 돌아서지를 못한다.
좌측으로는 점봉산과 가리봉이...우측으로는 용아장성과 공룡능선이 웅장함을 늘어 놓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색깔로 설악을 물들인 그들은 설악의 가을 보석임이 틀림없다.
형형색색의 단풍...그리고 기암절벽이 병풍을 치듯 늘어서고 파아란 하늘과 하얀 뭉개구름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진다.
시리도록 아름다운 가을 서정은 하루가 다르게 깊어 가고 있다.
그곳에 서서 바라보는 산하는 그 어떤 유희로도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되고 환희가 되는 시간들이다. 그 기쁨과 감동을 밟고 지나가는 발길이 그져 감사할 뿐이다.
아무리 햝아 먹어도 줄어들 줄 모르는 마법에 걸린 달콤한 솜사탕이었다면 참 좋겠지만...어느 순간이 지나면 이 아름다움도 추억속 한 장면으로 자릴할께다.
세월의 흐름 때문일까? 지리하게 깔아 놓은 능선 길은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질 않는다.
멈춰버린 리듬감을 찾아 걸어보지만 다리는 천근만근 쉴자릴 요구한다.
하늘에서 휄기가 나른다.
지난해 용아장성 산행에서도 그랬듯이 통제구간을 단속하는 휄기려니 했더니 바로 앞에 휄기가 착륙해 등산객을 구조한다.
넘어져서 손목 골절인 모양이다.
잠시도 방심할 수 없는 안전사고!! 그들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고 나의 모습이 그들의 모습이다.
모두에게 몸은 거느려야 할 대상이 아닌 얼르고 달래며 오랜 세월 함께 가야할 동지 같은 존재이다.
산길에서 주목나무 한 그루를 만났다. 이리저리 저 가고픈대로 몸을 부풀린 주목의 몸통이 경이롭다. 천년의 향기 늘 한가지로 산을 살리는 주목의 생명력에 또 한번 놀랐다. 한 면은 움푹파이고 다른 한 면은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던 주목!! 몇년전에도 그 모습이었는데 아직도 변함없이 능선길의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다.
나무의 집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산을 품듯 주목의 품은 산의 품보다 더 넓게 여겨진다.
단풍이 온통 붉다고 예뿐건 아닌것 같다. 바위와 어우러짐이 자연이 보여주는 최고의 오케스트라 인것 같다.
산 전체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은은한 가을 산색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이 탄성이 터져나올 만큼 아름답다.
긴 능선길에 지루함도 길들여진듯 ~ ~ 다리의 고통도 길들여진듯 ~ ~ 걷다보니 눈 앞에 대승령의 이정표가 우뚝 서있다.
정말로 먼 거리다...여기까지 오면서 정말로 힘들었었다.
한걸음도 아끼듯...물도,과일도 대장님의 도움으로 전달받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힘은 들었어도 지쳐있는 얼굴에선 희미한 미소가 보인다.
저녁해는 늬엿늬엿 그만의 휴식을 위해 꼬리를 내리고 있다.
우리들은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할때 "원없이"란 말을 많이 쓴다.
원없이 걷고 ~ ~ 원없이 즐겼던 설악 서북능선!!
이젠 버릴것도 ~ ~ 줄것도 ~ ~ 남아있지 않은 내 안에 있던 모든 에너지 남김없이 다 쓰고 난후의 가벼움에 대하여...깨긋함에 대하여...편안함에 대하여...홀가분함이 내려앉는다.
오늘이라는 시간속에 갇힌 우리들의 거친숨과 짜디잔 땀에 묻어난 일상에는 세상에서 찌든 어지러움과 그 모든것...가슴 넓은 설악에 다 벗어놓고 한결 차분하고 한결 넉넉한 마음으로 가르는 귀가길이 힘은 들었지만 그져 행복하기만 하다.
이 힘듬도 내일이면 지우개로 슥슥 지워가며 다시 산길을 찾을것이다...
주님이 계셔서 행복하고 산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주신 그 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2008년10월6일 들꽃향기..........
'숲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활의 기쁨(지리산) (0) | 2009.09.30 |
---|---|
긴 터널을 빠져나와 행복했던 날(가리왕산) (0) | 2009.08.17 |
병풍속의 산수화를 보는 듯한 청량산 (0) | 2008.09.30 |
7일간의 외출(허굴산) (0) | 2008.09.26 |
7일간의 외출(도명산) (0) | 2008.09.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