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휴가
들꽃들이 긴 겨울을 보내고 볕 드는 날만 기다리듯이 이 시간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특별함이 없어도 공기 좋은 곳에서 자연과 벗 삼아 2년 차 되는 친구 같은 여동생과 지내는
시간이 내겐 여름만 되면 유일한 낙이었다.
남편의 배려로 집을 떠나 긴 시간 일상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내겐 또 다른 즐거움이고
안식이다.
내가 매년 여름만 되면 동생 집을 찾는 이유도 긴 시간을 내 집처럼 편안하게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제부와 나는 1년 차로 제부가 한 살 더 많지만, 동생과 그렇듯이 제부와도 오랜 시간
허물없이 지내왔기 때문이다.
내가 산을 좋아하게 된 이유도 제부의 영향이 크다.
오래전 내가 몸이 아파 동생 집에 요양하고 있을 때 산을 좋아하는 제부와 운동 삼아
산을 오르며 산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나도 모르게 산을 동경하게 되었다.
그 후로 가끔 동생 집을 찾게 되면 제부는 귀한 손님이 오면 가장 좋은 것을 접대하듯
산으로 초대하곤 했었다.
동생 내외와 이 산 저 산을 오르며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보며 동경했기에 만나면 나누는
이야기조차도 산 이야기로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었다.
그러던 제부가 어느 날인가부터 자전거를 즐기더니 요즘은 그 마력에 푹 빠져 시간만 나면
유니폼을 멋지게 차려입고 자전거 여행을 즐기고 있다. 그래서 이번 휴가는 제부와 제대로 된
산행 한 번을 못하고 답사차 산막이 옛길 건너편에 있는 둘레길만 가볍게 산책했다.
그래도 그곳에 있으면서 알람 대신 닭 우는 소리에 일어나 화양동 계곡 산책로를 따라 신선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산책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 전원의 평화로운 풍경을 벗 삼아 하루를
보내곤 했다.
집안 어디에서 내다봐도 창문 너머로 온통 초록의 싱그러움이 출렁이는 풍경을 바라 보다 보면
마음에 평온이 깃드는 게 힐링의 시간이 된다.
전원생활을 한다는 게 우리가 그리는 낭만만이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 눈만 뜨면 문안 인사 하듯 텃밭에 나가 풀을 뽑아야 하고 정원 잔디도
관리해야 하고 일주일에 두 번 여가 생활도 즐기면서 바쁜 일상이 이어진다.
그곳에 있어보니까 한주가 쉴 새 없이 분주하게 지나간다.
전원생활이 좋긴 하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다 좋아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사람은 저마다 좋아하는 것을 할 때 행복을 느끼기에 각자 좋아하는 것을 찾아 나서는 것
같다.
동생이 전원생활을 시작하면서 바뀐 게 있다면 아침 식탁에 밥 대신 텃밭에서 가꾼 고구마와
감자 그리고 토마토를 살짝 익혀 식탁에 올리고 냉동실에 저장해 놨던 옥수수와 견과류, 우유
그 밖의 과일 등을 아침 식사 대용으로 하고 있다.
그곳에 있다 보니 나도 그 문화에 길들어 복잡한 도시에 올라가 살 생각을 하니 생각만 해도 동생이 전원생활을 하기 전 청주에 살았었는데 이곳으로 들어오니 공기는 좋지만, 교통이 안 좋아 나 혼자서는 발이 묶여 자유롭지 못해 한편으로는 불편함도 있다. 전에 동생이 청주에 있을 때는 아는 지인들이 그곳에 여럿 있어 동생 집에 가면 지인들과 만남도 갖곤 했었는데 지금은 교통도 불편하고 먼 거리라서 아쉬움도 있다. 집만 나오면 시간이 어찌나 빠르게 흐르는지 9박 10일의 시간이 눈 깜작할 사이 지나고 집에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니 낯선 곳에 가는 듯 마음이 다시 무거워진다. 낯선 곳에서 익숙해진다는 것이 하루 이틀 적응하다 보면 금세 그곳에 익숙해져 오랜 시간 자리했던 곳도 다시 낯설어지는 게 우리의 삶인 것 같다.
지나고 보니 올 들어 가장 더운 날 혼자서 미동산 수목원을 찾았을 때 길을 잘못 들어 고생했던
일상도 그리움으로 다가오고 새벽을 가르며 맑은 공기 마시면서 화양동 계곡 산책하던 시간도
더없는 그리움으로 자리한다.
내가 집을 떠나 긴 시간 머물 수 있는 곳이 있어 감사하고, 그곳에서 내 집처럼 편한 쉼을 가질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무엇보다 감사한 건 편히 지내다 올수록 배려해 준 남편에게
감사하다.
동생 집에서 9박 10일을 보내고 올라와 3 일 후 또 4박 5일 하기선교를 다녀왔더니 이번
여름은 집보다는 밖에서 보낸 시간이 많아 그러는 사이 여름도 스멀스멀 막바지에 달하고
가을로 걸어가고 있다.
소박한 휴가긴 했지만, 그 시간이 그리워 이 여름이 채 가기도 전에 일 년 후 다시 맞게 될
여름이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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