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알을 깨고 나오고,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부수어야 한다.
그러므로 세계는 깨트려야 하고, 알은 세계다.
악은 피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지만
악과 대화하고, 악인(惡人) 안에서도 좋은 점을 찾고
악에 대해 속속들이 파악한 뒤에야
우리는 비로소 악의 그림자에 짓눌리지 않을 힘을 얻을 것이다.
데미안은 그 사악한 그림자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자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절대적인 사랑은 세월에 마모되어 서서히 식어버릴 수도 있지만
하지만 그로 인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 사실만큼은 사랑이 끝나도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으로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 어떤 아픈 사랑도 결국에는 자신을 위한 축복으로 남게 된다.
사랑은 소멸해도, 사랑으로 변화한 나 자신은 남기 때문이다.
싱클레어는 지척에 있는 에바 부인의 집을 찾아가지 않지만
그녀를 만나는 것만큼이나 그녀를 상상하는 일이 행복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도 빛이 바래지 않는 카리스마는
누군가를 휘어잡아 지배하는 강제력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아주 천천히 바꾸는 부드러운 영향력이다.
데미안은 사악하고 추하고 옳지 못한 "세계의 나머지 반쪽"
또한 인간세계의 소중한 진실임을 가르쳐준다.
데마안은 신에게 예배를 드린다면 악마에게도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충격적인 메시지로 온실의 화초처럼 자란 싱클레어를 놀라게 한다.
싱클레어는 점점 더 길어지는 "헤어짐" 속에서 홀로 넘어지고 부딪히며
데미안이 던진 인생의 화두를 스스로 풀어가는 방식을 배우게 된다.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함께 있는 시간, 에바 부인과 함께 있는 시간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싱클레어는 홀로 남은 시간 동안 데미안과 에바 부인의 메시지를 곱씹으며
스스로 해답을 찾으며 애썼다.
우리는 혜성처럼 갑자기 나타날 톱스타 스승을 찾을 것이 아니라
스승을 맞이할 만한 그릇이 되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위대한 스승에게 걸맞은 존재가 되기 위해 자기라는 그릇을 갈고 닦는
미숙한 청년의 고뇌야말로 데미안의 숨은 매력이다.
스승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의 특징은
지나치게 자신의 취향을 내세운다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은 싫어,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싫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무엇도 제대로 좋아할 수 없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 수 없다.
자신의 공감 능력을 키울 생각은 하지 않은 채 남 탓만 한다면
위대한 스승이 눈앞에서 손을 내밀어도 그 손길의 따뜻함을 알아볼 수 없다.
나 자신의 선악 미추와 온전히 대면할 수 있을 때 도피하지 않고,
외면하지 않고, 자기 내면의 성스러움을 끌어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아름다운 타인 또한 만날 수 있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두려웠지만, 그 두려움을 감당했다.
결코 만만치 않은 스승인 데미안의 위대함을 받아들이고
그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스스로 커지는 길, 스스로 깊어지는 길을 택한 것이다.
"헤세로 가는 길"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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