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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숲

설 단상

by 풀꽃* 2024. 2. 16.

 

 

숙제처럼 다가오는 설(洩)이 해가 거듭될수록 마음이 무겁게 느껴진다.

설을 앞두고 계획을 세워보지만 마음만 앞서고 열심히 해도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아 일이 뒤처진다.

일을 즐겨하는 편이라 설이 돌아오면 길든 습관대로 카펫과 소파 덮개, 침구류를 세탁하는데

카펫은 윗면이 면사로 된 아이보리색이라 세탁기에 돌리면 깨끗이 세탁이 안 될 것 같아

매번 솔로 문질러가며 세탁을 하는데, 지난 추석에 세탁을 한 카펫은 깨끗해서 세탁을 안 해도 되는데

명절 때면 매번 세탁을 해서 그냥 있으려니 마음이 개운치 않아 

이번에는 솔로 문지르지 않고 세제에 담갔다가 발로 밟아 빠니까 한결 수월하다.

카펫만 손세탁을 한 게 아니고 침구류도 모두 세제에 담갔다 발로 밟아 빨았다.

카펫과 침구류만 세탁해도 명절 준비 30%는 끝난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볍다.

 

명절이면 햇김치를 담그기에 이틀에 걸쳐 배추포기김치와 열무김치, 오이소박이, 백김치를 끝냈다.

배추 가격은 평소와 거의 같은데, 열무, 얼갈이, 오이 가격은 금값이다.

김치까지 끝내 놓으니까 명절준비 50%는 끝난 것 같다. 

사실 우리 집 식단은 밥은 하루 한 끼 저녁에만 먹기에 김치도 얼마 안 먹는데

명절에 먹고 남은 김치는 자녀들 갈 때 나눠주려고 넉넉히 담갔다.

 

그리고 명절 3일 전에는 새우장과 식혜를 했다.

새우는 소래습지 출사 갔다가 소래포구 어시장에서 대하 3kg 사서 냉동실에 얼려 놓고 

엿기름은 한주 전 주일 예배를 드리고 먼저 살던 곳 재래시장에 들러 사다 났기에

수요일 밤에 엿기름을 걸러 앉혀 났다가 목요일 새벽 업소형 대형밥솥에 밥을 지어 식혜를 앉혀놓고 

남편과 함께 먼저 살던 곳 재래시장 가서 장을 봐 오는데, 구역장 단톡방에 장례소식이 올라왔다.

2월 5일(월요일)에도 교구에 장례가 나서 장례예배를 다녀왔는데

이번엔(목, 금, 토) 세 번(위로예배, 입관예배, 발인예배)의 장례예배가 올라왔다.

지금까지 장례예배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모두 참석했는데

이번엔 명절음식을 준비해야 하기에 장례예배에 참석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지역장님께 연락을 드렸다.

명절 연휴에 장례예배를 세 번이나 드린다고 생각하니까 현실 같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장례예배를 은혜 가운데 마쳐서 감사하다고 목사님께서 감사의 글을 올리셨다.

 

이제 장 보는 건 끝났으니 순서에 따라 하나하나 준비하는 과정만 남았다.

며느리는 항상 명절 전날 오후에 오기에 식혜 끓이면서 스케줄을 짜서 하기로 했다.

혼자 할 땐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들었는데

며느리가 옆에서 도와 주니까 힘도 덜 들고 

두런두런 담소 나누면서 하니까 준비하는 과정부터 명절 분위기가 정겹게 느껴진다. 

 

우리 집은 설날엔 아들가족과 보내고,  딸들은 명절 당일은 시댁에서 보내고

명절 다음날 오기에 우리 집은 명절 다음 날이 명절 분위기이다.

며느리는 설날 아침 먹고 아이들 데리고 친정어머니 뵙고 이모님 댁 인사 드리러 간다기에

단호박 샐러드와 식혜 두 병(삼다수 물병) 담아 이모님 몫까지 챙겨 드렸다. 

며느리 친정 간 사이 나는 쉬엄쉬엄 내일 상차림 할 음식 하나하나 점검하고

샐러드 소스와 채소 손질까지 마무리했다.

 

지금까지 명절을 지내 오면서 집에서 음식 준비하면 힘들다고 밖에 나가 외식도 해 보고

자녀들이 올 때 어시장에서 회 뜨고 대형마트에서 완성된 음식을 사 오기도 하고

코로나 시대 여러 가족이 명절에 모이는 것도 인원 제한이 있어 여행도 가 봤지만

이렇게 저렇게 해 봐도 명절 분위기가 나질 않고 썰렁했다.

명절은 힘은 들어도 명절음식 준비해 온 가족이 한자리에 둘러앉아 덕담 나누며 보내는 명절이야 말로

화기애애하고 우리 고유의 명절 풍습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예절 교육이 되고 여러 모로 좋은 것 같다.

 

그리고 명절음식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녀들이 둘러앉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때면

언제 힘들었냐는 듯 피로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리고 부모 입장에선 자녀들이 돌아갈 때 남은 음식 나눠주는 기쁨  또한 한몫을 하기 때문이다.

전에는 약식을 미리 만들어 사각 모양으로 썰어 랩으로 싸서 냉동실에 얼려 놨는데 

올해는 약식을 미처 만들지 못했다.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하기에 훗날 내가 기력이 약해

명절음식을 못하게 된다면 아마 나는 마음이 위축되어 슬픔에 젖어 있을 것 같다.

명절음식을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지만,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정성껏 만들어서

온 가족이 한자리에 둘러앉아 덕담 나누며 우리 고유의 명절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이번 명절음식 메뉴>

식혜, 양장피, 새우장, 단호박샐러드, 수제 파인애플소스 샐러드, 코다리 간장양념구이, 떡갈비, 청포묵무침,

모둠전, 알배기배추 샐러드, 갑오징어무침, 봄동 겉절이, 배추김치, 오이소박이, 백김치, 열무김치

모둠전은 사돈(며느리 친정엄마)께서 만들어 보내주시고, 알배기 샐러드, 갑오징어무침, 봄동겉절이는 큰딸이 만들어 왔다.

이번 명절엔 명절음식 사진 찍을 시간조차 없어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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