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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숲

비움의 미학

by 풀꽃* 2014. 12. 10.

 

 

비움의 미학

 

두 계절이 공존하는 11월의 끝자락!

가을이라기엔 너무 늦고 겨울이라기엔 다소 이른 가을과 겨울이 몸을 섞은 11월 끝자락!

올해는 이상기온으로 가을에 더 가까운 날씨다.

 

화려한 원색보다는 채도 낮은 중간 색조를 좋아하는 나의 성향을 닮은 듯

창경궁 호수에 잠긴 반영이 그런 모습이다.

계절이 이쯤 되면 풍경도 사람들의 발걸음도 뜸할 줄 알았는데 따뜻한 이상기온 때문인지

곧 사위어질 가을빛을 담으려고 늦가을을 마중 나온 걸음들이 발에 챈다.

 

겨울로 들어서는 길목이기에 소리도, 빛깔도 사위어져 쓸쓸하고 무겁게 보이지만

어찌 생각하면 털어낼 것 다 털어내고 홀가분히 서 있는 나목을 보고 있으면

오히려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넉넉해 보인다.

 

겨울의 느낌은 칙칙하고 무겁지만 아직은 가을빛이

지는 노을만큼 볼그레 남아있어 마음 또한 훈훈하다.

계절의 끝에 서서 달음질치는 계절을 붙잡으려는 마음에서일까

호숫가에서 해가 기우는 줄도 모르고 마냥 풍경에 빠져 호수에 마음을 적신다.

 

풍경이든 사물이든 모두가 각자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 보이는 것 같다.

털어낼 것 다 털어낸 나목이 외롭게 보이는 건 마음이 외롭기 때문이고

쓸쓸하고 황량한 가을 벌판조차도 시적이고 낭만적으로 보이는 건

영혼이 그만큼 맑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는 잎을 다 떨군 나목을 보면서 비움과 채움의 교훈을 얻었다.

산국이 된서리를 맞은 후에야 고운 빛깔과 향기로 기품을 드러내듯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비워내야 더 아름다운 것을 소유할 수가 있다.

 

텅 빈 울림만이 있는 내 영혼에 11월이 가기 전에 비울 것이 무엇인가?

샅샅이 찾아내어 나목이 모든 것을 털어내고 비운 것처럼 맑은 영혼이 됐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 나목 아래 빈몸 되어 서서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세상의 광음을 하나하나 내려놓으려 한다. 

어둠의 곳간에 밝은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가지치기를 하여

비워 놓은 곳간에 다시 맑은 영혼의 샘을 파고 싶다.

그리하여 사시사철 아름다움으로 우리의 영혼을 치유하는 나무처럼 

나로 인하여 많은 이들의 영혼이 치유되는 치유의 숲이 됐으면 한다. 

 

<이 글은 지난번 창경궁을 다녀온 후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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