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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숲772

기다림 기다림 / 헤세드 설익은 봄 햇살이 애써 봄을 깨우려 하지만 복수초만 겨울잠을 깨고 목련은 아직 깊은 잠에 빠져 단꿈을 꾼다. 입춘이 지나자 매화는 하나둘 팝콘 터지듯 봄을 깨우지만 꽃샘추위에 머뭇거리고 풋잠이 든다. 기다림이 어디 봄뿐일까?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봄이건만 봄을 기다리는 이유는 봄빛 닮은 그대가 그리워서이다. -2023, 2, 20 봄을 기다리며 적바림 하다.- 2023. 3. 6.
2月 2月 / 풀꽃 봄을 찾아 나서 보니 봄도 아닌 겨울도 아닌 어중간하더라. 어디쯤엔 봄인 듯하더니 얼음도 보이고 계절이 오고 가고 그러더라. 봄이 온 듯한데 손끝 시리고 나서 보니 자연의 시계는 그러더라. 눈앞에 보이는 게 그렇고 피부에 와닿은 바람이 그러더라. 겨울인 듯, 봄인 듯 길을 나서 보니 아직은 그러더라. -2023, 2, 15 적바림 하다- 2023. 2. 27.
작은 섬김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주고 기쁨을 안겨준다면 그보다 의미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섬김은 받는 것보다 섬길 때가 더 기쁘고 행복하니까. 시작은 섬김에서 시작된 게 아니고 주님 안에서 교제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섬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같은 교구 권사님께서 올해 86세로 2년 전 남편께서 하늘나라 가시고 홀로 살고 계시는데, 경제적으로도 부유하고 자녀 셋을 모두 신앙 안에서 훌륭하게 키워 아들 둘은 캐나다에 살고 딸은 서울에 사는데 아버지 돌아가시고 엄마 혼자 있는 게 안쓰러워 딸 집에서 한 달여간 엄마와 함께 지냈는데 권사님께서 사위가 어려워 집으로 내려오셨다. 딸이 엄마 혼자 계신 게 마음이 쓰여 하루에도 수시로 전화하고 하나서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쓰고 반찬도 만들어 퀵서비스로 보내 드리.. 2023. 1. 19.
단상(斷想) 날씨가 추워서 인지 커피 향에서 겨울 냄새가 난다. 불현듯 이 추운 겨울 외진 골짜기에서 시린 겨울을 보내고 있을 들꽃들을 생각하니까 가엾다 못해 서글픈 생각이 든다. 그토록 좋아하던 들꽃이었는데 혹한 속에서 자신의 몸을 사그리 혹사시키고도 봄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새순이 돋아나는 걸 보면 참 신비롭다. 자연의 세계는 그 자체가 신비롭다. 커피는 추운 겨울에 마셔야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것 같다. 향기로 말하자면 커피 만한 차도 없지 않을까 싶다. 혼자 마시는 커피는 오로지 커피의 맛을 음미하며 마시기에 깊이 빠져든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 시간에 흰머리가 눈에 들어오는 걸까? 거울에 비친 흰머리 한 가닥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난다. 커피를 마시는 순간 윤슬처럼 빛나는 흰머리가 눈에 거슬려 향.. 2023. 1. 12.
말러 Mahler 오스트리아 출신 작곡가 겸 지휘자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 감미로운 선율에 귀를 기을이면 이른 아침에 고즈넉한 숲길을 거니는 듯한 착각에 빠져 마음이 편안해진다. 명곡의 탄생 배경은 19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빈 왕립 오페라단을 이끌던 구스타프 말러는 샤교 모임에서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여인과 운명적으로 조우한다. 검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고혹적인 자태로 말러를 맞이한 여인의 이름은 "알마 신들러, 많은 남자가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고 주변을 맴돌았다고 한다. 물론 구스트프 말러도 그중 한 명일 터, 저항할 수 없는 매력에 이끌린 말러는 알마에게 편지를 건네며 적극적으로 구애를 펼친다. 당신을 향한, 당신의 모든 것이 내 안에 있습니다. 연서 내용이 낭만적이다. 말러.. 2022. 12. 7.
가을 단상 가을이 깊어 지면서 해바라기와 코스모스는 모르는 결에 누런 빛을 띠고 모든 잎이 꽃이 되는 가을은 두 번째 봄으로 푸르던 잎들은 가을볕에 저마다 형형색색으로 물들고 습지에도 가을이 깊이 들어와 저마다의 가을을 수놓으며 가을은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어 눈길 돌리는 곳마다 가을빛보다 더 고운 미소가 번진다. 계절을 수놓은 시간, 저 언덕 넘어 바람이 닿는 어딘가에도 연습이 없는 세월의 무게만큼 추억과 그리움이 조금은 빛바랜 색으로 퇴색 되어 그날의 시간에 기대어 있을 것이다. 인생은 연습이 없듯이 가을 또한 연습 없이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유유히 흐르고 우리의 시간도 가을과 함께 하루하루 흐르고 있다. 행복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고 내가 만들어 가는 것처럼 가을 또한 누리는 자의 몫이다. 화려한 가을이 .. 2022. 11. 2.
추석 단상 어느 날 문득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행복을 가져다줄 때 알 수 없는 희열이 온몸에 번진다. 추석을 한 주 앞두고 며느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 다음 주 초반 월, 화, 수 시간 되세요? 시간 되시면 함께 여행 다녀오려고 하는데, 어머니 생각은 어떠세요? 순간, 추석을 앞두고 갑작스러운 며느리의 전화에 꿈인 듯 생시인 듯 어떤 답변을 주어야 할지 잠시 주춤했다. 희수야, 그 때면 추석 전인데, 다녀와서 시장 보고 추석 준비하려면 힘들 텐데 어떡하지? 했더니 "어머니 그럼 이번 추석은 간단하게 조금만 준비하세요." 한다. 우리 집은 명절 당일은 아들 가족과 보내고, 딸들은 시댁에서 보내기에 명절 다음 날 가족이 다 모이기에, 명절 다음 날이 더 명절 분위기가 난다. 희수야 그러면 추석 전에 가지 말고,.. 2022. 9. 19.
초가을의 단상 여백(餘白)이 있다는 것은 새로운 무언가를 채울 수 있기에 자신을 충전하는 시간이 될 수 있어 가끔은 텅 빈 여백의 시간으로 그 어느 것에 얽매이지 않고 그날의 기분에 따라, 감성에 따라 움직이고 싶다. 여백은 여유의 공간으로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잘 활용하면 더 빛날 수가 있다. 지혜도 여유로워야 나오고 글을 써도 여유로워야 좋은 글이 나오듯 마음 깊숙이 꽂힌 글귀는 지지 않는 꽃이다. 주말 아침, 가을이어서 그럴까? 특별함이 없는데도 여느 때 하고 다르게 마음도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가을 하늘 같다. 이런 날은 마음이 동요되는 대로 감성에 젖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아직 가을이라고 하기엔 이르고 여름과 가을이 공존하는 8월, 베란다 화초를 스치고 거실로 들어오는 바람이 한층 더 감.. 2022. 8. 26.
구스타프 말러 오스트리아 작곡가 겸 지휘자 구스타프 말러는 시간에 쫓기고 머릿속이 복잡할 때마다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를 듣곤 한다. 감미로운 선율에 귀를 기울이면 마음이 편안해 이른 아침에 고즈넉한 숲길을 거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당시 빈 왕립 오페라단을 이끌던 구스타프 말러는 사교 모임에서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여인과 운명적으로 조우한다. 검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고혹적인 자태로 물러를 맞이한 여인의 이름은 "알마 신들러" 많은 남자가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 주변을 맴돌았다고 한다. 물론 구스타프 말러도 그중 한 명일 터. 저항할 수 없는 매력에 이끌린 구스타프 말러는 "알마 신들러"에게 편지를 건네며 적극적으로 구애를 펼친다. "당신을 향한, 당신을 위한 모든 것이 내 안에 있습니다. 너를 향.. 2022. 8.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