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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숲772

인연이란 친구와 알게 된 지가 어언 15년이 되었다. 우리는 매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늘 가까이 지냈다. 친구 아들이 중학교 때로 기억되는데 그 아들이 장성해 그새 결혼을 하게 되었다. 잠깐인 듯한데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늘 엄마 품에서 사랑받아가며 티 없이 자라더니 성인이 되어 여친이 생겼음에도 엄마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막상 결혼 날짜를 받아 놓고 엄마 곁을 떠날 생각을 하니 엄마와 떨어지는 게 못내 아쉬운지 응석이라도 부리듯 엄마 나 더 놀고 싶다는 말을 건넸다고 한다. 사랑하는 배필을 만나도 모정은 그만큼 강한가 보다. 친구가 정년을 앞두고 있자 사돈댁에서 이왕 결혼하는 거 퇴직 전에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해서 서둘러 날짜를 잡다 보니 예식 시간이 골든타임은 이미 없고, 오전 11시로.. 2021. 12. 12.
별책부록 별책부록 / 풀꽃 잘못 끼워진 단추처럼 균형 깨진 관계 내가 본지(本志)가 되고 주님이 별책부록(別冊附錄)이 되다니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닌 주님이시고 나는 별책부록이다. 때론 본지(本志)보다 별책부록이 빛나듯 어디론가 흐지부지 사라지는 별책부록이 아닌 본지(本志) 같은 별책부록. -2021, 12, 8 적바림하다.- 2021. 12. 10.
하루 하루 / 풀꽃 찻잔에 여유를 가득 담고 FM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마음 매달고 푸른 날을 되뇌며 꿈 많던 시절을 들춰본다. 그런 날엔 생각만으로도 괜스레 센티해지고 불현듯 음악에 시를 읊조리하며 낭만에 젖기도 하며 하루라는 날에 많은 상념이 날개를 단다. 아직은 살아 있는 감성을 보며 꿈 많던 푸릇푸릇한 시절을 되뇌며 시간 여행을 한다. -2021, 12, 7 적바림하다.- 2021. 12. 8.
삶의 흔적 삶의 흔적 / 풀꽃 꽉 찬 보름달에 숱한 사연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믐달을 보고서야 삶이 고스란히 달 속에 있었음을 알았다. 보름달 안에 담겨 있던 삶의 흔적들은 더러는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더러는 하얗게 꽃을 피우고 더러는 민들레 홀씨처럼 훨훨 날아 어딘가에 꽃을 피울 것이다. 달도 비우는 연습을 하고 나무도 내려놓는 연습을 하건만 내 안에 쌓인 묵은 그리움은 세월이 갈수록 똬리만 튼다. -2021, 12, 2 적바림하다.- 2021. 12. 3.
향수(鄕愁) 향수(鄕愁) / 풀꽃 어스름 새벽 누군가가 끓인 토장국이 아파트 통로에 세월의 뒤안길로 착각할 만치 토장국 냄새가 코끝을 자극해 불현듯 엄마 생각에 토장국이 아닌 천국에 계신 엄마가 오신 듯했다. 늦가을 이맘때 김장 끝내고 아버지는 양지바른 곳에 터를 잡고 사그락사그락 새끼를 꼬고 계시면 엄마는 엄마의 살점까지 넣고 끓인 구수한 토장국을 끓여 점심을 준비하셨다. 그 어디에도 없을 토장국 어릴 적 그 맛이 세월의 강을 건너 이 아침 아파트 통로에 엄마가 토장국으로 오셨다. -2021, 11, 29 적바림하다.- 2021. 11. 30.
천국의 계단 천국의 계단 / 풀꽃 지하철 4번 출구 바라만 봐도 헉 소리가 날 것 같은 가파른 계단 누구에게는 죽음의 계단일 것이고 누구에게는 천국의 계단일 것이다. 오르기만 하면 건강이 보장되는 것을 여름엔 덥다는 이유로 겨울엔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의 핑계로 천국의 계단을 외면하다. 간간이 계단을 오르는 이들은 그 기쁨을 알기에 걸음조차도 사뿐하고 미소가 번진다. 가파른 계단은 십자가의 길만큼이나 쉽지 않기에 녹록지 않은 순례자의 길과도 같다. -2021, 11, 25 지하철 안에서 적바림하다.- 2021. 11. 29.
첫사랑의 기억처럼 첫사랑의 기억처럼 / 풀꽃 가을도, 겨울도 아닌 어중간 한 어느 날 오후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입자가 바람에 실려 허공을 배회하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雪이라 하기엔 무색할 만큼 희뿌연 가루가 첫사랑의 희미한 기억처럼. 첫雪은 그렇게 흔적도 없이 마음만 흔들어 놓고 아련한 첫사랑의 그날처럼 기약도 없이 시나브로 사라진다. -2021, 11, 23 적바림하다.- 2021. 11. 23.
안개 안개 / 풀꽃 어스름 새벽 간밤에 산이 실종됐다. 산만 실종된 게 아니고 시간마저 삼켜버려 암흑의 세계. 혼돈 속에 갇혀있는 세상은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만 어렴풋이 안갯속에 드러나고 형체는 안갯속에 갇혀 거북이걸음질을 친다. 고요와 정적이 흐르는 그 길엔 클랙션 소리만 정적을 깨고 몽환의 하루를 연다. 가을 털어 내는 날 그대 안에 있는 상흔도 안갯속에 갇혀 날개를 접었으면 좋겠다. -2021, 11, 20 적바림하다.- 2021. 11. 22.
추석 단상 언제나 그렇듯이 명절이 돌아오면 보름 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침구류부터 세탁하고 거실 카펫까지 손세탁으로 끝내고 냉장고 청소와 집안 곳곳을 살피며 대청소에 들어간다. 거실 카펫이 면으로 된 아이보리색 카펫인데 세탁소에 맡기면 집에서 세탁한 것처럼 깨끗하지가 않아 반으로 접어 욕실 바닥에 깔고 세제를 풀어 솔로 박박 문질러 빨면 새로 산 카펫처럼 뽀얗게 윤기가 나 힘은 들어도 늘 그렇게 세탁하고 있다. 그렇게 세탁한 카펫은 가을 햇볕에 보송보송하게 말려 더럽혀 질까 봐 바로 깔지 않고 접어 났다가 명절 전날 깔아 놓는다. 그다음 명절 음식 메뉴를 정하고 메뉴에 들어갈 재료를 메모하는데 메뉴만 정해져도 20%는 일이 끝난 것 같아 홀가분하다. 일주일 정도 앞두고 김치(포기김치, 오이소박이, 백김치)를 담그고 .. 2021. 9. 23.